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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청 Oct 04. 2020

프리랜서의 달력

빨간 날이 없어도 좋아

collage artwork (2020), 진청


연휴가 특히 귀했던 올해의 추석이 끝나는 것에 대해 회사를 다니는 주변인들은 모두 아쉬워하고 있다. 그런데 추석이든 아니든, 한글날이든 아니든, 내게는 평소와 다를 것이 별로 없다. 특히나 코로나로 할머니 댁에도 내려가지 않아서, 엄마가 송편을 사 온 것 외에는 추석 기분이 전혀 나지 않았다. 


프리랜서로 맞은 첫해라 사실 조금은 어색하다. 빨간 날 하나하나가 말 그대로 내 피와 살처럼 느껴진 회사원 시절이 있었는데, 불과 일 년 만에 나의 상황은 아주 달라졌다. 오늘의 날짜, 요일, 앞으로의 연휴 일정 등등을 다 꿰고 있던 나였는데, 요새는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고 산다. 


할머니 댁에도 안 가겠다, 이번 추석 연휴 동안에 나는 평소대로 작업실에 갔다. 여러 작가들이 함께 쓰는 스튜디오 형식이라, 은근히 다른 작가님들이 없는 시간을 노려서 가곤 하는데, 내 예상과는 다르게 평소와 비슷하게 작가님들이 나와계셨다.


프리랜서의 삶은 그런 것 같다. 출근시간이나 퇴근시간, 평일과 연휴의 구분이 없다. 남들이 일하는 시간에 놀 수도 있지만, 남들이 노는 시간에 일할 수도 있다. 나는 오히려 남들이 일하는 평일 낮에 카페나 식당에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때 노는 걸 선호한다. 대신, 못한 일을 새벽 두세 시까지 몰아서 하기도 하고, 프로젝트 마감이 눈앞이면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휴일 없이 일하기도 한다. 


회사원일 때는, 일을 하는 주체가 나이긴 하지만 어쨌든 회사일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다 내 일이다. 그래서 프리랜서로 산 나의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면 회사를 다닐 때보다 더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던 것 같다. 올 한 해는 내가 살아온 29년 인생 중에 시간이 가장 빨리 간 해였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내 달력에는 빨간 날이 없어도 괜찮게 느껴진다. 프리랜서인 나의 솔직한 마음으로는 지금은 쉬는 날이 없어도 괜찮으니, 더, 더, 더 많이 일하고 싶다. 



인스타그램: @byjeanc

https://www.instagram.com/byjea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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