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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Oct 06. 2021

나보다 미얀마 말을 더 잘 알아듣는 서당개

여행자의 나라 그 일상의 얼굴,두 번째 -개들의 천국

깔로에서 만난 수업 중인 서당개 

미얀마의 개들은 대부분 예전 우리 시골에서 보던 누런 똥개와 비슷하게 생겼다. 잡종 견이라 오랜 세월 여러 개들의 피가 섞여서 그런 것 같다. 깔로 트레킹 중 만난 도둑 수업을 듣던 서당개도 똥개 스타일이었다. 트레킹 중 가이드가 안내한 시골학교는 소박하고 아담한 미니학교였다. 교실이 모두 개방되어 있고 수업은 큰소리를 질러가며 진행하는 점이 특이했다. 옆 반에서 수업하는 소리가 엄청 크게 들리고 이에 질세라 큰소리로 합창하며 수업을 진행하니 멀리서 들으면 수업이 아니라 그냥 악을 쓰며 노래 부르는 것 같았다. 그 시끄러운 교실 창밖에 개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녀석은 마치 교실 밖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 같았다. 근데 가까이 가서 보니 그 시끄러운 중에 졸고 앉아 있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저래봬도 미얀마 말은 나보다 더 잘 알아듣겠지’ 

처음으로 개에게 질투심을 느꼈다.

▲ 깔로 트레킹 중 만난 서당개: 수업 중인데 졸고 있다.

레에서 만난 삼순이

‘삼순이는 잘 살고 있겠지’ 드라마 얘기가 아니다. 처음 미얀마 여행 시 인레 호수가 있는 낭쉐(Nyaungshwe)의 집시인(Gypsy inn)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강아지 얘기다. 우리 시골 똥개처럼 생긴 그 녀석을 처음 봤을 때, 예전 고향 집에서 기르던 '삼순이'가 생각나 그리 부르기로 했다.
 
인레 호수를 구경하고 숙소 마당에서 치킨에 미얀마 맥주를 마시며 여행자 놀이를 할 때였다. 낯선 곳에 늘어져 석양이 물드는 저녁 하늘을 배경 삼아 마시는 '치맥'의 맛은 황홀했다. 분위기에 취해 노닥거리는데 의자 근처에 4~5개월 정도 되어 보이는 누런 강아지 한 마리가 보였다. 그 녀석은 잔뜩 겁먹은 듯 꼬리를 엉덩이 사이에 바짝 끼우고 바닥에 버린 치킨 뼛조각을 노리고 있었다. 모습이 애처로워 먹다 남은 치킨 조각을 던져 주었다. 던져주자 마자 후다닥 저만치 물고 가더니 씹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그때 마침 마당에 나와 그 광경을 지켜보던 게스트하우스 주인 할머니가 '삼순이'를 향해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할머니의 행동으로 봐서 아마도 그 녀석은 여러 차례 이곳에 나타나 관광객들을 상대로 구걸했던 모양이다. 남은 치킨을 그 녀석에게 주려고 도망간 쪽으로 나가 보았다. 숙소 옆 작은 수로에서 눈치 보는 녀석을 발견했다. '삼순아' 부르니 자기 이름을 알아 들었는지, 나를 알아보는 것인지 눈치를 보며 한 발씩 다가온다. 치킨을 던져주니 덥석 물고 바람처럼 풀숲으로 들어갔다. 녀석은 무리에서 밀려 저리 떠돌고 있는 듯했다. 미얀마 개들은 새끼를 낳으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어미가 돌보지만, 때가 되면 무리에서 분가를 시키는데 저렇게 외톨이로 방출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번 여름에 5년 만에 다시 인레에 들렀는데 주변이 많이 변해 그때 그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삼순이 녀석 건강하게 잘 살고 있길 비는 것으로 안부를 대신했다.                                                                                      

▲ 바간에서 만난 외톨이 개 무리에서 방출된 떠돌이 개로 삐쩍 말랐다.

 

미얀마는 개들의 천국
사라진 왕조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 만달레이는 미얀마 제2의 도시라는 이름과 달리 무척 허름했다. 거리는 마치 예전 1970~1980년대 우리나라 작은 읍내를 걷는 듯한 분위기였다. 만달레이 도착 이틀째 저녁 시간에 시내를 걸어볼 기회가 생겼다. 전력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은 알았지만, 가로등 없는 밤거리는 인적이 끊겨 도시의 거리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을씨년스러웠다. 
 
어둠이 밀려올수록 컴컴한 도시의 거리에는 여러 마리의 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낮에는 그늘진 곳을 찾아 누워 졸던 개들이 저녁이 되자 거리로 모여드는 것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 수는 더 늘어 거리는 온통 개판이 되었다. 
 
대여섯 마리에서 많게는 십여 마리가 넘게 몰려다니는 게 보였다. 낮에는 그리 순해 보이던 개들이었는데 밤에 몰려다니니 조금 겁도 났다. 다행히 곁을 지나가도 사람에게는 위협을 가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곳저곳 몰려다니며 영역을 확인하고 세력 간 싸움도 벌였다. 으르렁 거리며 싸우는 소리, 깨갱거리며 도망가는 소리가 가끔 들렸다. 그 모습만 보면 이곳은 사람의 거리라기보다 개들의 거리라는 표현이 맞을 듯했다. 만달레이뿐만 아니라 미얀마 거리 곳곳에서 수많은 개들을 볼 수 있다. 가히 개들의 천국이라 할만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아무리 개를 좋아하더라도 거리에 돌아다니는 개를 함부로 만지는 것은 자제하는 게 좋다. 벼룩이나 진드기 같은 해충이나 몸에 해로운 균을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꼭 만져봐야겠다면 그다음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개를 탓해선 안 된다.      

                                                                               

▲ 거리의 개들 1 : 미얀마 개들은 대부분 이런 모습이다. 우리나라 똥개와 비슷한 모습들이다. 미얀마 거리 곳곳에서는 이렇게 널브러져 있는 개들을 볼 수 있다. 
▲ 거리의 개들 2 낮에는 이렇게 그늘을 찾아 쉬다가 저녁이 되면 거리로 나와 활보한다. 
▲ 낮잠 중인 미얀마 개: 구덩이를 파고 그곳에 들어가 있었다.

개는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구성원
미얀마 사람에게 개의 존재는 우리가 생각하는 애완견의 개념과는 다르다. 그들에게 개는 애완견을 넘어 그냥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으로 생각한다. 개들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며 누구나 밥을 주고 그 지역에서 함께 살아간다. 
 
처음에는 거리 곳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니는 개들이 조금 무섭기도 했다. 며칠 지켜보니 순박한 미얀마 사람들을 닮은 얼굴에 친근감이 생겼다. 미얀마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있을 때 개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먹던 것을 나누어 주었다. 그들은 사람이나 개들이나 서로 크게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대부분 불교를 믿는 미얀마 사람들은 불교적 믿음에 근거해 어떠한 생명도 해치지 말아야 하며 잡힌 생명도 풀어주면 공덕을 쌓게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 불교적 가치관 아래 미얀마 개는 사람들과 공생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미얀마 개는 모두 거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드물긴 하지만 애완견을 기르는 사람도 있다. 미얀마에서 애완견을 키운다는 것은 별도의 비용이 들어야 하기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는 쉽지 않다. 
 
인레 호수 여행 중 은세공을 하며 살아가는 소수민족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처음으로 생김새가 확연하게 다른 개를 만났다. 누런 개들만 보다 다른 모습 개를 보니 족보 있는 개로 보였다. 그 녀석은 길거리 개들과 다르게 집안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으며 관광객 맞이에도 한몫하고 있었다. 

깔로 미얀마 식당에서 기르던 시베리안허스키는 털에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것이 보통 비싼 개가 아닌 듯했다.     

                                                                                

▲ 미얀마 애완견:어떤 이들은 집에 개를 키우기도 한다. 인레 호수 은공예품을 팔던 집에서 만났던 애완견(좌), 깔로에서 만난 시베리안허스키(우) 


My life as a Myanmar's dog
아침에 눈뜨면 자기 영역을 어슬렁거리며 한 바퀴 순찰한다. 탁발하는 스님이나 식사하는 집 근처를 어슬렁거리면 누군가 아침 거리를 던져 준다. 부족한 대로 얻어먹고 한나절 그늘을 찾아 누워 잔다. 어떤 개들은 땅을 파고 구덩이에 반쯤 몸을 넣은 채 낮잠을 잔다. 그렇게 하루 종일 늘어져 있다가 어스름 저녁이 되면 동네 친구들과 만나 연애도 하고 돌아다니며 자기 영역 확인도 한다. 


내일 일어나면 누군가 또 밥은 줄 테니 내일에 대한 별걱정도 없다. 미얀마 개들의 일상이다. 물론 개들 입장에서 보면 겉보기와는 다르게 하루하루 동가식서가숙 해야 하는 삶의 고충을 털어놓을 수도 있겠다. 하여튼 내 눈에 비친 모습은 아무 걱정 없이 사는 그야말로 '개 팔자 상팔자'였다.


'My life as a dog'(개 같은 내 인생)

학창 시절 술만 먹으면 이 말을 외쳐대던 후배가 있었다. 현실의 퍽퍽함을 술로 달래던 시절이었으니 우리도 그의 말에 동조했다. 미얀마 개들을 보니 이 곳에서 개의 삶이 그리 나빠 보이진 않았다.


'My life as a Myanmar's dog(미얀마의 개 같은 내 인생)'
어떤 이가 개들의 천국 미얀마 개들의 삶을 알고 이렇게 얘기했다면 위로가 아니라 부러움의 대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너무 나갔나? 여하튼 내 눈에 비친 미얀마 개 팔자는 상팔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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