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과정이다
애플워치를 사고 난 후, 가장 좋은 점이자 가장 나쁜 점을 꼽자면 굉장히 부지런하게 되었고, 부지런함에 집착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빨간색은 활동에너지이고, 초록색은 운동시간, 파란색은 일어서기 횟수이다. 나는 기본셋팅량인 340칼로리/30분/12회를 설정해놓았는데, 이 기본량도 하루종일 앉아서 일하는 사무직 직원에게는 채우기가 쉽지 않은 수치다. (채워본 사람만이 알 것.) 게다가 재택근무를 하는 나는 심지어 집밖으로 나가지도 않으니 더더욱 자연스럽게 움직일 일은 없다고 보면된다.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하루 1시간 정도의 운동을 한다. 매일 1시간씩 운동하는게 힘드냐고? 힘들때도 있고, 그럭저럭 할 만한 날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같은 것은 3가지 색상의 링을 다 채우는 날은 뿌듯한 마음으로 마음편하게 잠을 자러 간다. 오늘도 아기를 재우고 활동링을 채우고 자려고 사이클을 시작했는데, 간당간당하게 자정이 되는 순간 빨간링을 다 채웠다. 자정을 30초 남기고 2칼로리를 소비해야하는자의 삶은 쓸데없이 간절하다.
세개의 활동 링이 신나게 색색깔의 원을 그리며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을 볼 때의 기분이란, 이게 뭐라고 정말 뿌듯하다고 말하겠다. 새삼 그렇게 평소에 뿌듯한게 없냐고? 하루에 8시간을 일을 하는데 밥값은 하는 이상 나도 뭔가를 한다. 하지만 회사일은 해도해도 티나지 않는 업무들 투성이이고, 그날 하루만으로 성과를 볼 수 없지만, 워치의 활동링은 무조건 오늘 내 하루의 움직임이 시각화되기 때문에 묘하게 매일 정복하고 달성해야 할것만 같은 의무감에 사로잡힌다. 최근 바깥에 외출할 일이 있었던 날 충전해둔 워치를 모르고 집에 두고 나와서, 하루종일 워치없이 돌아다닌날이 있다. 하루종일 내 활동량이 궁금해서 참을 수 없다가, 에이 그럴거면 그냥 대략 비슷할 정도로 부지런하자라는 생각에 그날 하루는 에스컬레이터를 한번도 타지않고 부지런히 쉬지 않고 걸어다녔다. 그리고 집에와서는 애매하게 전부 안채우고 자는게 찝찝해서, 집에왔는데도 다시 워치를 차지 않았다.
몇 십 만원 투자한 요만한 액정 시계가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심박수 측정기와 움직임 센서로 빚어낸 현대식 문물이다. 그러고보니 애플워치를 산게 작년 말이니까 활동링의 기본 설정값을 그 후로 한번도 바꾸지 않았다. 가끔 활동에너지를 많이 채우는 주에는 기본 설정 값을 370으로 올려보라는 워치시스템의 권유가 있더라도 꿋꿋히 340을 고집했는데, 만약 호기롭게 370으로 기준을 올렸다면 나는 그후로 "370 에너지의 삶"을 살고 있었을까? 끌어올려진 수준에 나를 맞춰가며, 매일 3개 링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기 위해 나를 채찍질하며 살아가고 있었을까?
인생에 결과란 없는걸까. 인생은 계속 과정일 뿐인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