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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Apr 20. 2020

춘래불사춘

꽃봉을 자르고 꽃밭은 갈아엎었다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은 봄이다. 한낱 한량의 미사여구로만 알았는데 요즘처럼 이 말이 다가온 적은 없었다. ‘코로나19’의 습격으로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파산 위기에 직면해 있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동자들 수입은 제로가 된 지 오래다. 계절과 시기에 먹고 사는 많은 연관 종사자 및 사업자들도 엄청난 타격에 신음하고 있다.


나는 꽃과 나무에 기대 먹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코로나의 파도는 올봄 전국의 크고 작은 모든 행사와 봄축제를 지워버렸다. 해마다 한 시기 행사에 의지해 살아가는 전국의 수많은 화훼농가나 우리같이 행사 디자인과 기획, 행사장 조성을 하는 사람들에게 올봄 사업은 거의 바닥났다. 일례로 올해 전국 학교의 모든 졸업식은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시즌을 겨냥해 1년 농사를 준비해왔던 전국 화훼농가는 말 그대로 쫄딱 망했다. 꽃대를 잘라야 할 전지가위로 장미꽃 봉오리를 잘라야 했던 농부의 마음이 오죽했으랴. 해마다 튤립 축제를 열어 수십만 관광객을 모으던 어느 지자체는 막 피어나는 수십만 포기의 튤립 꽃을 따 버렸고 드넓은 제주도 유채꽃 축제장이 트랙터로 갈아엎어지는 장면을 보았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이번 행사는 취소합니다’라는 결정 뒤에는 이와 연관된 대책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비단 행사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시즌 개막도 못 하고 있는 프로축구나 야구로 인해 경기장 주변 상가나 관련 종사자들이 겪고 있을 어려움도 눈에 선하다. 물론 정부와 지자체가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음을 잘 안다. 실제 각 지자체에서는 많은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 여긴다. 하지만 그 정책이 결코 책상에서 나오는 공허한 대책이서는 안 된다.학교 개학 연기로 급식 식재료 납품 농가가 초토화되었다. 일부 농가에서는 밭을 갈아엎고 아예 다른 작물을 심었다고 한다. 이런 소식 뒤에 한 지자체에서 식재료 납품 농가를 살리자는 취지로 농작물을 일괄구매해 각 가정에 채소꾸러미를 만들어 보낸다는 소식은 그나마 반가웠다. 한데 이런 정책을 개학 연기와 동시에 발표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그렇게 자식같이 길렀던 작물을 갈아엎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해마다 봄꽃 축제에 의지하여 먹고사는 우리는 올해에도 이름만 대면 다 아는 큰 봄축제 공모에 응모하였다. 한달 넘게 야근하며 준비한 직원들 노력으로 당선의 기쁨을 맛보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코로나의 역습에 축제 취소를 통보받았다. 처음에는 연기라고 하더니 가을에 다시 공모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축제위원회의 대책이란 게 고작 “어쩔 수 없지 않냐”는 말뿐이었다. 공모 준비와 함께 일부 화훼농가에 계약재배까지 했는데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취소 통보와 함께 연관 분야와 해당 업체 대책까지 고민할 수는 없었을까? 최소한 통보 때 작은 위로의 말이라도 전했다면 서운함은 조금 덜했을 텐데 말이다.


코로나가 활개를 치건 말건 지천으로 꽃들은 만발하고 그들만의 한 차례 잔치를 치른 꽃잎들이 이리저리 흩날리는 봄이다. 코로나19로 봄꽃놀이 한번 제대로 못 해본 국민들을 위해 화훼농가 꽃을 일괄 구매하여 집집이 작은 화분 하나씩 배달해줄 ‘신박’한 정책을 생각하는 정치인은 없는 걸까? 꽃에 기대 사는 사람으로서 만발한 꽃을 볼 때마다 꽃들에게 더욱 미안해지는 봄이다. 봄은 왔는데 봄 같지 않은 참으로 슬픈 봄이다.


원문보기: 본 글은 2020년 4월 20일 한겨레신문 기고 칼럼입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41091.html#csidxb5d5738faead2339d870c3a40756d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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