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의 나라 키르기스스탄에서 알게 된 것들
내 마음에 큰 창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제대로 된 진짜 세상을 볼 수 없다. 자신이 가진 창의 크기가 그 사람이 볼 수 있는 세상 크기이기 때문이다. 균형된 시각으로 세상을 바르게 보지 못하는 것이 바로 '편견(偏見)'이다.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려면 먼저 관점을 바꿔야 한다.
바로 틀림의 시각에서 다름의 시각으로 보려는 사고의 전환이다. 내 관점으로 이상해 보이더라도 다름의 사고로 전환하여 보면 세상을 보는 눈은 넓어진다. 바로 편견을 없애는 방법이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편견을 가진 시각으로는 그 나라를 제대로 볼 수 없다. 편견 없이 다름을 받아들이려는 넓은 마음을 갖는 사람만이 진정한 여행자라 할 수 있다.
영어는 국제 공용어?
친구가 키르기스스탄이라는 나라로 여행을 가자고 했을 때 '거기 공산국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올라와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반공 이데올로기 교육의 트라우마 때문에 생긴 편견이었다. 더군다나 영어를 잘하든 못하든 영어권에서 살던 내가 러시아권 나라는 처음이었으므로 언어에 대한 걱정도 밀고 들어왔다.
실제로 마나스 공항에 내리자마자 생경한 글자들로 가득 찬 안내판들은 내 눈을 흔들리게 했다. 눈에 들어온 글자들은 영어처럼 생겼으나 도저히 읽어 낼 수가 없었다. 내게는 그냥 글씨 그림으로 보였다. 돌아와 찾아보니 그 그림 같은 글자들은 키릴 문자라고 하는 키르기스 문자였다.
덧붙여 설명하면 '키르기스 문자는 튀르크 룰 문자에서 아랍문자로, 아랍문자에서 라틴문자로 다시 라틴문자에서 키릴 문자로 변모하였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키르기스 문자는 이 키릴 문자에 일부 러시아어를 차용했기 때문에 이방인 눈에는 어느 것이 키르기스 문자이고 어느 것이 러시아 문자인지 전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문자를 읽을 수 없는 불편함은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우리 동네 고추골댁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고추골댁 아주머니는 장에 가면 항상 동네 다른 사람들을 꼭 붙어 다녀야 했는데 혼자 서는 절대 다니지 않는다고 하였다.
엄니가 살짝 귀띔 해준 바로는 글자를 몰라 어느 버스를 탈 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그 고추골댁 아주머니 처지가 돼 보니 평생 까막눈 불편을 달고 사셨을 고추골댁 아주머니가 더욱 안쓰럽게 생각되었다.
첫날 호텔에 도착해 TV를 켰다. 나는 여행지에서 그 지역 문화(언어, 뉴스, 옷차림 등)를 알고 싶어 못 알아듣더라도 그 나라 방송부터 찾아보는 습관이 있다. 뉴스인지 어떤 대담 프로인지 모르겠으나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이 외계어 수준으로 들렸다.
'바르미니 쉬모르까르까르~ 티키 비쉬 비슈 가르기로스트마까~……'
영어도 잘 못하면서 외국어는 영어가 표준일 거라는 내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친구와 외계어 같이 들리는 이 말들을 아무렇게 따라 하면서 한참을 웃었다. 키르기스스탄은 70여 년 소련연방 시절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어에 능숙하며 러시아어와 키르기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고 하는데, 방송에서 들었던 말이 키르기스 언어였는지 러시아였는지는 아직도 난 잘 모른다.
유목민의 삶을 이해해야 이 나라가 보인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같은 문자, 같은 언어, 대부분 생김새가 비슷한 사람끼리 살아왔으므로 다른 나라에 가도 그 나라 사람들은 같은 민족으로 모두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키르기스스탄에 가면 그런 생각이 바로 깨진다.
동양인 모습부터 금발의 서양인 모습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다. 키르기스스탄은 키르기스인(73.6%), 우즈벡인(14.8%), 러시아인(5.3%), 둥간인(1.1%), 위구르인(0.9%), 타지크족 (0.9%), 터키인(0.7%), 카자흐인(0.6%), 고려인(0.3%) 등이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키르기스인들도 수백 년 중앙아시아 역사 속에 여러 민족이 섞이게 되었고 유목민의 특성상 초원을 따라 이동하면서 다양한 민족이 섞이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온 정주 개념으로 키르기스인, 우즈벡인, 카자흐인 등의 중앙아시아 민족을 생각하면 안 된다. 초원을 따라 이동하면서 살아온 유목민의 삶을 이해해야 중앙아시아 나라들을 더 잘 알 수 있다.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은 대부분 이슬람교(82.7%)를 믿고 있으며 일부는 러시아 정교(16%)를 믿는다. 통계에서 보듯이 이 나라는 이슬람 국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내가 생각했던 이슬람 사람들 복식이 아니었다. 이슬람 국가라고 하면 대부분 여성들은 히잡이나 부르카, 차도르 같은 옷을 입고 다닐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거리에 나가보니 히잡이나 부르카를 쓴 여성들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 사람들은 우리와 비슷한 옷을 입고 다녔다. 다만 아줌마들은 두건처럼 생긴 엘레첵을 쓰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키르기스스탄은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이 많지만 중동의 이슬람 국가 사람들 같은 복장을 하고 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 또한 나의 편견이었다.
앞 글에서도 말했듯이 이 나라가 유목민의 나라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재미있는 일을 고속도로에서 겪었다. 비슈케크에서 첫날밤을 묵고 이식쿨 호수 근처 유르트 숙소로 가는 길이었다. 고속도로라 하는데 톨게이트나 어떤 표식도 없이 황량한 벌판에 도로만 뻗어 있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초원이라고 하기엔 황량한 넓은 벌판과 그 너머 수 없는 민둥산 모습들을 넋 놓고 보며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차가 섰다. 분명 고속도로라고 했는데 난데없이 도로 한가운데 말과 양떼들이 걷고 있었다. 달리던 차들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속도를 줄여 멈췄다.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 마디로 이 나라는 차보다 양, 말들이 더 우선시 되는 우마우선 도로인 나라였다. 우리나라 같으면 저녁뉴스에 나올 만한 상황으로 소방차나 경찰차 수십대가 출동했을 터인데 고속도로 위를 유유히 건너는 양떼들을 보니 딴 세상 같았다. 여행은 낯섦이 주는 떨림과 호기심이라는 말이 가슴속에 팍팍 꽂혔다.
그립다, 모든 시간들이...
짧은 여행이었지만 키르기스스탄은 처음 가본 러시아권 국가였고, 처음 가본 이슬람 국가였고, 처음 가본 유목민의 나라였다. 여행은 내가 알던 세상에서 더 넓은 세상으로 인도하는 일이다. 돌아와 생각해보니 여행의 순간순간 모든 것들이 나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겹게 보았던 민둥산들이며,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벌판 같은 초원 같지 않은 초원, 여행객에게 불쑥 달려와 말타기를 권유하던 소년, 바다 같은 이식쿨 호수, 점심 먹으며 무심히 마셨던 아르빠 맥주, 그저 밀가루 맛만 나던 식은 레뾰쉬카빵, 오줌 한 방울도 돈을 내야 했던 지저분한 화장실, 비슈케크 거리에서 수제 목걸이를 팔던 소녀, 이제는 모두 추억이 돼 버린 모든 시간들이 그립다. 다시 한번 비슈케크 그 호텔의 스카이라운지 바에서 낮술을 하고 싶다.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