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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Nov 27. 2019

미얀마 연인들의 필수품, 이거 하나면 끝

미얀마의 관문 양곤의 얼굴, 첫 번째 - 우산 속 양곤의 연인들

'첫 키스!'

듣는 순간 기억 저편 무지개를 눈앞에 펼쳐놓는 가슴 뛰는 단어다. 이런 이유로 시인은 굳이 ‘달콤한 첫 키스’를' ‘날카로운 첫 키스'라고 노래했나 보다. 


암울했던 80년대에 청년기를 거쳤던 나에게도 어느 날 '날카로운 첫 키스'는 찾아왔다. 하지만 영화처럼 아니 내가 상상했던 그림처럼 그리 아름다운 장면은 아니었다. 학교 근처 어두컴컴한 골목길 담벼락에 붙어 술기운에 도둑질하듯 그녀의 입술을 살짝 훔친 기억이 전부다. 그럼에도 주책없이 펄떡거리던 심장 소리가 아직도 선명하게 들리는듯하다.


외로움으로 이랑을 내고

그리움으로 고랑을 내어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는다.

외로움이 영글면 

그리움이 맺혀 

사랑이 싹튼다지.


오늘 밤

잘 자란 별과

탐스런 달과

달달함 가득한 꽃밭에서

뛰놀 생각에

피곤을 재촉하여

꿈속으로 달렸다.


-‘죽은 연애 감성 살리기’ 연작 시 중 ‘사랑 87’


미얀마 연인들의 비장의 무기
오랜 세월 불교의 전통을 지켜온 나라 미얀마는 주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편이다. 이런 은둔의 나라 미얀마에도 최근 거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런 흐름을 가장 빠르게 받아들이는 층은 바로 젊은이들이다. 미얀마 젊은이들도 세계 여느 젊은이들처럼 BTS에 열광하고 인터넷을 통해 최신 유행을 좇는다. 젊은 연인들은 이제 애정 표현에 있어서도 보수적인 부모 세대와 달리 점점 과감해지고 있다. 양곤의 호숫가는 이런 젊은 연인들의 아지트다. 세상의 모든 연인들은 둘만의 공간을 원한다. 사랑에 빠진 양곤의 연인들은 나름대로 현명한 방법을 찾아냈다. 주변의 눈치와 시기 질투로부터 보호막이 되어 줄 비장의 무기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대낮에도 호숫가 이곳저곳에서는 이 비장의 무기(?)를 장착하고 달달한 러브 타임을 갖는 커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비장의 무기란 바로 ‘우산'이다. 양곤의 연인들은 맑은 날에도 우산을 가지고 다닌다. 처음에는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리는 미얀마 날씨 때문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깐도지 호수와 인야 호수의 젊은 연인들을 지켜보니 우산은 꼭 비 올 때만 필요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양곤의 연인들에게 우산은 연애의 필수품이자 은밀한 유혹의 도구이고 사랑을 지켜주는 둥지였다. 그들의 사랑은 우산 속에서 익어 가고 있었다.
 
이처럼 미얀마 양곤의 호숫가에 가면 벤치마다 작은 나무 사이마다 사랑을 만들어 가는 수많은 우산족들을 만날 수 있다. 여행자들은 사랑의 우산을 만나면 조용히 자리를 피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우산 속 연인들을 위한 여행자의 매너다.     

                                                                                

▲인야 호숫가의 우산족들:벤치마다 우산족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 미얀마 우산족: 위에 햇빛 가림막이 있는데 우산을 펴 든 이유는? 


미얀마 역사를 담은 두 개의 호수와 연인들
인구 600만이 넘는 거대도시 양곤에는 큰 호수가 두 개 있다. 깐도지 호수와 인야 호수다. 처음 호수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서울의 석촌호수 정도려니 했는데 가서 보니 어마어마한 규모에 입이 떡 벌어졌다. 작다는 깐도지 호수도 석촌호수의 4.5배 정도인 30만 평에 달하고 인야 호수는 깐도지 호수의 4배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두 호수 모두 인공호수라는 점이다. 
 
깐도지(Kan Dawgyi) 호수는 쉐다고파고다 옆에 있다. 깐(Kan)은 호수라는 뜻이고 도지(Dawgyi)는 왕실을 의미한다. 호수에는 거대한 두 마리 새 모양의 수상 건물이 보인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카라웨익 팰리스(Karaweik Palace)라는 레스토랑이다. 힌두신의 3대신 중 하나인 비쉬누(Vishnu)가 타고 다니는 상상의 새 카라웨익(산스크리트어로 가루다, 인도네시아 가루다 항공의 가루다와 같은 의미임)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이곳에서는 저녁식사를 하며 전통공연을 볼 수 있다.     

                                                                                 

▲ 인야 호숫가 우산 속 연인 


이 거대한 호수는 2500여 년 전 만들어졌다고 한다. 쉐다곤 파고다를 지을 때 침수를 피하기 위해 근처보다 60m 높은 언덕을 쌓아야 했다. 양곤은 우기에는 비가 4,000mm 가까이 오기 때문이다. 축구장 4.6개를 합친 크기인 1만 평(3만 3천㎡)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면적에 60m 높이의 언덕을 쌓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흙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때 파낸 자리가 바로 깐도지 호수다. 이런 면에서 보면 쉐다곤 파고다는 이 호수에서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다. 호수 위에 일렁이는 황금빛 파고다는 호수에 비친 것이 아니라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잔영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미얀마 역사가 깃든 호수에 미얀마 미래를 이끌 젊은 연인들이 모여드는 것은 전혀 연관 없어 보이진 않았다.                                                                                       

▲ 깐도지 호수: 쉐다곤 파고다를 짓기 위해 파낸 자리에 생긴 인공 호수라고 한다. 멀리 쉐다곤 파고다가 보인다.


▲ 양곤 국제공항 벽화: 미얀마의 대표 얼굴답게 깐도지 호수와 카라웨익 팰리스(Karaweik Palace) 모습도 보인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담고 있는 인야 호수
양곤 북쪽에 위치한 인야 호수는 현지어로는 인야깐(Inya Kan)이라 부른다. 이 호수는 1882년에서 1883년에 양곤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저수지라고 한다. 실제로 가보면 시내보다 높은 둑이 쌓여 있고 그 위에 호수가 있다. 인야 호수는 아웅산 수치 여사 때문에 더욱 유명해지기도 했다. 
 
오랜 기간 군부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했던 아웅산 수치 여사의 집이 인야호수 근처에 있다. 호수 주변에는 아웅산 수치 여사 집 외에도 미얀마 정치 권력자들과 상류층들의 집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근처에는 미국 대사관, 한국대사관 등도 있고 미얀마 최고 대학이라고 하는 양곤대학도 있다. 

▲인야 호수 주변에 있는 아웅산 수치의 집: 수치여사는 이 집에 수년간 가택연금되어 있었다.


대부분 도시의 호수가 낚시금지 구역이듯 인야 호수도 낚시 금지다. 그런데 현지 가이드는 인야 호수의 낚시금지 이유가 따로 있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해 주었다. 8888민주화 시위 때 많은 사람들이 군부정권에 의해 이곳에 수장되었는데, 군부정권은 혹시 그들의 유품이나 흔적들이 낚시에 걸려 나올까 두려워 낚시를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사실여부를 떠나 아직도 미얀마 사람들 마음속에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살아 있고, 인야 호수에는 그런 열망이 여전히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우리가 광주 망월동 묘역에 가면 느끼는 그런 감정과 다르지 않은 듯했다. 이야기를 듣고 호수 주변에 젊은 우산족들을 바라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미얀마 민주주의의 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 호수가 미얀마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연인들의 아지트가 되어 있으니 느낌이 남달랐다.                                                                                       

 

▲인야 호수: 120만 평에 달하는 도시 속에 거대 호수가 인상적이었다. 


세상에 모든 연인들은 자신들만의 공간을 원한다. 그런 이유로 젊은 연인들은 어디든 구석을 찾아 숨어 들길 좋아한다. 연인들이 영화관 찾는 이유가 꼭 영화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연애해 본 사람은 안다. 미얀마 우산 속 젊은 연인들을 보면서 문득 나의 청춘이 떠올랐다. 저런 멋진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굳이 술기운에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찾아 헤매지는 않았으리라. 
 

나도 큰 우산 하나 장만해야지. 이거 참!

동네 약국을 다녀오다 잠시 선 횡단보도에서 멍하니 신호를 기다리자니 건너편에 영화 같은 장면이 잡힌다. 스무 살 정도로 보이는 앳된 커플이 서로 밀착해 입을 맞대고 있다. 나름 개방적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원래 보수적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질투심인지 괜한 거부감이 올라왔다. 옳고 그름을 떠나 대낮에 길거리에서 하는 진한 애정표현은 아직 나에게는 부자연스럽다. 어쩌면 부러워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미얀마 양곤의 호숫가 젊은 연인들이 생각났다. 다음에 그 젊은 커플을 만난다면 커다란 우산 하나를 선물해야겠다. 
'둘만의 아름다운 사랑 공간을 위해서, 아니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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