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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청 Sep 16. 2020

작가와 편집자

일로 만난 두 사람이 마음으로 걸어가는 길

seashell drawing (2018), 진청


작가와 편집자는 이인삼각 경기를 하듯이,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한몸으로 함께 걸어가야 하는 관계다. 그래서 작가에게 마음이 맞는 편집자가 있다는 건, 든든한 지원군이자 꿈을 함께 만들어갈 동반자가 있는 느낌이다. 특히, 그림책 분야에서는 편집자의 감각과 재량이 더욱 크게 발휘되기도 하는 것 같다. 글과 그림의 레이아웃, 그림에 어울리는 글의 리듬, 적절한 여백의 사용 등 편집하는 것은 그림책을 쓰는 것과는 또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그림책 작가와 그림책 편집자의 관계를 처음 맺어본 것은 2018년 봄이다. 봄부터 겨울까지 그림책 NGO에서 제작하는 그림책 프로젝트에 참여한 일이 있었다. 글작가와 그림작가가 팀을 이루어 책을 만들고, 전 세계에 그림책 한 권 만져보지 못한 형편이 어려운 국가의 아이들에게 배부하는 시스템의 프로젝트였다. 나와 함께 팀을 이룬 작가님은 마침 좋은 책들을 내는 출판사의 그림책 에디터로 근무하고 계신 분이었다. 그래서 글작가로 이야기를 쓰는 것과 동시에, 해당 프로젝트에서 발간될 그림책들의 편집도 함께 맡으셨다.


나는 전업작가가 되기 전부터 그림책 업계에 관심이 많아, 이런저런 수업들도 듣고 모임에도 참가해왔는데, 편집자가 그림책 작가에게 작가의 의도나 작가만의 색채를 고려하지 않고 편집자의 의도를 강요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들었다. 그림책 편집자는 처음이었던지라, 혹시나 그런 편집자는 아닐까 하고 조금은 걱정했는데, 걱정이 무색할 만큼 나와 편집자님은 합이 정말 잘 맞았다. 


우선, 편집자님이 그림의 영역에는 손을 대지 않고 전적으로 내 감각과 능력을 신뢰해주었다. 또, 내가 잘 알지 못하는 편집의 영역에서는 편집자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조언들을 따뜻한 시선을 담아 주었다. 이 편집자와의 업무 경험이 편집자의 역량이 매끄러운 그림책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그림책은 단순히 그림과 글의 결합이 아니라, 편집자의 시선과 디자이너의 감각까지 합해져야 비로소 세상에 나올 수 있는 것임을 피부로 느낀 시간이었다. 


그렇게 믿음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 우리가 함께 만든 책은 서로에게 잊을 수 없는 귀한 결과물로 남았다. 게다가 나이도 한 살 차이고, 감성과 취향도 비슷해서 일로 만난 사이지만 금세 가까워졌다. 


그렇게 편집자님을 처음 만난 지도 벌써 2년 반이 훌쩍 지났다. 그 새 나는 전업 작가가 되었고, 편집자님은 출판업계를 떠나 아예 다른 업계에 종사하고 있다. 업계를 떠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말 그대로 청천벽력 같았다. 나 역시 출판업계에 몸을 담그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마음이 연결되는 업계 사람은 만나본 일이 없었고, 그림책에 관련해서 전적으로 신뢰하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 이렇게 떠나버린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다.


후에 더 영근 작가가 되면 꼭 이 사람에게 편집을 맡겨야지, 둘이서 함께 의미 있는 책들을 같이 내봐야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참 아쉬운 마음이었다. 편집자님이 다니던 출판사를 퇴사하며 우리는 이제 업무관계를 완전히 떠나, 말을 놓는 언니동생 사이가 되었다. 며칠 전에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어느 업계에 있든지 글을 계속 쓰고 편집일도 놓지 말아달라고. 언젠가는 꼭 또 같이 책을 만들자고. 



인스타그램: @byjeanc

웹사이트: https://www.artbyjea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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