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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Nov 16. 2021

춤이란 무엇인가 3

내 동무를 위하여...

날렵한 한옥 처마 사이로 휘영청 뜬 달이 마당 귀퉁이 우물 안에서도 일렁이고 있었다. 처음 만나는 사이였지만 사람 좋은 미소로 앉아 있던 그가 왠지 친근해 보였다. 그가 일어서며 한마디를 던졌다.

“춤이나 한판 출까?”

술기운 때문이었는지 나한테 그러는 줄 알고 나도 따라 일어섰다. 그가 씨익 웃으며 나를 밀어 앉혔다. 

마당 달빛 아래 맨발로 홀로 선 그는 천천히 바지를 걷어 올리더니 잔잔한 기타 반주를 업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은 한 마리 학처럼 나풀거리는 그의 춤사위에 매료되었다.

‘그래. 내가 하고 싶었던 그림이다. 한잔 술에 취해 달빛 아래 흐드러지게 춤 한번 추는 것’


내가 농판 선생을 처음 만난 날이다. 지금부터 6년 전 초가을이었던 듯싶다. 처음 만난 날 그의 춤사위에 반해 그의 열혈 팬이 되었고 그를 알아가면서 그의 동무가 되었다. 2016년 초겨울 농판과 나는 근 보름 동안 제주도 여행을 갔었다. 둘 다 거지 신세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마음만은 둘 다 부자였던 시절이었다. 이름이 가물가물한 어느 오름 위에서 추었던 농판 춤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춤을 모르는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모두 감동했으리라. 그의 춤을 보고 있노라니 청년시절 풍물에 빠져 살던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한번 움직인 마음은 그 뒤로도 그의 춤을 보면서 ‘나도 한판 추고 싶다’는 생각으로 계속 차 올랐다. 하지만 굳을 대로 굳어버린 내 몸뚱이는 선뜻 춤을 따라나서질 못했다. 

“병호! 나랑 춤추러 가자”

2년 전 일이다. 나는 얼떨결에 농판을 따라 최보결 춤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얼떨결에 동무 손에 끌려 애기 춤꾼이 되었고, 얼떨결에 보결 선생님 따라다니며 한 두 번의 공연도 하게 되었다. 

‘춤이란 잘 추고 못 추고의 문제가 아니다. 원래부터 자기 몸속에 들어 있던 춤을 꺼내 놓는 일이 곧 춤이다.’ 

보결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나는 지금도 가끔 잘 추건 못 추건 내 몸속에 들어 있는 춤을 꺼내 놓곤 한다. 깊어 가는 가을, 오랜만에 부끄럽지만 그 춤을 다시 한번 꺼내 본다. 코로나로 지친 세상을 위하여 또 내 벗이자 춤 동무인 농판 선생을 위하여……

※농판 선생은 지금 한 달 넘게 병실에 갇혀 있다. 지난가을 일하다 다쳐 한 달 넘게 입원 중이다. 그의 쾌유를 빌며 제주도에서 농판 선생이 추었던 그 소리(음악)에 내 몸을 얹어 본다. 앞으로도 몇 주는 더 병원에서 견뎌야 한다는데 새털 같은 춤으로나마 위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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