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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청 Sep 15. 2020

세컨잡 없이 그림을 그린다는 건

그림은 본업이어야만 해

밤에 먹는 빵 (2020), 진청


처음부터 그림으로만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학교를 졸업할 당시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막연히는 생각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잘 몰랐다.


이런 고민들을 대학교 입학하자마자, 혹은 그전부터 해온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림을 대학교 3학년에 이중전공으로 뒤늦게 접했던 내게는 그림과 관련된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시간도, 실력도 부족했던 것 같다.


졸업하고 뭐가 됐든 그림을 그릴지, 취업을 할지 고민한 시간이 꽤 길었다. 흔한 표현이지만, 말 그대로 끝없는 터널 같이 느껴진 시간이었다.


어쨌든 그림은 언제든 그릴 수 있지만, 취직은 나이를 더 먹으면 어려워질 거라고 생각한 나는 수없이 많은 회사들에 입사지원서를 넣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취직도 절대 쉬운 길은 아니었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졸업했지만, 명문대 졸업장도 취업시장에서는 흔하디 흔한 것이었고, 회사가 원하는 실무 관련 경험이 없는 내게는 좀처럼 기회가 열리지 않았다.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는 경험을 몇 번 하다 보니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다.


그렇게 수개월을 보내고, 연말 즈음에 좋아하는 작가님 두 분이 성수동에서 콜라보레이션 전시를 한다는 소식에 작가님 계시는 시간에 맞춰 전시를 보러 갔다. 취준생 몰골도 지우고 좋아하는 코트를 꺼내 부츠까지 맞춰 입고 갔던 기억이 난다.


구입한 화집에 사인을 받는 도중 작가님이 '학생이세요?'라고 물으셨고 나는 '아.. 취준생이에요'라며 울상 같은 웃상을 지었다. 그런데 그때 함께 갔던 친구가 '얘도 그림 그려요!'라며 바람을 넣었고, 얼떨결에 당시 내가 했던 고민들을 작가님께 털어놓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게 맞는 건진 모르겠다. 작가님 정말 멋지시다. 나도 언젠가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동경하던 작가님이 바로 앞에 있어 대화 내용이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대략 이런 내용으로 두서없이 말했던 것 같다. 작가님은 나를 처음 봤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오래 알던 친구처럼, 전시장 한 구석에서 한 10분가량 진심 가득한 위로와 조언을 해주셨다.


예술하는 사람에게 세컨잡은 숙명 같은 것이며, 작가님도 가르치는 일을 함께 하고 계시고 함께 전시한 작가님도 부업으로 신발 관련 사업을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작가님이 20대 초반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어떻게 현 위치까지 올 수 있었는지 대략적인 인생 이야기도 해주셨다.


짧지만 강렬했던 그 만남은 세컨잡이란 건 작가로서 일정 위치까지 가도 함께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검증된 위안 같은 생각을 남겨주었다.


그리고 세 달 후 나는 회사원이 되었다.

그리고 약 2년 후 나는 무직 카테고리에 속하는 프리랜서가 되었다.


브런치 두 번째 글, <밤의 직장>에서 다소간 이야기했지만, 그림을 부업으로 하기엔 그림이 내게 너무 큰 가치였고, 온전히 그림에만 모든 시간과 노력을 쏟아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돌아 돌아 세컨잡 없이 그림을 그리는 삶을 살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요즘도 간혹 다시 취직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완전히 궤도에 오른 작가가 아니라면, 혹은 궤도에 오른 작가라도 세컨잡은 필수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세컨잡이 있고 없고의 장단점이 명확해 어떤 것이 더 좋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 같지만, 어쨌든 세컨잡이 있었던 삶은 살아봤으니 당분간은 세컨잡 없이 온전히 그림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인스타그램: @byjeanc

웹사이트: https://www.artbyjea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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