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20일 목요일
세 번 돌아가도록 설정해둔 세탁기에서 마지막 헹굼을 위해 물이 받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던 일을 멈추고 부엌 베란다로 나가 어느 정도 물이 찬 세탁기의 전원 버튼을 누르고 뚜껑을 여는 순간 히 하며 놀란 소리가 함께 나왔다.
전날 퇴근도 못하고 이틀째 땀에 찌든 남편의 출근복인 전투복을 돌리고 있던 참이었다.
물 위로 둥둥 떠다니는 황토색 지푸라기 같은 잔해물과 새끼손가락 반 토막 크기의 짧디짧은 하얀색 종이 막대기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손으로 건져 잔해물의 정체를 확인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담배였다.
담배가 피고 싶어 연연해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분명 아이들 갖기 전에 담배를 끊었던 그였다. 간혹 일이 힘들 때면 피는 것 같았지만 나로선 일의 고충을 함께 공유할 군번이 되지 못하니 힘들면 필 수도 있지 간단하게 생각했다. 남편의 바지 주머니에서 라이터가 몇 번 나왔어도 담배를 피운다고 그에게 핀잔을 준 적도 없었다. 이 잔해물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바로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보냈다.
이거 어떻게 생각해?
남편은 자기 전투복이 아니라며 모른다고 일관했다.
담배 속 유해물질이 비록 불에 태워지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유해물질이 우리 아이들 옷이나 심지어 속옷에라도 찰싹 붙어 있으면 어쩌지? 그러다 혹여나 아프기라도 하면? 나는 순간 별의별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의 도저히 납득이 될 수 없는 변명에 답변도 귀찮아 메신저 닫기를 누르고 이 끔찍한 세탁기를 먼저 수습해야 했다.
얘네를 다 어떻게 건진담. 갈기 갈기 찢어진 담배 몇 대가 아주 신이 나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주방에서 쓰는 뜰채. 그래 인간은 역시 머리를 써야 해. 얠 사용해서 모조리 건져 내리라.
그렇지만 뜰채를 이리저리 흔들어 자유롭기 그지없는 잔해물을 건져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 안되겠어. 일단 남편 옷을 꺼내고 세탁기의 물을 다 뺐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다 문득 통세척이 떠올랐다.
가지고 있는 세탁조 클리너를 죄다 풀어 다시 세탁기에 물을 가득 받기 시작했다. 정확히 한 시간 삼십 분 뒤 세탁기는 본인의 임무를 다 했다며 울어댔다. 어디 보자 ~ 이제 잔해물은 없겠지~ ? 하며 뚜껑을 여니 까꿍 나를 반기는 여전한 잔해물들.
내가 화가 난 건 남편이 담배를 피웠고 안 폈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영역인 주방에서 그의 영역인 담배 잔해물로 인하여 어차피! 결국엔! 언제나! 무조건! 내가 또 뒤처리를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왜 나는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인하여 정신과 육체의 고통을 겪고 있어야 하는가? 퇴근하는 남편에게 와다다다 쏟아 버리고 싶지만 까맣게 탄 건조한 얼굴로 퇴근해 아직도 저녁을 먹지 않아 배고프다고 말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나는 또 분명 와다다다 할 말들을 쏙하고 넣어둘 게 분명하다.
그 뒤로 통세척을 두 번 더 했다.
내 기준에서 다섯 번 정도는 해야 담배의 유해물질에 대한 찝찝함이 조금은 사그라질 것 같아 내일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벗을 때 주머니 안을 비우지 않은 남편 잘못인가
아니면 세탁기 돌리기 전에 주머니를 확인하지 않은 내 잘못인가?
*
어제 있었던 일
작은 아이의 댕댕이집을 구매하겠다던 엄마는 당일이 되자 지금 장난감 찾으러 가는 중이라며 메세지가 왔다.
알겠다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다시 메세지가 왔다.
갑자기 못 올 것 같단다.
방금 출발했다면서 갑자기 못 와?
난 어쩔 수 없이 어제의 아이 아픈 일이 다시 의심되기 시작한다. 이 사람 아무래도 약속 개념이 정확히 갖춰지지 않은 덜 성숙한 어른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