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보석 같은 얼굴-첫 번째 얼굴,일상의 여유 와끌래타잉
시계추처럼 살아가던 마지막 30대의 어느 가을, 지친 심신을 끌고 무작정 숨어들었던 속초 바다의 짙푸른 하늘이 떠오른다. 하늘과 바다 경계가 모호한 수평선 끝의 푸르름은 상처 받은 영혼을 말없이 안아 주었다. 가끔 힘들 때 푸른 하늘을 보는 습관은 그때부터 생겼다. 나는 깊고 푸른 하늘이 참 좋다. 드넓은 우주의 기운이 지구로 들어오는 통로 같기 때문이다. 여행 중 가끔 훔쳐본 미얀마 하늘은 보석같이 푸르고 깊었다. 이 깊고 푸른 미얀마의 보석같은 하늘을 미얀마 사람들은 집집마다 가지고 있는 의자에 누워서 본다.
미얀마의 숨은 보석 와끌래타잉
'와끌래타잉', 미얀마 사람들 집집마다 한두 개쯤 가지고 있는 생필품이다. 미얀마 말로 '와'는 대나무이고 '끌래타잉(끌래탄이라고도 발음함)'은 의자라는 뜻이니 대나무 의자를 말한다. 와끌래타잉은 미얀마의 숨겨진 보석이다. 재료가 고급이거나 디자인이 세련되어서가 아니다. 그저 대나무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투박한 생활 용품일 뿐이지만 이 평범한 의자에 수천 년 이어온 미얀마 사람들의 삶의 지혜가 앉아 있기 때문이다. 와끌래타잉에는 고단하고 퍽퍽한 일상이지만 안달복달하지 않고 느긋하게 살아가는 미얀마인들의 여유가 들어 있었다. 그리 풍족하지 않지만 그만큼만 즐기며 하루하루를 관조하듯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들어 있었다. 깊고 푸른 미얀마의 하늘이 여기 앉아 있었다.
구조를 뜯어보자면 일반적인 의자보다 전체적으로 낮게 보인다. 특히 엉덩이 부분은 푹 내려가 있어 거의 땅에 닿을까 말까 하게 되어 있다. 의자 가운데가 푹 꺼진 모양새다. 등받이는 뒤로 45도 정도로 젖혀져 있다. 의자 앞부분은 등받이 끝부분보다는 약간 낮지만 엉덩이보다는 높게 설계되어 있다. 몸에 힘을 빼고 와끌래타잉에 누우면, 엉덩이는 아래로 쑥 빠지고 발을 올리게 되는 구조다. 이때 올린 발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의자 끝에도 반쪽의 대나무로 볼록하게 마무리해놨다. 힘을 빼고 의자에 앉아보면 몸에 딱 맞는 느낌이 마치 어머니 자궁 속 같다.
이런 모습 때문에 앉아 있다기보다는 누워 있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등받이 끝에는 두툼한 대나무 반쪽으로 마무리해놨는데, 누우면 목에 딱 들어맞아 안마하듯 목을 부드럽게 감싸준다. 목으로 전해지는 대나무의 시원한 감촉이 아주 좋다. 등받이에 힘을 빼고 걸쳐 누우면 시선은 자연스럽게 하늘을 향하게 된다.
미얀마 거리를 걷다 보면 와끌래타잉에 누워 신문을 읽는 이나 책을 보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언뜻 보면 휴가지의 비치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모습이다. 바간(바강)의 게스트하우스 젊은 보스도 거의 하루 종일 문 앞에 놓인 와끌래타잉에 누워 있었다. 문 옆에 기다란 의자가 있는데도 거기보다는 와끌래타잉에 누워 꽁야(미얀마식 담배)를 씹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신문을 읽기도 하고, 지나가는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기도 하며, 가끔은 등받이에 목을 기댄 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도 보였다. 무료해 보인다기보다는 여유로워 보였다. 게스트 하우스 운영이 그리 만만치 않을 텐데 여행자인 나보다 더 여행자 같아 보였다. 앉아 있으면 왠지 불안하고, 눈뜨면 빨리빨리 살아가야 하는 우리 일상에서는 감히 생각해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넉넉하지 않은 퍽퍽한 삶일지라도 와끌래타잉에 기대 하늘을 볼 줄 아는 미얀마 사람들의 여유가 그저 부러울 뿐이다.
우리는 그들보다 행복한가?
우리나라 행복지수는 몇 년째 세계 꼴찌 수준이고,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국가라는 불명예를 몇 년째 안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사망원인 통계' 자료에 의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국민이 년간 1만 3670명으로 하루 평균 37.5명이었다. 이는 인구 10만 명당 26.6명꼴로 여전히 OECD 국가 중 1위다. 우리는 지금 그들보다 훨씬 물질적 풍요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보다 더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바간을 떠나기 전날 밤 게스트하우스 매니저 싸웅씨와 맥주 한 잔으로 조촐한 이별파티를 했다. 얘기 중에 자살이 한국 사회의 큰 문제라는 것에 대해 말해줬다. 한국에 대한 막연한 로망이 있는 미얀마 청년에게는 숨기고 싶은 얘기였지만 싸웅씨 생각을 듣고 싶어 얘기해 줬다.
싸웅씨 잘 사는 나라 '코리아'에(한국 드라마 영향으로 미얀마 사람 대부분은 엄청난 부자 나라로 알고 있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영 어울리지 않고 이해할 수 없다는 묘한 표정으로 한동안 말이 없었다.
싸웅씨 표정을 보며 제대로 하늘 한번 쳐다볼 틈도 없이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을 살아야 하는 우리들 삶이 와끌래타잉에 걸쳐 보였다. 싸웅씨와 나눠 마신 맥주 탓인지 아니면 소환된 현실에 급 우울 해졌는지 나는 와끌래타잉에 걸쳐 한동안 미얀마 별을 보았다. 행복은 꼭 물질적 풍요 속에 있지 않다. 미얀마 끌래탕잉이 알려준 진리다. 잠시 바간 하늘 별 밭을 헤매는 사이 싸웅씨가 어깨를 툭 치더니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한마디 던지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Hey! Mr. Jun! No problem! Don't Worry, Be Happy(헤이, 미스터 전. 걱정하지 마, 다 괜찮을 거야)."
역시 다시 보고 싶은 멋진 친구다.
조촐한 파티 후 한동안 온몸에 힘을 빼고 와끌래타잉에 몸을 맡긴 채 바간 밤하늘을 즐겼다. 잔잔한 바간의 밤하늘은 온통 별 밭이다. 보석같이 반짝이던 바간 하늘의 별빛을 잊을 수가 없다. 버스표를 못 구해 일정이 미뤄진 문제와 여행 막바지 피로감이 와끌래타잉에 묻혔다.
휴식이란 세상을 잊는 일이다. 늘 휴식 같은 기분을 들게 하는 와끌래타잉을 보며 미얀마 인들의 삶의 지혜에 경의를 표한다. 미얀마에 방문하거든 꼭 와끌래타잉에 한 번 누워 보라. 잠시나마 세상을 잊을 수 있다.
평범한 대나무 의자 하나 가지고 너무 과대포장하는 거 아니냐고 할지 모른다. 아무리 설명해도 직접 앉아 누워 보지 않고 그 맛을 알까 싶다. 신구 선생 광고가 떠오른다.
"니들이 게 맛을 알어?"
덧붙이는 글 | 미얀마어의 표기는 되도록 현지 발음에 따랐으며 일부는 통상적인 표기법에 따랐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