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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제 올드스 Olds Apr 12. 2023

10월, 부끄러운 바람 <2021.10>








쥐구멍에도 해가 떴다.

가출했던 기관의 돈이 미국 회계 1분기에 맞춰서 돌아왔고, 마침 비트코인 선물 ETF도 통과됐다. 9월에 떨어진 비트코인 가격은 훌륭하게 복원됐다. 내 수익도 성큼 올라왔다. ‘–20%’에서  ‘+5%’로.   



            

아, 난 다시 낙관적인 계획을 세웠다. 

전 재산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에 꼬라박고, 비트코인이 1억에만 도달하면 내가 가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다 팔기. 그리고 상승 좋은 다른 알트코인에 올인. 그리고 연준이 테이퍼링을 하기 전에 모든 코인을 다 팔고 도망. 일을 하면서 메모지에 상상의 숫자를 끄적거렸다. 그럴 때마다 미소가 나왔다.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당시 내 귀에 여유자금으로 투자를 하라는 말은 술과 고기와 설탕을 먹지 말라는 의사들의 잔소리처럼 들렸다. 안전한 게 옳기 때문에 재미를 포기해?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래서 도서관 월급을 받을 때마다, 그리고 서평 공모전에서 수상 상금을 받을 때마다 오직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샀다. 그리고 옷 살 돈을 아껴서, 핸드폰 살 돈을 아껴서, 그리고 집에 있던 책을 중고로 팔아 물타기를 했다. 비트코인이 무조건 일억 원을 가고, 이더리움이 무조건 천만 원을 갈 거라고 믿었으니까. 왜? 인플레이션 온다고 믿었으니까.  



        

배운 바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은 화폐(달러)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연준이 손을 못 쓰는 상황(테이퍼링과 금리 인상을 못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화폐 대신 다른 걸 가지려고 했다. 그중 하나가 비트코인이었다. 그럼 당시 내가 배운 인플레이션의 근거는 무엇이었나? 세 가지였다.        





하나,

코로나가 창궐할수록 공장의 생산은 늦어지고,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임금은 상승하고, 공급망은 개판으로 망가지고, 망가진 공급망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가속시킨다. 사실이었다. 인플레이션 지표는 점점 고조되고 있었고, 인플레이션은 일시적(“inflation is transitory”)이라는 말을 했던 파월은 점점 체면을 구기고 있었다.           





둘,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BBB(bulid back better) 정책이 있었다. 인프라와 복지에 막대한 돈을 풀겠다는 BBB 정책이 조 맨친(Joe Manchin) 의원에게 막힌 상태였지만, 잘 통과된다면 막대한 돈이 시장에 풀려 자산 시장을 떠받치고,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게 뻔했다.           




셋,

연말은 사람들이 돈을 마구 쓰는 중국의 광군절,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있는 달이었다. 연말에 갈수록 소비가 더 강해진다는 건 뻔했다. 거기다 추워지는 겨울에 발맞춰 유가도 오를 게 뻔했다.           



안될 이유가 있었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물가 상승과 비트코인 상승을 너무나 기다리고 기대했다. 속으로 코로나와 인플레이션을 바란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바람이 비열하고, 끔찍한 정당성이었음을 느끼게 된 사건이 벌어진다. 그날 줌(ZOOM) 수업을 하던 전공 교수가 수업 마무리하며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고 말했다. 힘이 없는 눈, 축 처진 입, 그리고 약간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여러분께 말씀 안 드린 게 있어요. 사실 지난주에 저의 아버지가 코로나 감염으로 사망하셨습니다. 워낙 고령이셨고, 지병도 있으셔서 바이러스에 취약했나 봐요. 제가 미워하기도 했고 사랑하기도 했던 분이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니까 후회되는 것들이 많네요. 제 말이 진부하다는 걸 알지만, 시간은 생각보다 짧으니 가족들과 사랑하며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여러분 코로나 조심하세요. 항상 건강하시길. 그럼 수업 마치겠습니다.” 교수는 울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학생들의 건강을 빌며 화상수업을 종료했다. 코로나가 더 오래가길 바랐던 내 인격이 부끄러웠고, 죄스러웠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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