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년홈즈 Mar 03. 2020

엄마 책, 아버지 책

엄마 책, 아버지 책]


어려서 나는,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는 엄마, 아버지를 보며

엄마 책, 아버지 책이 따로 있는 줄 알았다.


큰 솥을 열어도, 작은 솥을 살펴도, 찬장을 뒤져도

먹을거리라곤 찾을 수 없을 때 '엄마 배고파' 한 마디면

부엌에 든 엄마가 

뽀글뽀글 지글지글 

금세 맛있는 한 상을 뚝딱 차려 내는 걸 보고,

엄마는 장롱 속에 감춰둔 엄마 책으로 공부해서 엄마인 줄 알았다.


형이 만들어준 나무 구름마 하나를 두고

동생과 티격태격 싸우다 바퀴 하나가 빠져버려 울고 있을 때

어디선가 짠 나타난 아버지가

쓱싹쓱싹 툭딱툭딱

금세 새것 같은 구름마를 번쩍 만들어 주는 것을 보고,

아버지는 장롱 속에 감춰둔 아버지 책으로 공부해서 아버지인 줄 알았다.


아직도 나는, 

장롱 속 엄마 책, 아버지 책 비법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어림짐작으로 제비 새끼들 마냥 주렁주렁 달린 식구들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 아니었나 가늠만 할 뿐이다.


지금 나는, 

젊었던 엄마 아버지보다 훨씬 나이가 들었음에도 

엄마, 아버지처럼 뚝딱뚝딱 쓱싹쓱싹

제대로 해 내는 게 하나 없다.


그저 나는,

엄마, 아버지를 보고 어설프게 배운 대로

장롱 속 숨겨둔 사랑과 책임감을 챙겨 든 척

하루하루를 미련하게 살아 낼 뿐이다.


※구름마: 수레의 충청도 방언, 나무를 깎아 만든 네 바퀴 달린 장난감 수레


매거진의 이전글 혹시 당신도 개저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