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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청 Oct 03. 2020

비관적 낙관주의자

프리랜서로 살면서 낙담하지 않는 법

A Pessimistic Dog (2020), 진청


그림을 전업으로 한 지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간다.

그림 그리는 건 아직 전혀 힘들지 않다. 그림이 어려울 때는 많아도, 그림은 언제나 나의 기쁨의 원천이다.

다만,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일의 불확실성이다.


출판사를 다니면서 수많은 작가들에게 이메일을 쓰고 연락을 했었다. 그때는 회사라는 간판을 등에 업고, 회사의 대리인으로서 작가들과 연락을 했는데, 이제는 상황이 역전됐다.


나는 개인인 작가가 되었고, 혼자서 회사를 상대로 업무를 보는 상황이 되었다. 이건 정말 만만치 않다. 일이 언제 어디서 올지 모르고, 일이 와도 어떻게 엎어질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불만인 상황이 있어도, 미래의 관계를 생각해서 내가 회사를 상대로 미주알고주알 불만사항들을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일해보고 싶었던 클라이언트들에게 제안이 온 적이 몇 번 있었다. 제안 메일을 받았을 때는, 마냥 신난 마음에 주변 사람들에게도 말하곤 했다. 그러나 계약금을 받고, 결과물을 넘기기 전까지는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다른 프리랜서들도 겪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꽤 많은 이메일들이 오가고 윤곽이 잡힌 프로젝트도 흐지부지 엎어진 경우들이 꽤 많다. 심지어 어떤 프로젝트는 며칠을 꼬박 일해 파일까지 다 넘겼는데, 코로나 때문에 회사가 상황이 여의치 않다며 메일을 세 번 정도 '읽씹' 당한 적도 있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서 익히게 된 방어 기제가 있다.

프로젝트 하나하나에 있어서는 기대를 하지 말되, 내 삶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이 모든 실패와 어려움들이 내 자산이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나는 자체적으로 이를 '비관적 낙관주의'라고 부르기로 했다.

'비관'과 '낙관'이 함께 있는 모순적인 단어지만, 앞서 이야기한 나의 방어기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딱 적절한 단어다.


기대한 만큼 실망도 크기 마련이다. 나는 김칫국을 자주 마시는 편이기 때문에, 제안메일이 왔을 때부터 온갖 상상과 망상의 나래를 다 핀다. 그렇지만, 이렇게 일이 몇 번 엎어지다보니 상심이 컸다. 내가 열심히 작업한 프로젝트가, 혹은 투고한 원고가 기대처럼 풀리지 않았을 때마다 매번 낙담한다면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 마음이 아무리 크다해도 오래 버티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비관적 낙관주의'는 내가 오래 그림을 그리기 위한 마음의 수단이기도 하다.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비관: 최선을 다하되 기대는 하지 말 것,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서 마음의 준비를 미리 다 해놓을 것.

낙관: 그렇지만 이 모든 시행착오들이 더해져서 결국에는 좋은 상황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믿을 것.

나무는 비관적인 시각으로 보되, 숲은 낙관적인 시각으로 보는 방법이다.


프리랜서로서의 삶이 이제 일 년도 채 안됐으니, 앞으로는 더 다채로운(?) 난항을 겪으리라고 예상된다.

그렇지만, 그 어떤 것도 내가 내 일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흠집을 낼 수 없도록 스스로 마음을 단단히 방어해야겠다.



인스타그램: @byjeanc

https://www.instagram.com/byjea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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