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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Nov 13. 2019

할머니가 날보고 ‘오빠’라니 이거 참

여행자의 나라 미얀마 그 일상의 얼굴-다섯 번째, 미얀마에 부는 한류

"Do you know Rain? 비, Rain?” (비를 아시나요?)". 

10여 년 전 해외출장 중 홍콩을 거쳐 마카오로 넘어갔는데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현지 가이드가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보자마자 유창한 영어로 질문을 했다. 짧은 영어 실력이지만 분명 '비'를 아느냐고 묻는 거였다. 지금이야 전 세계적으로 BTS(방탄소년단)가 대세라지만 10여 년 전에 Rain(비)은 한류의 대세 중 대세였다.
 

나는 빈약한 영어실력을 감춰보겠다는 생각으로 얼떨결에 "Yes(예스)"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단순한 '예스' 한 마디가 내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는 그때부터 반 흥분 상태로 나를 따라다니며 엄청난 질문을 쏟아냈다. 그렇잖아도 영어 울렁증이 있는 나는 반나절 넘게 그녀에게 영어 고문을 톡톡히 당해야 했다. 

그녀는 '비' 열성 팬이었다. 오전에 고객을 픽업하러 마카오 공항에 나갔는데 마침 입국하는 '비'를 직접 보았다고 자랑했다. 흥분상태였던 그녀는 나의 '예스'라는 의미를 내가 비와 직접적인 친분이 있는 것으로 오해한 것 같다. 나에게 비를 아는 한국사람이라 반갑고,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다. 여하튼 우리는 일정 내내 ‘비’ 덕분에 그녀에게 최상의 가이드를 받았다. 그때 한류가 정말 대단한 힘을 가졌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비”씨에게 늦게나마 고마움을 전한다.


미얀마 방송에서 한국 말이
미얀마에 가면 별 존재감 없이 살던 사람도 한국사람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대부분 미얀마 사람들은 단지 한국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여행자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다. 나도 미얀마 가기 전에는 이 말에 반신반의했었다. 실제 가보니 한국에 대한 관심은 상상 이상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지방 소도시쯤 되는 따웅지 시장 한복판에서 어설픈 미얀마 말로 "코리아루 묘 바(한국사람입니다)"하니 우리말로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렇듯 미얀마 한류는 다른 동남아 국가와 차원이 달랐다.

▲ 미얀마에 가면 라면이 아니라 ‘라연’: 양곤 시내에서 발견한 한국 라면 짝퉁


미얀마 한류의 중심에는 바로 한국 드라마가 있다. 밤 문화가 별로 없는 미얀마에서 텔레비전 시청은 그들에게 큰 즐거움 중 하나다. 미얀마에서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상상 그 이상이다. 믿기지 않지만 어떤 드라마의 시청률은 90% 가까이 나왔다고 한다. 실제 대부분 식당이나 술집에서는 축구 아니면 한국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었다. 대부분 한국 드라마는 더빙하지 않고, 자막을 입혀서 내보낸다. 이런 이유로 많은 미얀마인들은 "안녕하세요?", "오빠", "사랑해요" 등 간단한 한국말을 할 수 있다. 미얀마에 가면 못 알아들을 거로 생각하고 괜히 욕하지 마시라. 의외로 낭패를 당하는 수가 있다. 


현지 가이드 말에 의하면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은 2001년에 방영한 송혜교, 원빈, 송승헌 주연의 <가을동화>에서부터라고 한다. 그 이후 미얀마에서 한국 드라마는 다른 모든 프로그램을 제치고 최고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고, 이런 가장 큰 이유는 미얀마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한국인들과 많은 부분 교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얀마 사람에게는 '가족 중심의 문화'와 '정(情)의 문화'와 같이 우리와 통하는 정서가 있다. 다른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 한국 드라마에 깊이 공감하며 빠질 수 있는 이유다.
                                                                             

▲ 달라 지역에서 만난 미얀마 아주머니들: 한국사람이라고 말도 하지 않았는데 먼저 ‘안녕하세요?’하며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한국 드라마에 빠진 시어머니와 며느리
양곤의 밤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선 꼭 한 번 들러야 한다는 19번가(세꼬랑) 꼬치 골목에 갔을 때 일이다. 그곳에서 한국 드라마에 푹 빠진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만나게 되었다. 테이블에 앉아 미얀마 맥주에 꼬치구이로 여행자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젊은 여인이 나타나 어설픈 우리말로 “한국사람? 한국에서 왔어요?”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가게 안으로 들어가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를 데리고 나왔다. 젊은 여인은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쓰며 열심히 상황을 설명했다. 시어머니인데 한국 드라마를 엄청 좋아해 한국말도 열심히 배우고 있다면서 한국사람들이 왔다고 하니 꼭 만나보고 싶다는 거였다. 우리는 흔쾌히 허락했다. 시어머니는 소녀처럼 수줍은 미소로 연신 "안녕하세요", "사랑해요" 등 간단한 한국어를 외치며 우리를 반겼다. 괜히 우리가 스타가 된 기분이었다.

                                                                        

▲ 미얀마 한류:오전인데도 식당에 앉아 한국 드라마에 심취해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술집 벽면 TV에는 한국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세상사가 다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류 때문에 일부 부작용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일례로 미얀마인들은 한국 사람들은 모두 엄청난 부자로 안다. 어떤 음식점에서는 현지인보다 턱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왜 비싸게 받느냐고 따지면 ‘너네 나라는 부자잖아’라는 말로 당연시해버린다. 


딱히 부작용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한국말로 남자 호칭을 ‘오빠”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았다. 현지에서 어딜 가나 우리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말은 “안녕하세요?”와 “오빠”라는 말이었다. 젊은 아가씨가 오빠라고 불러주면 고맙겠지만 따웅지 시장 좌판 할머니가 날보고 “오빠”라며 웃으니 “이거 참 난감하네”였다. ‘오빠’가 우리나라 대표 말도 아닌데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궁금했다. 돌아와 눈여겨보니 정말 우리나라 드라마에는 “오빠”라는 말이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또 재미있었던 것은 유부남은 누구나 애인을 두고 살 거라는 편견이 생긴 듯, 남자들은 모두 애인이 있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한류의 소소한 부작용쯤으로 이해한다.
 
혹시 드라마 작가들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시청률도 좋지만, 우리나라 문화를 오해하게 하는 지나친 막장드라마는 지양해줬으면 한다. 드라마 한 편이 바로 세계 곳곳에 우리 문화를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창작의 자유까지 침해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미얀마에 부는 한류는 현재 진행형
이처럼 미얀마에 부는 한류 바람은 현지 교민에게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양분이 되고, 우리 같은 여행자에게는 어느 곳에 가든 호의를 받게 해주는 윤활유가 된다. 일부 교민은 이런 한류를 사업에 활용해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기도 했다.
 
양곤에서 <파리지앵>이라는 빵집과 외곽에 <골든파크(Golden park, 한국식 찜질방과 사우나)>라는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박구영 대표는 한류를 사업화에 잘 접목하여 성공한 사람이다. 박대표의 초대로 한국식 찜질방 골든파크를 방문했었는데 그 더운 나라 찜질방에 양머리 수건을 쓴 미얀마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한국 드라마’ 영향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만달레이에서 한국식당 <코리아 타운> 체인점을 3호점까지(2014년 기준) 운영하는 최정열 대표도 한류를 사업에 잘 접목시켰는데 식당 최고 메뉴는 한국식 치킨이라는 설명이었다. 물론 두 분 다 단순히 한류만으로 이룬 성과는 아니지만, 시대 흐름을 잘 읽어낸 사람들임은 분명했다.  

                                                                                     

▲ 재 미얀마 박구영 대표(2014년):파리지앵과 골든파크를 운영하며 KBS 강연 100℃에도 출현했던 성공한 사람이다. 


이번 여행에서 한류의 실체를 발견하고 동행자와 재미있어서 한참을 웃었다. 양곤 시내 대형마트 진열장에서 한글이 박혀 있는 짝퉁 라면을 발견한 일이다.(맨 위 사진) 분명 컵라면인데 상표에는 영어로 ‘K-MEE’와 바로 옆에 한글로 라면이 아니라 ‘라연’이라 쓰여 있었다. 거기에 ‘연’ 자의 ‘ㅇ’에는 태극문양이 디자인되어 있었다. 딱 봐도 한국 라면 짝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처럼 미얀마에 부는 한류 바람은 현재 진행형이며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해서 불 것이다. 꼭 한 번, 여행자가 되어 미얀마로 떠나 보길 권한다. 한국 사람인 당신은 미얀마에서 이미 한류 스타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며칠 전,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너 요즘 미얀마 여행기 쓰고 있던데, 읽어보니 미얀마 찬양 일색이네. 미얀마가 그리 좋으냐? 왜 너도 미얀마에 가서 살려고?"
 
'이거 이거 이 땅에서는 별 존재감도 없이 사는데, 정말 미얀마 진출 한 번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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