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책, 아버지 책]
어려서 나는,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는 엄마, 아버지를 보며
엄마 책, 아버지 책이 따로 있는 줄 알았다.
큰 솥을 열어도, 작은 솥을 살펴도, 찬장을 뒤져도
먹을거리라곤 찾을 수 없을 때 '엄마 배고파' 한 마디면
부엌에 든 엄마가
뽀글뽀글 지글지글
금세 맛있는 한 상을 뚝딱 차려 내는 걸 보고,
엄마는 장롱 속에 감춰둔 엄마 책으로 공부해서 엄마인 줄 알았다.
형이 만들어준 나무 구름마 하나를 두고
동생과 티격태격 싸우다 바퀴 하나가 빠져버려 울고 있을 때
어디선가 짠 나타난 아버지가
쓱싹쓱싹 툭딱툭딱
금세 새것 같은 구름마를 번쩍 만들어 주는 것을 보고,
아버지는 장롱 속에 감춰둔 아버지 책으로 공부해서 아버지인 줄 알았다.
아직도 나는,
장롱 속 엄마 책, 아버지 책 비법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어림짐작으로 제비 새끼들 마냥 주렁주렁 달린 식구들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 아니었나 가늠만 할 뿐이다.
지금 나는,
젊었던 엄마 아버지보다 훨씬 나이가 들었음에도
엄마, 아버지처럼 뚝딱뚝딱 쓱싹쓱싹
제대로 해 내는 게 하나 없다.
그저 나는,
엄마, 아버지를 보고 어설프게 배운 대로
장롱 속 숨겨둔 사랑과 책임감을 챙겨 든 척
하루하루를 미련하게 살아 낼 뿐이다.
※구름마: 수레의 충청도 방언, 나무를 깎아 만든 네 바퀴 달린 장난감 수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