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몸치도 춤추게 한다
기뻐서 춤을 춰본 일이 있는가?
나는 기본적으로 몸치라 춤을 추는 일은 거의 없는 사람이다. 이런 내가 밀려오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춤을 춘 일화가 있다.
때는 취준을 한창 하고 있던 어느 늦겨울이었다. 낮밤이 완전히 바뀌어 새벽 세시, 네시쯤에 매일 잠들곤 했다. 자소서를 쓰고서 남은 밤의 몇 시간은 취준생인 내게 주어진 온전한 자유였다. 아무래도 온 신경이 취업준비에 쏟아져있던 상황이다 보니, 그림에는 손도 잘 대지 못했다. 그런데 그 날은 괜히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
이상하게 이 날은 뭘 했는지 몇 년이 지난 지금에도 세세히 기억이 난다. 야밤에 서랍 속에 널브러져 있던 아크릴 물감들을 꺼낸 후, 촛대를 꺼내서 불을 붙이고, 따뜻한 음악을 켜고, 오랜만에 그림 그린 만큼 낼 수 있는 기분은 다 냈던 것 같다.
그렇게 세네 시간 정도 그렸을까, 새벽 세시 즈음 그림이 완성됐다. 이 날 그린 그림은 지금에 와서도 내가 그린 그림 중에 가장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다. 내 마음에서 시작해, 내 손을 통해 탄생한 작품이 스스로의 마음에 드는 것은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한 경험이다. 너무 오랜만에 창작의 기쁨을 맛봐서일까, 취준으로 지칠 대로 지친 마음이 그림으로 위로받은 것일까, 정말로 나도 모르게 춤이 춰졌다! 춤이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감정표현일 수 있다는 걸 그 날 처음 느꼈다. 태어나서 기뻐서 춤을 춘 적은 정말 처음이었다.
이 날은 그 후의 내 인생에 오래도록 용기와 의지를 준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림을 반쯤 놨던 내가 이 날을 기점으로 매일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몇 달 뒤 취직을 하게 되었는데, 만약 이때 그림에 대한 열정을 되찾지 못했다면 회사를 다니면서도 그림을 그리진 않았을 것이고, 지금의 꿈도 없을 것이다. 그림 그리는 일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날에는, 이 날의 장면을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한다.
세상 몸치인 나를 춤추게 만든 그림이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나의 평생 직업이 되었으니 낙담은 그만하고 앞으로도 춤을 추며 나아가자고.
인스타그램: @byjea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