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창낭창 미얀마식 걸음걸이의 비밀

여행자의 나라 미얀마 그 일상의 얼굴, 다섯 번째-미얀마 사람처럼 걷기

by 청년홈즈

미얀마의 햇볕은 송곳처럼 날카롭다.

공기가 맑아서인지 하늘이 낮아서인지 내리쬐는 자외선이 날카롭게 피부를 파고든다. 특히 바간의 햇볕은 창 끝처럼 날카로웠다. 양곤에서 한참 북쪽인 만달레이, 삔우린 같은 곳은 괜찮을까 싶었다. 웬걸 오전 중에는 잠시 선선한 바람이 부는 듯했으나 정오가 넘어가자 역시 뙤약볕이 쏟아졌다. 땡볕을 맞으며 몇 걸음 걸었을 뿐인데도 숨이 턱 막히고 금세 등줄기에 땀이 고였다. 이런 송곳 같은 햇볕 속을 마음의 준비 없이 걷다 보면 지치기 십상이다.

걸음.jpg ▲ 바간의 땡볕: 바간의 한 낮 뙤약볕은 송곳 같다.


더운 나라 사람들은 더위를 안 탈까?
피부에 쩍쩍 달라붙는 후덥지근한 감각을 느끼며 ‘더운 나라 사람들은 더위를 안 탈까?’ '매일 이런 뙤약볕 날씨에 어떻게 살지?' 불현듯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인간이 더위나 추위를 느끼는 것은 감각점 중 냉점과 온점에 의해서다. 피부에 있는 이 감각점에 의해 체온조절 중추가 있는 시상하부에 전해지면 자율신경에 의해 주어진 기온에 적응하도록 한다.’

찾아보니 이렇다. 그러니 더운 나라 사람도 당연히 이 감각점에 의해 더위를 느낀다는 말이다. 재미있는 점은 남녀 간에는 더위를 느끼는 지점이 약간 다를 수 있다고 한다. 대체로 남성이 여성보다 더위를 더 많이 느끼는데 그 이유는 근육량이 많은 남성이 피부로 가는 혈류량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혈류량이 적은 여성보다 더위를 더 많이 탄다고 한다.

이런 이론대로라면 미얀마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마른 편이니 근육량이 적어 더위를 덜 탈 수는 있을 듯하다. 하지만 근육량에 의한 온도 차이는 1~2도 정도라 하니 고온 다습한 열대성 몬순기후인 미얀마 평균기온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미얀마는 년 평균기온은 27~8도이고 낮에는 대부분 30도를 넘는다. 또한 우기가 시작되기 전 3월~5월 평균기온이 40도를 훌쩍 넘는다. 그러니까 미얀마 사람들은 더위를 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런 환경에 오래 살면서 적응력이 생겼다고 봐야 한다.

걸음걸이 속에 들어 있는 미얀마식 삶
나는 사람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사람들의 걸음걸이 속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모습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그 속에 들어 있는 여러 세상이 보인다. 외국인들은 걷는 모습만으로도 한국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아시안 무리 중에 왠지 바쁜 걸음걸이로 바지런하게 걷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한국인이라는 거다. 뭔가 목적의식적이고 빨리빨리 문화가 몸에 밴 탓일 게다.


한낮 만달레이 재래시장 구경을 나섰다. 만달레이 땡볕도 바간 못지않았다. 시장을 반 바퀴쯤 돌았는데 숨이 턱 막히고 등줄기에 땀이 홍수다. 잠시 쉬기 위해 나무 그늘로 피해 들었다. 미얀마 사람들이 이렇게 날 선 햇볕에 어떻게 견뎌내는지 궁금증이 도졌다. 그늘에 앉아 한참을 미얀마 사람들 걷는 모습을 관찰했다. 미얀마 사람들의 걸음걸이 속에도 그들의 삶이 묻어 있었다.


그들의 걸음걸이에서 작은 규칙을 발견했다. 다리와 몸에 힘이 들어간 상태로 걷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과는 약간 차이가 있었다. 미얀마 사람들은 힘을 뺀 상태로 흐느적거리듯 낭창낭창 걸었다. 전통복장인 론지(Longyi)를 입어서 그런지 보폭도 짧았고 될 수 있으면 작은 그늘이라도 그쪽으로 몸을 들이며 걸었다. 햇빛 아래서도 서두름 없이 물 흐르듯 낭창낭창 걸었다. 물론 아직 팔팔한 젊은이들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는데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낭창낭창한 걸음걸이였다.


걸음1.jpg ▲ 만달레이 재래시장 사람들 미얀마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관찰했다. 뙤약볕에 물건을 나르면서도 낭창낭창 걸었다.

미얀마식 걸음걸이의 비밀, 붓다가 들어 있는 낭창낭창 행선(行禪)
미얀마식 유유자적 걸음걸이의 진수를 보게 된 것은 '마하시명상센터'를 방문했을 때였다. 그날따라 양곤의 땡볕은 더욱 매서웠다. 어렵게 마하시명상센터를 찾았을 때는 온몸이 땀에 절어 있었다. 더위에 지쳐 한 숨을 돌리고 둘러보니 그곳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명상센터라는 이름에서 오는 마음 쏠림 때문인지 온화하고 평화로운 기운이 더위를 잠시 잊게 했다. 땡볕인데도 경내에는 많은 스님들이 평화로운 얼굴로 유유자적 걷고 있었다.
알고 보니 스님들은 그냥 걷는 것이 아니었다. 스님들은 수행의 한 방법인 행선(行禪)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행선(行禪)이란 위빠사나 수행방법(아래 정보 참조)의 하나로 '편안하고 이완된 마음과 바른 자세로 아주 천천히 걸으면서 모든 마음을 발에 집중하되, 걷는 동작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각과 현상, 마음들을 낱낱이 관찰하여 알아차림 하는 수행법'이라 한다.

마하시명상센터에서 천천히 행선하는 스님들을 보니 만달레이 재래시장 노인들의 미얀마식 걸음걸이가 겹쳐 보였다. 평온한 붓다의 얼굴로 유유자적 행선하는 스님들의 모습 속에 낭창낭창 미얀마식 걸음걸이가 들어 있었다. 일상을 불교와 함께 살아가는 미얀마 사람들의 삶 속에 불교의 수행방법인 행선(行禪)이 스며들어 낭창낭창 미얀마식 걸음걸이가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얀마식 걸음걸이가 꼭 불교식이라는 말은 아니다. 이런 걸음걸이는 하루아침에 얻은 것이라기보다 오랫동안 비슷한 환경을 살아오면서 몸에 스며 만들어진 것이니 그들의 불교식 삶도 영향을 끼쳤을 거라는 말이다.


땡볕에 따웅지 시장 구경에 나섰을 때 '미얀마 걸음걸이'를 흉내 내 본 적이 있다. 수십 년 빨리빨리로 살아온 몸이 한 번에 낭창낭창 걷음 걸이에 적응할 수는 없었지만 의도적으로 힘을 빼고 시도해보니 나름 효과가 있었다. 어깨에 힘을 빼고 다리도 편안한 상태로 힘을 빼고 물 흐르듯이 걸어보니 등줄기에 땀은 흘러도 훨씬 덜 지치는 듯했다.

'아하! 이것이 미얀마 사람들의 걸음걸이 속에 숨어 있는 지혜였구나'


걸음2.jpg ▲ 마하시명상센터 수행스님: 느릿느릿 행선 중인 스님들의 걸음 속에 미얀마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보였다.

생각은 미얀미얀, 행동은 낭창낭창
‘어깨가 많이 굳어 있네요'
내 어깨를 만져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사실 매일매일 팍팍한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나처럼 어깨가 뻣뻣하게 굳어 있을 게다. 늘 빨리빨리로 이뤄낸 초고속 성장의 후유증이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를 이루었을지 모르나 항상 온몸이 뻐근하게 굳어 있는 삶은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니다.
송곳같이 내리쬐는 햇빛 아래에서도 서두름 없이 낭창낭창 미얀마식 걸음걸이를 보면서 진정한 행복을 생각해본다. 늘 목표 달성, 도전, 정복, 경쟁과 갈등 속에 살아온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낭창낭창 살아가는 미얀마식 삶이 아닐까?

한편으로 생각하니 미얀마가 지금 비록 낙후되었다고 하나 낭창낭창 미얀마식 삶이 장차 미얀마 부흥의 잠재력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미얀마 사람들은 생각은 미얀미얀(미얀마 말로 빨리빨리)하지만 행동은 낭창낭창하기 때문이다.'

여행자는 걸어야 할 경우가 많다. 혹시 미얀마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편리함은 내려놓고 떠나길 바란다. 도시의 습관을 놓고 가지 않으면 미얀마 땡볕에 지쳐 자칫 지루하고 불편한 여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얀마는 유유자적 느릿느릿한 마음 가짐이라야 여행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 불편함과 느림, 예상에 빗나가는 일정까지도 음미하면서 낭창낭창 미얀마식 걸음으로 여유를 맛보다 보면 미얀마의 매력이 흠뻑 빠지게 된다.

‘호흡과 함께 천천히 걸어 보세요’

나의 춤학교 최보결 선생님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처음 그곳에 갔을 때 평생을 걸었어도 막상 천천히 힘 빼고 물 흐르듯 낭창낭창 걷는 일이 참 쉽지 않음을 느꼈다. 몸은 흔들렸고 한 걸음씩 옮겨 놓는 일이 불안하고 불안정했다. 그 걸음걸이 속에 내 삶이 들어 있음을 그때 깨달았다.

다시 낭창낭창 미얀마식 걸음걸이 배우러 일석이조 미얀마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 낭창낭창 미얀마식 걸음걸이가 곧 수행이 될 터이니 여행도 하고 수행도 하는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여행 말이다. 그러려면 미얀마에 하루빨리 평화가 찾아와야 할 텐데 걱정이다.


걸음4.jpg ▲ 마하시 명상 센터(Mahasi Meditation Center) 세계적으로 유명한 위빠사나 수행 장소


☞알고 가면 좋은 정보:마하시명상센터(Mahasi Meditation Center)와 위빠사나

마하시명상센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위빠사나 수행 장소이다. 이 명상센터는 1947년 마하시 사야도(Mahasi Sayadaw, 1904~1982)가 세운 것으로 많게는 3000여 명의 수행자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를 자랑하며 마하시 대선사의 기념관을 비롯하여 수행자를 위한 공간 등이 갖춰져 있고 지금도 주변에 공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봐서 계속 증축 중인 것으로 보였다.
위빠사나(vipassana)는 위(vi)와 빠사나(passana)가 결합된 말로 빠사나(passana)는 깨달음이라는 말이고 위(vi)는 마음과 몸의 세 가지 특성인 삼법인을 말하는데 세상에는 영원한 것도 없고 괴로운 일만 있으며 이를 느끼고 아는 몸과 마음 또한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의미라 한다. 그러니 위빠사나(vipassana)는 삼법인에 대한 깨달음을 의미한다.
위빠사나 수행법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방법으로 내적 통찰을 통해 자신을 관찰하는 남방불교식 수행법이다. 위빠사나의 주된 수행방법은 '걷는 수행(행선行禪)'과 '앉아서 하는 수행(좌선坐禪)'이며, 이 두 가지 수행방법 이외에도 일상생활에서 현재 일어나는 모든 것을 바로 알아차림(관觀) 해야 한다고 한다. 또한 마하시명상센터 수행법의 특징 중 하나는 들고 나는 숨이 아닌 배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독특한 수행법에 있다고 한다.
미얀마에서는 기본적으로 모든 명상센터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마하시 명상센터도 예전에는 모든 사람에게 무료였는데 유명세를 타면서 세계 각국의 배낭족들이 모여드는 바람에 지금은 외국인들에게 약간의 방값을 받는다고 한다. 물론 수행자는 여전히 수행법을 무료로 배울 수 있다.
이곳 외에 미얀마의 대부분 명상센터는 아직도 무료인 곳이 많아 돈 없는 여행자가 알아두면 위급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여행 경비를 절약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라면 말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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