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르 Apr 16. 2021

20210416 향수지론

향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쓴 향수


재택근무를 하는데도 굳이 향수를 한번 뿌려본다.

향수는 기분을 리프레시 시켜주기 때문이다. 내가 향수를 좋아하기 시작한 건 대학생때 우연히 더바디샵의 화이트머스크라는 향을 접하면서부터 인것 같다. 부모님께 사달라고 해서 사는 물건이 아니라 내 돈으로 직접 취향에 맞는 물건을 구입한다는 것은 짜릿했다. 그 후로 나는 쭉 화이트머스크를 내 몸의 향인것처럼 장착하고 다녔다. 하루종일 들고다니면서 뿌린 것은 아닌데, 나의 몸이 움직일때마다 나는 이 향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향이자, 내가 가장 편안히 느끼는 향이 되었다.


사람들은 종종 나한테서만 나는 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끔은 좋다고 표현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뿌듯했다. 향에도 나의 아이덴티티가 담겨있는 것 같았다. 향은 사람의 분위기를 형성해준다고 믿었고, 나에게 있어 나의 분위기란 따뜻하고 포근한 것이라고 스스로 정의했다. 화이트머스크는 그런 향이었으니까. 휘발성이 좋아 비록 빨리 사라지지만 그 사람 근처에만 가면 은은하게 퍼지는 향이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으니까.


나는 지금도 화이트머스크를 뿌린다. 다만 1개만 뿌리지 않고, 화이트머스크를 백그라운드로 여러가지 어울리는 향수들을 조합해서 사용한다. 즉, 향수 레이어링이라는 기법(?) 이다. 모으는 향수가 하나 둘 늘어나면서 어떻게하면 두 가지 향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 날 고른 1개의 향수를 하나는 상체에, 머스크는 하체에 뿌려서 두 향이 아래 위로 부드럽게 섞이도록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향수 펌핑 방법이다. 화이트머스크는 어떠한 향과도 부드럽게 잘 어울린다. 하지만 머스크계열은 시트러스 계열과 혼합하여 사용하지 않는다. 두가지는 상반된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두가지가 섞였을 때의 느낌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 시도해봐야겠다.) 


향수가 원래 대놓고 '나 향수에요!' 하면 거부감이 생기는 법이다. 은은하게 퍼지게 하기 위해서 과도한 사용은 금하고 있다. 원체 향 자체가 진한 것도 있기 때문에 스프레이를 반만 누르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 해야 할 때도 있다. 특히 톰포드 브랜드의 향수는 향이 무겁고 진한 편이다. 최근 구매한 톰포드의 'Santal Blush'는 묵직한 향을 자랑하는데, 발향력이 좋은편은 아니라 한 군데에서 진득하게 머무르는 느낌의 향이다. 과도하게 한 곳에 뭉쳐서 뿌려지지 않도록 해야한다. 반면 조말론의 바질앤 만다린은 가볍게 툭툭 퍼져나가는 느낌을 가지고 있어 이곳 저곳 뿌려도 과한 느낌이 들지 않고 오히려 숲속에 들어온 것 같이 상쾌하다.


향수는 명확하게 호불호가 갈리는 물건이다.

그래서 함부로 선물하기도, 선물 받기도 애매한 물건이다. 누구에게 향수를 선물해 본 적이 없다. 누군가 나처럼 향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생일선물로 향수도 선물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주변에 '이 사람은 향수를 좋아하는구나'라고 느낄 법한 지인은 없었다. 향을 선물한다는건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정의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당신에게는 이런것이 어울려요'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은 조심스럽다. 싫어하면 구석에 쳐박히기 일쑤이다. 좋아하면 데일리가 될 것이다. 이도저도 아닌 중간단계에서 머무를 수는 없는게 향수라는 것이다. 사람 간의 관계처럼 회색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향기를 선택할 때 또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내가 머금고 있는 향기가 상대방과 중복되지 않아야 한다. 중복되는 것은 왜인지 내 정체성이 흐려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가급적 피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향이라고 해서 항상 같은 향이 발향되는 것은 아니다. 향수를 살에 뿌리면 그 사람의 살냄새와 섞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향수는 그 사람만의 온전한 분위기를 만들고, 아이덴티티를 만든다고 정의하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가끔 인터넷에서 향수를 구매하기도 하는데, 좋아하는 향수의 계열이 확실한 편이라 후각적 상상만으로 구매를 결정하는 것이다. 향수를 비롯해 향초도 그렇고, 디퓨저도 그렇고, 피우는 향도 그렇다.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직접 향을 맡아보고 사는 것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집의 향기나는 것들은 죄다 내가 산 것들이다. 심지어 섬유유연제의 향기, 샤워후 바르는 아기로션의 향기, 린스의 향기, 바디클렌저의 향기, 비누향기까지 모두 내가 신경써서 고른 것들이다. 그냥 내 몸에서 나는 향기 뿐 아니라 내 코에 들어오는 모든 향기들이 신경쓰이나보다. 어제는 새로 산 섬유유연제를 어머님이 사용하지 않아서, 조금 서운한 지경인걸 보면 어디에서든 좋은 향기가 머물기를 바라나보다.

나와 내 주변의 것들이 좋은 향기를 지니고 있듯, 내 마음도 언제나 주변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향기를 뿜어내기를. 가끔은 그 날의 의사결정에까지 영향을 끼쳐버리고, 한 사람에 대한 기억력까지 조작해버리는 매력적인 향기들을 도무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10415 커피를 마시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