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속에 우리가 들어 있다.
음식을 문화와 인문학, 역사학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연구하는 음식 인문학자 주영하 선생의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음식에 대한 철학 그리고 그 음식의 역사에 대한 선생의 해박한 지식을 감탄하며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한때 국수장사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해도 쉬웠으며 몰랐던 것에 대해 알아가는 기쁨도 컸다. 특히 술에 대한 이야기는 몇 꼭지에 걸쳐 많은 내용이 있는데 술꾼으로서 더욱 흥미 있게 읽었다. 주당들은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본문만 525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지만 생각보다 술술 넘어간다. 중간중간 사진이나 삽화, 역사적 자료가 첨부되어 있어 이해하기도 좋다. 벽돌 책이라고 너무 겁먹지 말고 도전해 보시길, …
2. 읽으면서 기억에 남는 문장들(관심 음식들)
조선시대 사람들은 밥을 엄청 많이 먹었다. 조선말 사진을 근거로 그 양을 측정해 보았더니 무려 900cc나 되었다.
→요즘 세대 밥그릇 용량이 평균 270cc인 것을 감안하면 입이 떡 벌어진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이 ‘밥심이지’를 입에 달고 다녔나 보다. 하긴 요즘 쌀밥을 많이 먹지 않는 시대라지만 예나 지금이나 세상사 다 '밥 심이지' 암만
조선 말기 등장한 후루룩 한 끼 식사 장국밥은 간편하게 만든 음식인 듯 하지만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장국밥은 조선간장으로 간을 해 끓인 국에 밥을 말아 나온 음식을 가리킨다. 당연히 장국밥의 ‘장’은 간장을 뜻하는 장이다.(p65)
→시골 오일 장날 하루 종일 졸졸 어머니 따라다니며 장구경 하다 늦은 점심으로 얻어먹은 장국밥이 생각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여태껏 장날 파는 국밥인 줄 알았다. 아니었구나. 간장으로 간을 한 국밥이었구먼. 그래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는 게로군. 장국밥이 뜻이 이런 줄도 모르고 여태껏 장날 파는 국밥으로 알고 어디 가서 아는 체하며 살았으니.
설렁탕에 대한 유래에 대해 여러 설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여러 유래에 대한 주장은 모두 문헌적 근거보다는 추정에서 비롯되었다. 가장 잘 알려진 조선시대 선농제를 지내던 선농단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이에 대한 직접적인 문헌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런 추정을 해본다. 혹시 국물 맛이 ‘설렁설렁하고’ 고기도 ‘설렁설렁’ 들어간 상태를 보고 ‘설렁텅(설넝텅)’ 혹은 설농탕이라 부르는 것이 아닐까?
→내가 들어본 설렁탕의 유래 중에 가장 그럴듯하다. '설렁설렁한 국물'과 '설렁설렁 들어간 고기'에 한 표.
육개장은 개장국을 대신하여 만들어진 음식이다. 조선시대에도 개의 식용에 대해서는 찬반이 있었다. 이에 개장국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육(소고기)을 넣고 끓인 육개장이 탄생하였다고 한다.
→이제 개장국은 한국 사회에서 사라질 듯하다. 최근 법으로 금지하겠다고 발표했으니 4~5년 후면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믿는다. 그럼에도 못 참겠으면 육개장을 드시라.
삼계탕의 원래 이름은 계삼탕이었다니…. 이랬던 이름이 1960대 들어서면서부터 삼을 전면에 내세우고 삼계탕이 되었다나…
→'삼계탕' 'K 치킨'은 명실상부 K 푸드 대표주자다. 닭이 지금 K 푸드를 이끌고 있다. 닭들에게 감사를...
술을 별 안주 없이 큰 잔으로 마시는 일을 대포라고 하는데, 대포로 술 마시는 집이 대폿집, 소주를 대포로 파는 집은 다모토리, 서서 마시는 집은 선술집이었다. 여기에서 다모토리는 일본어가 아니라 순 한국어로 서울 지역어이다. 큰 잔으로 소주를 마시는 일이나 큰 잔으로 소주를 파는 집을 가리킨다. 그러니 대폿술은 오로지 막걸리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소주 대폿술, 정종 대폿술도 있었다.
→다모토리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그것도 순수 서울말이라니. 오늘이 불금이다. 다모토리에서 한잔하고 싶다.
탁주라 하는 것은 막걸리라 하기도 하고 탁백이라 하기도 하고 큰 술이라 하기도 하나니.
→하루 농사일을 마치고 동네 어른들이 마을 정자에 앉아 탁백이 한 잔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었던 시절이 떠오른다. 지금 그분들은 모두 돌아가셨으니 그리운 마음을 삭이며 그저 세월을 탓하노라.
해장국은 ‘해정(解酲)’이란 한자와 탕을 뜻하는 ‘국’이 부어서 만들어진 말이다. 본래 ‘정(酲)’이란 말은 술이 깬 후에 정신이나 마음이 마치 몸이 아픈 환자처럼 맑지 못한 상태를 가리킨다. 이런 상태를 ‘해(解)’한다는 말은 곧 ‘푼다’는 뜻이다.
→이 문장을 읽으니 숙취로 고생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숙취라는 말보다 ‘정(酲)’이란 말이 더 피부에 닿는 표현이었구나. '술이 깬 후 정신이나 마음이 마치 몸이 아픈 환자처럼 맑지 못한 상태' 이럴 때는 해장국과 함께 해장술 한 잔!
3. 짧은 감상
책 읽고 뭔가 먹고 싶어지게 하는 책은 드물다. 이 책이 그렇다. 다 읽으니 배가 고프다. 어떤 음식이든 먹고 싶어지게 하는 책이다. 저녁에 독후 감정을 참지 못하고 집 냉장고를 털어 닭 요리를 해 먹었다. 항상 말하지만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기도 하지만 몸의 양식이기도 하다. 입맛 잃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