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과 연필로 만드는 무릉도원
나는 화가 나거나 불만이 생기는 상황에서도 상대에게 내 감정에 대해 잘 말하지 못하는 편이다. 뱉어버리지 못한 감정은 그대로 내 안에 켜켜이 쌓인다. 이런 현상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다가 이 년 전쯤 잠이 잘 안 오고 속이 답답해 찾은 한의원에서 화병이라는 당황스러운 진단을 받았다.
의사가 권한 열을 내리는 효과가 있다는 한약도 지어먹었지만 솔직히 진짜 효과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찌 됐든,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들이 생기고 내 마음처럼 삶이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다.
정말로 모든 걸 내려놓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쳐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 나는 연필과 붓을 들고 그림 속으로 도망친다. 그림은 내가 내 안의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자, 무해하게 부정적인 감정들을 승화시킬 수 있는 테라피이자, 내가 갈망하는 세계를 붓 하나로 구축할 수 있는 멋진 방법이다.
이 글에 함께 올린 그림은 일로 바빠 휴가도 못 가고 몸도 마음도 지쳤을 때 그린 그림이다. 나 대신 그림 속 주인공을 내가 가고 싶은 장소로 보내주는 일종의 ‘그림으로 대리 만족하기’ 프로젝트였다. 고단한 일상을 벗어나 한적하고 버드나무가 흐드러진 호수로 강아지를 보내줬다. 신기한 건 정말로 대리만족이 되었다는 점이다.
스스로 그린 그림 한 점에서 받은 위안이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 그림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나의 내면의 반영이고, 내가 바라고 그려온 생각, 감정, 꿈이 하나씩 심긴다. 그림은 언제 어디서든 안식처가 되어줄 수 있는 나의 맞춤형 무릉도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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