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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제 올드스 Olds Mar 27. 2023

'미국 부도' 정치쇼 <2021~2023>








연극이 시작됐다.

제목은 ‘미국 국가부도’. 내용은 미국이 빚을 갚지 못해 망할 거라는 삼류 시나리오. 주조연은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그리고 재무부 장관. 관객은 우리들이었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장관 (출처: CNBC)




재무부 장관이 정치인들에게 편지를 썼다.

너희 의회가 연방정부 부채 상한을 늘리지 않을 경우 10월에 미국은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가 된다고. 다시 말해, 빚을 질 수 있는 규모를 법안으로 늘리지 않으면 정부가 돈을 찍어낼 수 없고, 이대로 가다간 10월에 현금이 바닥날 거라는 경고였다. 또한, 2011년 때처럼 의회가 부채 상한을 늘리는 결정을 마지막 순간까지 미룬다면 기업과 소비, 국가 신용도가 박살 날 거란 경고도 빠뜨리지 않았다. 언론은 재무부 장관의 재촉 편지를 보도하며 실제로 채무불이행(디폴트)이 될 경우 미국 경제가 어떤 영향을 받는지 묘사했다. 그들 표현대로라면 디폴트는 ‘미국 금융의 아마겟돈(종말)’ 이었다.          









아, ‘종말’.

뭐, 이제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다. ‘종말’은 얼어 죽을, ‘미국 디폴트’가 되지도 않는 거짓은 아니었지만 사실 뻔한 위기였다. 법안만 통과된다면 부도는 없는 일이 된다. 그리고 이미 '부채 한도 위기'는 1939년부터 시작되어 2021년까지 98번 넘게 한도를 조정해오며 넘긴 바 있었다. 이미 98번 상영된 연극이었다는 말이다.      



     

그럼 도대체 누가 이 문제를 질질 끄는가?

도대체 누가 뭉그적대며 미국을 통째로 날려버릴 폭탄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가? 바로 정치인들이었다. 왜? 부채 상환 한도 조정을 미루면서 민주당은 공화당을 떼쓰는 놈들로, 공화당은 민주당을 병든 빚쟁이들로 만들 수 있었으니까. 정치인들은 협상을 질질 끌고 언론에 한 마디 툭툭 던지며 국민들이 상대당을 저주하도록 플레이했다. 역시 상대를 사악한 집단으로 묘사해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작자들이었다. 덕분에 순진한 국민만 악몽에 시달렸다.          




월가 사람들 다 알았다.

공화당이 한동안 민주당 놈들이 돈을 너무 많이 쓴다고 투덜거리면서 자존심을 부릴거라는 걸, 그러다 별수 없이 공화당 의원들이 끝내 엉덩짝을 일으켜서 부채 한도를 늘리게 허락할 거라는 걸. 그들은 기만적인 정치와 호들갑을 떠는 언론이 만든 미국 부도 시나리오를 긴장 없이 바라봤다. 고리타분한 연극을 보는 것처럼.           



결국 월가의 예측이 맞았다.

2021년 10월 7일, 민주당과 공화당 상원 지도부는 28조 4천억 달러 규모의 연방정부 부채 상한선을 28조 9천억 달러로 늘리기로 합의했다. 끝까지 스릴 넘치는 장난을 하는 멍청이는 없었다. 협상은 마무리됐다. 부채 상한선이 늘어나자 당장이라도 미국이 망할 수 있는 양 굴었던 언론은 입을 싹 닫았다.     



      

하지만 연극은 계속됐다.

2021년 12월 15일에도, 2023년 1월 19일에도. 비슷한 그림이었다. 재무부 장관 되는 양반이 정치인들에게 경고를 날리고, 언론은 시간이 째깍째깍 흘러가지만 민주당과 공화당은 늘 기싸움만 하고 있다는 경고를 날리고, 이제 미국의 부도가 코앞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입을 털었다. 그러다 다시 매번 진부한 결말로 마무리됐다. ‘협상 타결’.     




하지만 시장은 매번 긴장하고 난감해했다.

시장은 세상 가장 겁쟁이들이 많은 곳이었으니까. 금융권에 스트레스를 주는 이런 정치쇼가 지긋지긋했는지 JP 모건의 CEO 제이미 다이먼은 이럴 거면 차라리 초당적 법안으로 부채 상한 한도를 없애라는 한 마디를 남겼다.           




뭐, 어쩌겠나.

정치쇼는 계속될 것이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른다면 적당히 몰입하면 된다. 연극엔 암묵적 합의가 있다. 그게 매너다. ‘아, 저 가짜 총은 진짜 총이구나’, ‘아, 로미오가 마신 물이 독약이구나’, ‘아, 저 조잡한 수염을 붙인 자가 노인이구나’, ‘아 저 동양인들은 프랑스 민중이구나’. 짜고 치는 판에서 관객이 이렇게 속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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