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젠장! 폭삭 속았수다!

잊었던 내 군생활의 기억 소환

by 청년홈즈

버스는 천천히 터미널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창가에 붙은 엄니 손은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더욱 빨라졌다. 먼지 낀 차창 너머로 환하게 웃고 있는 엄니 얼굴이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아직 각이 덜 잡힌 어벙벙 이등병도 소심하게 손을 올려 흔들기 시작했다. 후진으로 정차장을 벗어난 버스는 미련 없이 터미널을 빠져나가 속도를 내자 창가에 어른거리던 엄니 손도 희미해졌다. 막 군섕활을 시작하는 이등병의 이별식은 그렇게 어색하게 막을 내렸다.


1989년 7월 11일 입대.

전국 각지에서 모인 청년들은 한여름 땡볕 속에 6주간의 신병교육을 받으며 민간인에서 총을 든 군인이 되었다. 혹독한 훈련의 포상은 퇴소식과 함께 주어진 1박 2일의 가족 면회 시간이었다. 하지만 짧고 달콤했던 훈련병의 1박 2일 면회는 그렇게 버스를 타고 사라졌고, 훈련소에 복귀 하자마자 신병들은 각자 배치를 받은 부대로 떠나기 시작했다.


연대, 대대를 거쳐 근무 부대에 도착한 것은 9월 말이었다. 산 넘고 물 건너 내가 배치받은 곳은 강원도 화천 백암산 자락, 철책을 지키는 부대였다. 말로만 듣던 분단의 현장을 처음 접했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살벌하다고 해야 할까 뭔 지 괴기스럽고 현실감이 떨어져 마치 영화 속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없이 펼쳐진 철책 위에는 까마귀 떼들이 까맣게 줄지어 앉아 ‘까악 까악~’ 짖어대고 있었다. 그 괴기한 울음소리는 어벙벙 신병을 더욱 주눅들게 만들었다.


7번 근무지, 나의 첫 경계근무 초소 번호다. 나는 아직도 그때 함께 근무했던 고참의 첫마디와 그 소초 모습이 선명하다.

“신병~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여기까지 왔나?”

낯선 풍경과 괴기하게 짖어대던 까마귀 떼 울음소리와 낯선 군복과 총 그리고 무관심인지 비웃음인지 냉정하게 던진 고참의 한마디에 나는 그냥 얼어 버렸다.


철책의 겨울은 춥기도 드럽게 춥다. 그해 겨울 백암산 자락에 붙어있는 온도계는 영하 28도를 가리켰다. 실제 내 눈으로 선명하게 확인했던 기억인데 가끔 주변에 이를 얘기하면 잘 믿지 않는다. “에이 뻥도 우리나라가 북극이냐?” 그런 반응이 대다수다. 하지만 이는 내 기억의 편집이 없는 진짜다. 거기 근무해 본 사람은 안다. 백암산 철책의 겨울이 얼마나 추운지.


철책근무를 시작한 지 두어 달쯤 되었을 때이다. 백암산 자락을 타고 올라온 칼바람이 이등병의 귓볼을 찔렀다. 그날따라 까마귀 떼들은 아침부터 짬장(음식쓰레기 버리던 곳)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극성스럽게 짖어 댔다.

“까마귀 때 짖는 걸 보니 오늘 편지가 오려나”

철책에서 까치를 본 적이 없다. 아마 까마귀 떼에 밀려난 것 같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철책에 온 후부터 까마귀를 까치를 대신하는 메신저로 믿기 시작했다. 그날이 보급품 들어오는 날이라 오후에 수송 다찌차가 편지 한 뭉텅이를 던져 주고 갔다. 혹시나 했는데 까마귀 덕분인지 내 편지도 끼어 있었다. 고향집 여동생이 보낸 편지였다. 편지 속에는 두어 달 만에 만나는 엄니가 들어 있었다.


‘오빠 니는 엄니한테 잘해’

엄니는 화천터미널 이별식 후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쯤부터 울기 시작해 고향집에 도착할 때까지 울었다고 한다. 얼마나 울었는지 귀가 멍해 일주일 동안이나 귀가 울려 고생을 했다고 하니 읽는 내내 눈물 주머니가 꿀렁거렸다. 저녁 점호가 끝나고 조용히 화장실에 숨어들었다. 컴컴한 화장실 구석에 숨어 얼마나 울었었던 지 다음 날 나는 개구리왕눈이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23살 청년의 군생활은 엄니의 눈물로 시작되었고,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려도 돌아간다던 고참들의 말처럼 3년이라는 시간도 조금씩 깎여 나갔다. 아들의 무사 제대를 내내 빌었을 엄니 덕분인지 나는 큰 사고 없이 멀쩡한 몸으로 제대를 하였다. 살면 살아진다는 말처럼 견디다 보니 군 시간이 그렇게 사라졌듯 제대 후 수십년 동안 군생활의 기억도 내 삶에서 사라졌었다.


‘폭싹 속았수다’ 그 기억이 소환되었다. 주변에서 하도 난리길래 건성건성 보기 시작했는데 금명이가 아버지(관식)를 터미널에서 떠나보내는 장면이 있었다. 순간 나는 이등병 군바리로 돌아갔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곳에는 관식이가 된 나의 어머니 이주영 여사와 까맣게 그을린 어리바리 군바리 금명이 전이병이 서 있었다.


이런 젠장!

달달한 청춘 로맨스인 줄 알았는데 폭삭 속았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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