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의 붓다 얼굴, 세 번째 -와불 뒤의 미얀마
‘아니 신성한 사원에서 널브러져 낮잠을 자다니’
미얀마는 양파 같은 나라다. 가는 곳마다 낯섦과 신기함이 까도 까도 계속해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도시 한복판에 자리 잡은 차욱타지(Chatuk Htat Gyi) 파고다를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짙은 아이라이너에 붉은 입술로 곱게 화장하고 누워 있는 부처라니 그것도 부처 길이가 무려 68m, 높이가 17m라나’
딱 마주하는 순간 상상초월 생경함에 ‘어 이게 뭐지?’라는 말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내가 알던 근엄한 가부좌 불상이 아니라 한 손으로 머리를 괴고 누워 있는 모습을 대하니 그냥 입이 떡 벌어지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더해 신성해야 할 사원 이곳저곳에 돗자리를 깔고 널브러져 평화롭게 낮잠 자는 사람들이라니……
곱게 화장하고 누워 있는 붓다
차욱타지Chatuk Htat Gyi 파고다는 양곤 시내 쉐다곤 파고다와 마하시명상센터 근처에 자리 잡고 있어 많은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사원이다. 이곳에 누워 있는 거대한 불상은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큰 와불이라 한다.
지긋하게 눈을 감은 근엄한 가부좌상이 대부분인 우리나라 불상들과는 달리 이곳 불상은 손가락마다 매니큐어를 바르고 아이라이너에 입술까지 붉게 바르고 머리를 괸 모습이 마치 세련된 젊은 도시 아가씨 같았다. 거기에다 속눈썹은 또 얼마나 길던지 외모에 관심 있는 아가씨라면 탐낼만한 미모였다.
새날을 기다리는 와불
미얀마에는 차욱타지 와불 말고도 종종 와불들을 볼 수 있었는데 불교에 문외한인 나는 왜 저렇게 붓다가 누워 있는지 잘 모른다. 다만 우리나라 화순 운주사에 있는 와불 전설에 비추어 누워 있는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 추측해볼 뿐이다. 전남 화순 운주사 와불은 미얀마 차욱타지 파고다의 와불처럼 부처상을 별도로 제작한 것이 아니라 커다란 바위 덩어리에 20여 미터 길이로 새긴 투박한 부조상이다. 만든 기법이나 생김새는 달라도 와불이라는 공통점이 있기에 억지춘향으로 누워 있는 이유에 대해 알아본다.
고려시대 도선국사는 하룻날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워 새로운 세상을 열어 보고자 했다. 천불천탑 공사를 시작해 거의 공사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일꾼 중에는 나처럼 일하기 싫어한 동자승이 한 명 있었나 보다. 동자승은 잔머리를 굴려 새벽을 알리는 닭 소리를 냈다. 닭 소리를 들은 석수장이들은 모두 날이 샌 줄 알고 공사를 멈추고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결국 운주사 불상은 일어서지도 못한 채 와불로 남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 와불이 일어나는 날 이 땅에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믿게 되었다. 이런 전설에 비추어 보면 ‘미얀마 도처에 누워 있는 와불들이 일어서는 날 미얀마에도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와불 닮은 미얀마 사람들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생경한 모습이 주는 낯섦과 새로움이다. 미얀마 도처에 널려 있는 비슷비슷한 파고다들을 보면서 질릴 법도 한데 볼 때마다 새롭게 보이는 낯섦이 튀어나와 놀라웠다. 차욱타지 와불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머리를 괴고 편안한 자세로 누워 있는 낯선 불상을 보니 연단 위 우리나라 불상처럼 숭배나 기원의 대상이 아니라 친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불 등 뒤에 누워 자는 미얀마 사람들의 모습이 와불의 모습과 무척 닮아 잔잔한 미소가 피어 올라왔다.
미얀마 사람들에게 파고다는 우리의 사찰이나 성당 같이 기도하고 축원하는 공간으로의 기능뿐만 아니라 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미얀마 사람들은 휴일이면 가족과 함께 먹을 것을 싸가지고 소풍 가듯 파고다로 간다. 생활 속에 뿌리내린 불교문화가 있으니 미얀마 어느 사원이든 돗자리를 깔고 누워 평화롭게 낮잠 자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미얀마 사람들에게 파고다는 종교적인 상징물을 넘어 자신이 가장 편하게 쉴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인 셈이다.
허름한 옷이지만 와불에 기대 세상 편하게 잠자는 미얀마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먹고사니즘에 치여 살던 내 삶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남들보다 더 잘살아야 하고, 남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남보다 더 많이 갖기 위해 평생을 달려야 했던 내 삶이 얹히며 작심삼일형 다짐을 또 가슴에 넣었다.
‘행복한 삶이란 꼭 풍요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닐 터다.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을 버리고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먼저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보시가 생활인 미얀마 사람들
미얀마 사람들이 추구하는 테라바다불교(Teravada 상좌부 불교)는 수행정진으로 날마다 덕을 쌓음으로써 자신의 수행단계를 조금이라도 높은 단계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불교적 세계관이 바탕이 되어 미얀마 사람들은 매일매일 덕을 쌓기 위해 노력한다. 남을 돕는 것은 당연한 수행의 기본이고 그중 최고의 덕 쌓기는 바로 자신의 이름으로 파고다를 세우는 것이라고 한다. 돈이 없어 자신의 이름으로 파고다를 세우지 못하더라도 파고다(pagoda-파야 paya 또는 제디 zedi라고도 부른다) 건립에 노동력으로라도 참여하여 자신의 덕을 쌓기 위해 노력한다.
미얀마 여행 중 파고다를 짓거나 벽에 색칠을 하는 일꾼들은 종종 보았는데 현지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우리처럼 일당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대부분 자신의 노동력을 보시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누워 있는 붓다가 일어서는 날에는
수백 년 동안 숨어 있던 은둔의 나라 미얀마에도 몇 년 전부터 빠른 속도로 개방의 바람이 불고 있다. 개방과 함께 들어온 최신 문물의 영향으로 전통을 소중히 여기며 지켜왔던 그들의 고유문화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이제 BTS의 최신곡은 양곤 시내 곳곳에서 수시로 들을 수 있으며, 최신형 스마트폰을 든 젊은이들은 점점 전통의상인 롱지보다 청바지를 선호한다. 여행자의 이기적인 마음으로는 꼭꼭 숨겨두고 싶은 여행지 한 곳을 잃는 것 같아 아쉽지만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어쩌지 못할 것이다.
거대한 도시 속에 머리를 괴고 누워 있는 차욱타지 와불의 뒤통수를 바라본다. 앞모습은 세련되게 화장한 도시 아가씨였는데 뒷모습은 내가 알던 그 고뇌에 찬 석가모니의 모습이다. 붓다의 뒤통수를 보고 있노라니 뜬금없이 일어서는 날 새날이 열린다는 운주사 와불 전설이 떠올랐다.
‘저 붓다는 지금 급변하는 미얀마의 새날을 준비하며 일어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며칠째 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가뜩이나 추워지면 미얀마 병이 도지는데, 미얀마 차욱타지 와불 등 뒤에 자리 펴고 늘어지게 낮잠 자고 싶은 욕구가 넘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