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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Mar 25. 2024

국제 콩쿠르의 강자 떠오르는 K-클래식

K-클래식 바람이 불고 있다.

열정적인 연주가 끝나자 무대는 청중들의 박수소리로 덮였다. 연주자가 일어나 인사를 하자 지휘자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수줍어하는 그를 살포시 안아 주었다. 청중들은 심사 결과가 발표되지도 않았지만 그의 우승을 의심하지 않았다. 천재 피아니스트는 그렇게 우리에게 왔다. 2022년 6월, 북미 최고 권위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는 당시 18세에 불과했던 임윤찬이다. 많은 평론가들은 그가 경연에서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3번’은 역대 최고의 연주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라고 극찬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연주 모습(2022년 6월)

K-컬처 바람은 K-팝에만 부는 것이 아니다. 클래식계를 휩쓸고 있는 K-클래식 바람 또한 어마어마하다. 지난 20년간 각종 국제 콩쿠르 결선에 진출한 한국인은 무려 700명이 넘었고, 그중 110여 명이 우승자를 배출했으며 2015년 이후로만 보면 한국이 배출한 수상자 수는 일본과 미국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우승자만 살펴보더라도 제17회(2023년 6월)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성악 남자 부문 손지훈, 바이올린 김계희, 첼로 이영은이 각 부분에서 우승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그동안 주로 기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K-클래식이 이제는 성악 분야도 우승자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바리톤 김태한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2023년 6월) 우승했고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손지훈이 우승하며 K 클래식의 부상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K-클래식이 뜨고 있다.  

2023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 바리톤 김태한

K-클래식은 어떻게 떴을까? 

피터 폴 카인라드 국제 콩쿠르 세계연맹(WFIMC) 의장은 KBS ‘시사기획 창’ 제작팀과의 인터뷰에서 K-클래식 성공 이유로 첫 번째는 교육훈련, 두 번째로는 전통과의 연결성을 꼽았으며, 한국 연주자들은 감정이 풍부하고 주저하지 않는 표현력이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많은 클래식 전문가들이 다양한 분석을 내놓는데 이를 종합해 보면 대체적으로 피터 폴 카인라드 의장의 분석처럼 ‘엘리트 교육시스템’, ‘예술적 자유로움 추구’, ‘롤 모델 등장’이라는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 K-클래식은 재능 있는 인재를 발굴해 지속적으로 키워낼 수 있는 든든한 엘리트 교육시스템이 받쳐주고 있다. 바로 K-클래식의 산실이라 부르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국립 영재교육원이다. 피아니스트 박재홍(2021년 부조니 국제 콩쿠르 우승),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2022년 시벨리우스 국제 콩쿠르 우승), 첼리스트 최하경(2022년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 우승), 피아니스트 임윤찬(2022년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우승) 등 최근 국제 주요 콩쿠르에서 우승한 청년들이 모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교육원 출신이다. 이런 영재 발굴 육성 시스템은 K-팝의 연습생 시스템과 유사한 점이 있다. 한마디로 좋은 인프라가 좋은 뮤지션을 탄생시키는 선순환 구조가 갖춰져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예술적 자유로움 추구’이다. 이제 K-클래식은 예전의 기계적인 연습 방법에서 벗어나 예술적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여기에는 기계적인 연습을 통해 성장했던 클래식계의 젊은 지도자들의 영향이 컸다. 젊은 지도자들은 그들이 연주활동에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후배들에게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연주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피아니스트 백혜선도 ‘배운 대로 잘하는 정도가 아니고 자신의 목소리를 넣어 창의적 음악을 만들어 내는 어린 한국 피아니스트가 많아졌고, 세계가 놀라고 있다’며 달라진 K-클래식 수준을 진단했다.


또 한 가지 성공 요인으로는 롤 모델의 존재다. 어느 분야에서나 ‘롤 모델’은 동기부여를 확실하게 해 준다. 계속해서 배출되는 국제 콩쿠르 우승자들이 자연스럽게 어린 연주자들의 롤 모델이 되었다.  이는 골프의 박세리 키즈나 야구의 박찬호 키즈, 피겨의 김연아 키즈가 생겼듯이 클래식계에도 한국인 중에 자신의 롤 모델이 나타나니 멀게만 느껴졌던 콩쿠르 우승이 자신의 연주 속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전문가들의 분석처럼 위와 같은 3가지 성공 요인도 있었겠지만 나는 한 발짝 더 들어가 한국인의 내면에 쌓여 있는 K-문화 유전자도 큰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K-클래식의 탁월한 성과에는 신명과 흥, 근면 성실, 은근과 끈기, 한국인 특유의 1등 주의, 치열한 경쟁 유전자와 같은 K-문화 유전자도 분명 크게 작동했다는 얘기다. 이를 뒷받침하는 인터뷰가 있다.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은 K-클래식의 저력을 ‘한국인들은 뭔가 한 가지 일을 선택하면 그 일에 대해 파고들며 끝까지 모든 것을 쏟아낸다.’며 한국인들의 목표에 대한 절실함을 가지고 어떤 상황에서도 고군분투하는 점을 꼽았다.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K-클래식의 성과는 마치 K-팝 가수들이 성공 스토리와 유사하다. K-팝 가수들이 수년간의 연습생 시절을 거쳐 데뷔하는 것처럼 K-클래식도 재능 있는 영재들을 조기에 발굴하여 서로 경쟁을 통해 성장시킨 것이다. 성공을 위한 하나의 육성 시스템의 결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K-팝 가수들의 기나긴 연습생 생활 속에 성장기 시간을 빼앗기게 되어 종종 아이어른이 나타나는 것처럼 K-클래식도 콩쿠르 우승에 너무 초점을 맞추다 보니 ‘우승’이라는 성과에만 몰두하여 매일 10시간 넘게 연습만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는 생각해 볼 일이다. 클래식 기반이 없는 나라에서 국제 콩쿠르 우승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지만 예술가도 한 사람의 인간이고 예술도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임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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