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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Oct 23. 2023

내일의 위한 충전 뒤풀이 문화

K-문화 유전자의 비밀

‘뒤끝 있는 놈이 제일 싫다.’ 

뒤끝 있는 사람 좋아하는 없다. 뒤끝은 왜 생기는 것인가? 인간은 불완전한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감정은 사람마다 표현방식도 달라 항상 오해하며 충돌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 같은 말을 듣더라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마음이 다르니 일그러지고 생채기를 낸다. 이렇게 감정이 쌓이면 뭔가 찜찜하고 개운하지 않은 기분이 남는다. 뒤끝이다. 관계가 좋아질 리 없다. 그러니 뒤끝은 모두를 위해 무조건 풀어주는 것이 상책이다. 한국인은 이러한 인간의 뒤끝 속성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도 가지고 있었다. 뒤풀이 문화다.

‘내고 달고 맺고 풀다’

한국인들의 삶 속에는 ‘내고 달고 맺고 푸는’의 순환의 이치가 깊이 박혀 있다. 이를 잘 볼 수 있는 것이 굿판이다. 풍물굿 한판에도 ‘내고 달고 맺고 풀고’의 한 마디가 들어 있다. 이 한 마디 대로 흘러가야 제대로 된 한판이 된다. 준비 없이 너무 끌어올려도 안되며, 달아올랐는데 맺지 않으면 싱거운 굿판이 된다. 또한 맺고 나서 뒤를 풀어주지 않으면 개운한 한판이 될 수 없다. 판소리 한 마당도 그렇고, 소설이나 한 편의 드라마, 영화도 그렇다. 이뿐 아니라 한 제품이나 기업의 주기도 그 안에 이 ‘내고 달고 맺고 푸는’ 순환의 이치가 들어 있다. 하루하루 일상 속에도 이 한마디가 들어 있고, 한 사람의 일생에도 들어 있다. ‘내고 달고 맺고 푸는’ 이 한 마디로 세상 이치를 보는 사람들이 한국인들이다. 


특히 한국인들은 풀어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정점을 찍었더라도 뒤를 잘 풀어주지 않으면 제대로 된 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바로 뒤풀이 문화다. 이러한 한국인의 뒤풀이 문화는 세시풍속에도 들어 있다. 설명절부터 정월 대보름까지는 한 해의 뒤풀이 기간이다. 이 기간 동안 쌓인 것을 풀고, 잘 쉬어야 새해 농사를 제대로 시작할 수 있다. 이 뒤풀이 문화는 한 해뿐만 아니라 한 달, 한 계절, 한 절기, 한 달, 하루의 삶 속에도 들어 있다. 선조들은 하루 농사일이 끝나면 저녁에 한잔 걸치며 하루를 풀어주었다. 이러한 한국인의 뒤풀이 문화는 산업화 과정 속에도 이어져 직장의 회식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모일회會 먹을 식食 ‘함께 모여서 음식을 먹음’ 사전적 의미지만 한국인의 회식은 이런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회식문화는 한국인의 ‘내고 달고 맺고 푸는’ 뒤풀이 문화의 연장선이다. 회식은 노동으로 지친 심신을 술 한잔으로 풀어주고, 해야 할 일도 계획하며, 평소 쌓였던 잠재된 불만도 털어 내는 시간이다. 도모했던 일을 평가하며 조직의 룰이나 목표 때문에 쌓였던 갈등을 풀어주고, 잘 몰랐던 동료들과 더 가까워지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과정이다. 가끔 작은 싸움도 일어나지만 그런 작은 분쟁은 오히려 음성적으로 갈등이 깊어질 싹을 미리 잘라 조직단합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현대자동차그룹 디자인경영담당 사장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는 한국인의 뒤풀이 회식문화의 긍정성을 알아본 사람이다. 그는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회식은 긴장을 풀고 동료들과 격의 없는 관계를 맺는 기회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하며 특히 집중적으로 일을 한 뒤에는 회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회식문화도 한국인의 빨리빨리와 흥, 신명, 열정적인 기질, 서열 문화 등이 섞여 2차, 3차, 4차로 이어지는 것과 꼰대들의 출현으로 요즘 MZ들이 가장 싫어하는 문화로 변질되었다. 뒤를 풀어주었던 회식문화가 죽어라 술만 마시며 오히려 조직단합을 해치는 문화로 변질되었다면 회식문화는 없어지는 것이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풀이 회식문화 속에는 분명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요소가 훨씬 많이 들어 있다. 작은 부작용 때문에 지금 비록 천대받고 있지만 뒤풀이 회식 문화는 부활해야 하고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뒤끝 속성을 알고 항상 뒤를 풀어주었던 현명했던 조상들의 유산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세계를 놀라게 한 K의 성장 뒤에도 분명 이 뒤풀이 회식문화도 큰 역할을 했음을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생각해 보니 회식 안 해본 지 꽤 오래되었다. 회식하자고 하면 MZ들은 꼰대라고 싫어하겠지만 나는 여전히 ‘내고 달고 맺고 푸는’ 세상 이치에서 찾은 뒤풀이 회식문화를 잘 활용하면 아주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K-문화가 될 수 있음을 확신한다. 

대신 전제가 있다. 

꼰대 부장님! 2차는 빠지시고, 과장님 제발 3차는 주동하지 맙시다. 

그리고 제발 11시 전에는 끝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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