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강국 K, 출판 창작자들도 대우받는 나라
‘전작가!’
지인들은 나를 전작가라 부른다. 들을 때마다 오글거린다. 졸저지만 몇 권의 책을 출간했다고 부르는 호칭이다. 마지막 책 출판한 지가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전작가다. 요즘은 그냥 전(田炳号)작가가 아니라 전(前) 작가려니 받아들인다.
한 때 전업 작가를 꿈꿨었다. 10여 년을 준비하며 쓴 첫 책은 80여 군데 출판사에서 거절당했다. 어렵게 좋은 출판사를 만났다. 첫 책을 받아 본 날 그 짜릿함을 잊지 못한다. 그렇다. 나도 한 때는 작가였다. 미천한 글재주지만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참 좋았다. 첫 책 이후 20여 년 다닌 첫 직장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살기로 마음먹었었다. 근 2년여를 도서관에 앉아 책 읽고 글만 썼다. 그렇게 나온 책들이 몇 권 된다. 그때 바로 깨달았다. ‘절대 글 써서 못 먹고 산다’는 선배들의 조언을.
‘문화강국 K’가 오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지난 대선 이재명 후보는 위기의 시대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계를 주도하는 K-이니셔티브 시대, 문화강국 K를 열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문화 창작자의 한 사람으로 반드시 실현되길 소망한다.
『‘세계 문명을 선도하는 소프트파워 문화강국/K-컬처 시장 300조원 시대 개막’
• K-팝, K-드라마, K-웹툰, K-게임, K-푸드, K-뷰티 등 세계 진출 지원 확대
• 문화예술 인재 양성, 창작공간∙비용 등 지원 강화
• 인문학 지원 확대, 전 국민 인문 교육 활성화 추진
• 콘텐츠 불법 유통 단속 강화』
(출처:제21대 대통령 선거 이재명 후보 공약집)
최근 들어 K-문화 인기가 시들해 보인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과 K팝의 리더 BTS의 입대, 국내 정치의 혼란 등으로 겉으로는 예전의 인기를 얻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지금은 케즘 기간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마케팅에서 케즘이란 신제품이 얼리어답터를 넘어 주류시장에 가기 전 잠시 정체기를 겪는 기간을 말한다. 현재의 K-콘텐츠는 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 중국 동남아를 중심으로 일부 얼리어답터들에 의해 K-팝과 K-드라마를 통해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2013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뉴미디어 플랫폼 유튜브를 타고 전 세계에 K-팝을 알리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는 K콘텐츠 얼리어답터들을 만드는 촉매제가 되었다. 이후 K-콘텐츠는 BTS, 블랙핑크 K-팝과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 K-드라마, 영화가 인기를 끌며 K-뷰티, K-푸드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었다. 지금 비록 예전처럼 폭발적인 현상으로 보이지 않지만 K-문화는 여전히 세계인들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지금은 잠시 숨 고르기 하며 케즘을 뚫어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K-문화가 이제 곧 주류시장으로 올라설 것을 확신한다. 이런 나의 믿음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한국국제교류재단 연간 해외 한류 동호회 현황 조사에 의하면 2012년 757개에 불과했던 한류 동호회는 2023년 1,748개로 늘었으며, 2012년 약 920만 명이었던 동호회 회원수도 2023년 2억 2천5백만 명으로 약 24배 증가했다고 한다. 또한 2024년 우리나라에 온 유학생 및 한국어연수생은(법무부 통계자료) 무려 26만 3천여 명이라고 한다. 이들 대부분은 10~20대들이며 향후 수십 년간 K-문화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나는 문화강국 K가 세계를 홀릴 것이라 확신한다. 그 이유는 한반도 유구한 역사 속에 들어 있는 무궁무진한 콘텐츠 원석 때문이다. 한류의 대표 주자 ‘대장금’은 중종실록에 단 9차례 등장하는 인물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든 창작물이다. 역사 속 몇 줄의 원석을 캐내 메가히트 콘텐츠로 만든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런 원석이 무궁무진하다. 세계기록유산 조선왕조실록(태조~철종 조선 472년간의 기록), 세계 최대 기록물 승정원일기(인조~순종, 조선왕조실록의 4배)가 있으며 삼국유사, 삼국사기를 비롯해 많은 기록물들이 남아 있다. 이뿐인가? 일제강점기와 전쟁 그리고 분단, 군부독재와 민주화 운동, 촛불혁명과 불과 몇 달 전 겪은 내란과 빛의 혁명 등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한마디로 콘텐츠 보물창고다.
‘스토리가 많은 나라에 태어난 당신이 부럽다’ 소설가 황석영선생에게 프랑스 소설가 르 클래지오(Jean-Marie-Gustace Le Clezio)가 했다는 말이다.
한국의 창작자들 기억 속에는 지난 70여 년 근현대사 경험이 들어 있다. 또한 그들의 유전자 속에는 5천 년 한반도의 역사가 들어 있다. 그 바탕에 창의력을 발휘해 인류의 보편적 메시지를 담은 신선한 콘텐츠를 만들어 낸다. K-콘텐츠 창작자들이 가진 강력한 매력이다. 그 증거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콘텐츠 재료 부유국인 나라에서 출판 창작자 보호 및 육성은 문화강국 K를 이루기 위한 기초공사나 다름없다.
문화강국 K, 그러나 지금 출판 창작자들은…
겉으로 보면 지금 문화강국을 꿈꿨던 백범 김구 선생의 소망은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얼마 전 저작권 문제로 법정 다툼을 벌이다 세상을 등진 작가가 있다. 바로 ‘검정 고무신’의 작가 이우영 선생이다. 창작자에 대한 이 나라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유사한 건으로 백희나 작가의 ‘구름빵’ 분쟁도 있었다. 두건 모두 창작물이 대 히트하며 비극이 시작되었다. 원작이 영화, 뮤지컬,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의 폭넓은 사업영역으로 확장하며 크게 성공했지만 정작 원 창작자에게 돌아간 수입은 몇 백만 원에 불과했다. 현 저작권법의 맹점이다.
잘 팔리지는 않았지만 몇 권의 책을 출판했고 지금도 글을 쓰고 있는 창작자로서 나는 강력하게 주장한다. 출판 저작자들의 창작권, 저작권 보호 및 정당한 대우를 해달라. 현재 출판 저작자들은 책을 출간했을 때 판매된 책 1권에 대한 인세 외에 창작자에 대한 별도 보상은 없다. 특히 도서관에서 대출로 읽는 책에 대한 창작자 보상은 아예 없다. 작곡가들은 노래방이나 방송에서 누군가 자신의 노래를 부르면 음원에 대한 저작권료가 들어오는데 출판 창작자들은 최초 1권에 대한 인세 외에 저작권료는 없다. 창작자의 결과물인 창작물을 노래로 소비하는 것이나, 도서관에서 책으로 소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노래는 저작권료를 인정해 주고 출판물은 수십 번씩 대출해 소비해도 저작자의 권리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 창작의 고통, 노력은 음악이나 글을 쓰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 왜 출판 저작자들만 합당한 대우를 못 받고 있는지 궁금하고 답답할 뿐이다.
음원 저작권료 책정은 전국 노래방 기기와 연동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출판물도 가능하다. 이미 전국 도서관은 통합전산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대출 통계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출판 저작권료 지급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오늘 밤도 노트북 모니터를 노려보며 불면의 밤을 지새우는 수많은 글쟁이들은 이제 합당한 대우를 받고 싶다. 창작물을 소비했으면 다만 몇 푼의 저작권료라도 그 대가를 창작자에게 지급하는 것이 옳다.
문화적 부흥을 일컫는 르네상스는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에서 시작되었다. 14~16세기 예술가들을 후원했던 메디치 가문에는 조각가, 과학자, 시인, 철학자, 화가, 건축가 등 온갖 사람들이 다 모여들었다. 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며 르네상스라는 문화의 꽃이 피었다. 이를 ‘메디치 효과’라고 한다. 국가가 창작자들에게 ‘메디치 가문’이 되어 주길 바란다. 살아생전 자신의 그림을 1점밖에 팔지 못했다는 가난한 예술가 빈센트 반 고흐 옆에 그를 평생 후원해 준 동생 테오가 없었다면 명작 ‘별이 빛나는 밤’은 없었을 것이다. K-문화 창작자들에게도 메디치 가문이 필요하다. 창작자가 보호받고, 창작자가 합당한 대우를 받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그 시작은 출판 창작자들에게 합당한 저작권료를 지급하는 일이다.
나는 여전히 前작가가 아니라 田작가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