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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Dec 06. 2019

압도하는 풍광에 할 말을 잃었다.

안 보면 후회할 미얀마의 대표 얼굴, 두 번째 -신들의 나라 바간

“오오 이럴 수가!”

압도하는 풍광에 이성은 멈추었고 언어는 굳었다. 겨우 뱉어낸 말이 이 외마디 감탄사였다. 실물로 상영되는 아이맥스(EYE MAX) 영화관에 온 듯 드넓은 평원에 펼쳐진 입체적 풍광이 눈앞으로 달려들었다. 오기 전 몇몇 여행안내서나 인터넷을 통해 얻은 정보가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 일 줄은 미처 몰랐다. 

‘이게 가능 해?’ 

꿈에서나 볼까 말까 한 비현실적 황홀경을 접하는 순간 쌓였던 피로는 한방에 사라지고 놀라움과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가슴속 깊이 밀려들었다. ‘바간(Bagan)의 파고다 숲’은 이렇게 단박에 낯선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천상에 있을 법한 신들의 나라 바간(Bagan)!’ 

첫눈에 흠뻑 빠진 바간 사랑에 대한 여행자의 헌사(獻辭 )다. 평소 무신론자임을 떠벌리고 다니던 여행자의 눈에도 이곳은 분명 신들의 나라로 보였다.                                                  

▲신들의 나라 바간의 파고다 숲


▲압도적 풍광에 이성은 멈추고 언어는 굳었다.


천상에 있을 법한 신들의 나라 바간

미얀마의 심장 인레 호수 탐험을 마치고 심야버스로 장장 8시간의 울퉁불퉁 멀미 길을 달려 바간에 도착했다. 미얀마 버스답지 않게 너무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오히려 우리 일정은 꼬이기 시작했다. 원래는 10시간 길이라는데 막상 도착하니 두 시간이나 빠른 새벽 3시 반이었다. 새벽 5시 반 도착을 예정하고 첫 일정으로 바간 일출을 잡았었는데 한밤중 낯선 곳에 짐짝 부리듯 내쳐져 난감해졌다. 하는 수 없이 일출 구경은 포기하고 일단 예약한 숙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도착부터 먹잇감을 향해 끊임없는 사냥을 시도하던 라인까(Line Car-미얀마의 대중교통 수단으로 우리나라 마을버스쯤 되는 작은 트럭을 개조한 미니버스)호객꾼은 우리 결정을 알아챘는지 인당 6천짯부터 흥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 벌써 미얀마 여행 10일 차가 넘은 베테랑 여행자 아닌가? 결국 우리의 노련한 흥정에 인당 1천짯에 합의했다. 나중에 바간을 돌며 어느 정도 거리감이 생긴 뒤에 따져보니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1천짯이면 적당한 가격이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어린 벨보이들이 로비 이곳저곳에 흩어져 곤히 잠들어 있었다. 미안스러운 마음에 얼른 반나절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방으로 스며들었다. 물먹은 솜처럼 피곤에 절은 일행은 들어서자마자 이내 곯아떨어졌다. 세 시간 남짓 침대에 파고드는 토막 잠을 깨운 것은 자명종이 아니라 놀랍게도 창문을 두드리는 미얀마 새였다. ‘새가 창문을 두드리다니’ 이 믿지 못할 사건은 삶 속에 보시가 습관화되어 있는 미얀마 사람들의 작품이었다. (자세한 사연은 ‘삶 속의 보시 흥애싸’ 편에) 평소 새들에게 먹이를 주었던 미얀마 사람들의 보시에 길들여진 새들이 배가 고팠는지 여행자인 줄 모르고 우리 방 창문을 쪼아댄 거였다. 우여곡절 끝에 입성한 바간에서의 첫 아침은 이처럼 상서로운 기운을 받으며 시작되었다.

▲신들의 나라 바간 파고다의 숲

“야 달래 밭이다”

지천이 나물 밭인 산골마을인데도 달래는 발견하기 쉽지 않은 나물이었다. 운 좋게 달래가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산삼 찾은 심마니 마냥 누나들에게 펄펄 뛰며 ‘달래 밭’을 외쳐댔다.

"야 파고다 밭이다."


신비로운 황홀경을 접하고 떠오른 말이 뜬금없이 ‘달래 밭’이었던 게 우습지만 바간은 말 그대로 지천이 파고다인 ‘파고다 밭’이었다. 양곤이나 만달레이, 인레 주변 등에서 크고 작은 파고다들을 보았지만 이처럼 수많은 파고다가 한 곳에 널려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천 년을 넘게 버텨온 파고다들이라니.    

▲사방에 펼쳐진 바간 파고다의 숲

  

▲바간 파고다의 숲


천년 고도 바간의 파고다 숲

바간 파고다 숲은 캄보디아의 앙코르왓트(Angkor Wat), 인도네시아의 보루부두르(Borobudur) 유적과 함께 세계 3대 불교유적이며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이런 소중하고 경이로운 문화유산을 후손에게 물려준 이는 바로 미얀마 최초의 통일왕국을 건설한 불세출의 영웅 아노라타(Anawrahta, 1044-1077) 왕이다. 이전의 바간 왕조는 부족 국가 규모의 작은 나라였으나 아노라타 왕은 본격적으로 정복 전쟁을 벌여 미얀마 전역에 세력을 넓혀갔다. 아노라타 왕은 남쪽(현 몬주)의 따톤(Thaton) 왕국에서 온 신 아라한(Shin Arahan)에 의해 불교신자가 된 다음 강력한 왕권 강화와 바간 왕조 통합을 위해 불교를 왕조의 정식 종교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지침이 될 경전이 없어 따톤 왕국의 마누하 왕에게 필사를 부탁했으나 거절당했다. 화가 난 아노라타 왕은 따톤 왕국을 정복해버리고 마누하 왕과 함께 수많은 불교건축 기술자들을 포로로 데려왔다. 그렇게 잡혀온 기술자들에 의해 바간의 수많은 파고다들이 지어지기 시작했고 이후에도 쿠빌라이 칸에 의해 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근 200여 년간 수많은 파고다가 건축되었다. 그 수는 무려 5,000여 개였다고 한다. 


이렇게 천 년을 견뎌온 바간 파고다 숲은 1975년 대규모 지진으로 수많은 파고다가 파괴되거나 훼손되었고 이후 최근에는 2016년 리히터 규모 6.8의 강진으로 또다시 큰 피해를 입었으나 여전히 2,200여 개 이상의 파고다들이 천년 고도를 지켜오고 있다. 


바간 지역에 들어갈 때는 2만5천짯(한화 약 19,800원 2019년 9월 기준-2014년 10$정도였는데 그 사이 5~6달러 올랐다)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그 입장료 중 일부는 진행 중인 바간 파고다 복원기금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인류문화유산 복원기금이라 생각하고 입장료 안내는 방법 찾는 일은 그만두길 바란다. 일부 여행자 중에 입장료 안 내고 바간 투어 했다는 걸 자랑스럽게 올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바간 유적들: 바간 풀숲의 무너진 파고다들(좌), 복원 중인 파고다
▲부 파야와탓빈뉴: 가장 오래된 파고다라는 부(Bu Paya)) 파야(좌)와 바간 최대의 사원으로 알려진 탓빈뉴 파야(Thatbyinnyu Paya)   
▲천 년을 지켜온 벽화와 불상들: 파고다 내부에는 천년을 지켜온 각양각색의 색 바랜 벽화와 불상들이 들어서 있다.   


미얀마 조상들의 혼이 깃든 곳 바간

호스까(말이 끄는 마차) 편으로 하루, 또 하루는 전기오토바이로 바간 파고다 숲을 탐방하였다. 그게 그거 같은 수많은 파고다 순례길은 지루할 법도 한데 오히려 각양각색의 파고다들을 음미하느라 뙤약볕 무더위도 잊고 가는 곳마다 신비감만 더해줬다. 바간 파고다의 역사를 하나둘씩 알아갈수록 그저 불심으로만 지어진 건축물인 줄만 알았던 파고다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이렇게 뙤약볕이 내리쬐는 아열대성 기후에서 타향으로 끌려와 강제노역이라니. 파고다의 웅장함과 아름다움만 보고 단지 여행자의 감상에만 빠질 일은 아니었다. 아무리 깊은 불심으로 지었다지만 이 수많은 파고다는 그저 왕조의 불심으로만 지어진 게 아니라 미얀마 조상들의 혼으로 지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층층이 쌓아 올린 벽돌마다 타향에 끌려와 가족을 그리며 흘린 미얀마 조상들의 눈물이 배어 있었다.


한여름 땡볕 아래 작업을 해본 사람은 안다. 웬만한 인내심 없이는 흐르는 땀과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를 이겨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천 년을 견디며 버텨온 수많은 파고다에는 미얀마 조상들의 한이 서려 있음을 깨닫고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호스까:바간의 파고다 숲은 호스까나 전기오토바이 등으로 구경할 수 있다.

군 제대 후 고향집에 머물 때 동네 어른들을 모시고 대전엑스포 행사를 다녀온 적이 있다. 거대한 건축물이 늘어선 드넓은 전시장 가득 채운 수많은 인파에 휩쓸려 다니며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어른들의 최첨단 세계박람회를 둘러본 감상 소감은 이랬다.

“저거 짓느라고 경장히(굉장히) 고생했겠구먼 그랴”

소감 치고는 너무나 극사실적인 표현에 얼마나 웃었는지. 송곳 같은 뙤약볕 아래 펼쳐진 어마어마한 파고다 숲에 들어서고 보니 나도 모르게 ‘저거 짓느라 경장히 고생했겠구먼’하는 말이 새어 나왔다.   

▲바간의 파고다: 아열대의 뙤약볕 대지 위에 세워진 파고다의 벽돌 한 장마다 미얀마 조상들의 피와 땀이 배어 있다.

바간은 곧 미야얀마다

미얀마 여행담을 쓰면서 바간(Bagan) 얘기를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꾸 뒤로 미뤄지게 되었는데 바간은 그만큼 몇 마디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곳이다. 마음 같아선 바간에 대해 수십 꼭지로 소개하고 싶지만 어마어마한 감흥에 압도된 탓인지 이 정도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럼에도 꼭 하고 싶은 말은 바간은 정말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롭고 경이로운 곳이라는 점이다. 드넓은 대지에 펼쳐진 파고다 숲은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갖게 하고, 천 년을 지켜온 파고다마다 얽힌 전설들은 이곳이 신들의 나라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현세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곳, 바간은 바로 그런 곳이었다. 단언컨대 바간은 미얀마의 대표 얼굴이자 미얀마의 혼이 살아 있는 미얀마의 자존심이다. 미얀마 여행자라면 바간을 보지 않고 미얀마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


'미얀마의 심장 인레호수가 미얀마의 선물이라면 바간은 곧 미얀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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