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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청 Sep 17. 2020

새벽 세시에 춘 춤

그림은 몸치도 춤추게 한다

dolphin dance (2019), 진청


기뻐서 춤을 춰본 일이 있는가?

나는 기본적으로 몸치라 춤을 추는 일은 거의 없는 사람이다. 이런 내가 밀려오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춤을 춘 일화가 있다.


때는 취준을 한창 하고 있던 어느 늦겨울이었다. 낮밤이 완전히 바뀌어 새벽 세시, 네시쯤에 매일 잠들곤 했다. 자소서를 쓰고서 남은 밤의 몇 시간은 취준생인 내게 주어진 온전한 자유였다. 아무래도 온 신경이 취업준비에 쏟아져있던 상황이다 보니, 그림에는 손도 잘 대지 못했다. 그런데 그 날은 괜히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


이상하게 이 날은 뭘 했는지 몇 년이 지난 지금에도 세세히 기억이 난다. 야밤에 서랍 속에 널브러져 있던 아크릴 물감들을 꺼낸 후, 촛대를 꺼내서 불을 붙이고, 따뜻한 음악을 켜고, 오랜만에 그림 그린 만큼 낼 수 있는 기분은 다 냈던 것 같다.


그렇게 세네 시간 정도 그렸을까, 새벽 세시 즈음 그림이 완성됐다. 이 날 그린 그림은 지금에 와서도 내가 그린 그림 중에 가장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다. 내 마음에서 시작해, 내 손을 통해 탄생한 작품이 스스로의 마음에 드는 것은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한 경험이다. 너무 오랜만에 창작의 기쁨을 맛봐서일까, 취준으로 지칠 대로 지친 마음이 그림으로 위로받은 것일까, 정말로 나도 모르게 춤이 춰졌다! 춤이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감정표현일 수 있다는 걸 그 날 처음 느꼈다. 태어나서 기뻐서 춤을 춘 적은 정말 처음이었다.


이 날은 그 후의 내 인생에 오래도록 용기와 의지를 준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림을 반쯤 놨던 내가 이 날을 기점으로 매일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몇 달 뒤 취직을 하게 되었는데, 만약 이때 그림에 대한 열정을 되찾지 못했다면 회사를 다니면서도 그림을 그리진 않았을 것이고, 지금의 꿈도 없을 것이다. 그림 그리는 일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날에는, 이 날의 장면을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한다.


세상 몸치인 나를 춤추게 만든 그림이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나의 평생 직업이 되었으니 낙담은 그만하고 앞으로도 춤을 추며 나아가자고.


인스타그램: @byjeanc

웹사이트: http://www.artbyjea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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