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퇴하려고 하면 꼭 못하게 되더라

숨쉬는 것만으로 돈이 들어오면 좋겠어.

by 제이
“오늘은 칼퇴할 거야.”

어제는 눈코 뜰 새 없이 정말 바빴다. 동료와 함께 업무차 취재, 촬영을 나갔다가 사무실로 돌아오고 그 뒤로는 정말 집에서 기절하듯 늘어져서 잤다. 집에 도착하니 7-8시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문득 눈을 감았다가 뜨니 지긋지긋한 휴대폰 알람이 울리며 내가 출근해야 할 시간임을 알리고 있더라. 미적거리며 몸을 일으켜 출근을 하니 오늘은 또 어제와는 영 딴판이었다.


칼퇴? 응, 안돼.

세상에! 오래간만에 손이 비었다! 아니, 물론 담당하고 있는 일이나 다른 자잘한 서류업무를 생각한다면 완전히 손이 빈다고 말하기엔 조금 애매한 감이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오래간만에 업무가 적어 한숨 돌리며 느긋하게 보낼 수 있는 하루였다. 그래, '였다'. 바로 30분 전에 일어난 일로 이미 과거형이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바삐 돌아가던 하루에서 겨우 벗어나 한숨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놈의 회사는 또 내 기대를 배신하고 뒤통수를 친 것이다. ‘오늘은 다 같이 칼퇴해요.’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며 기대와 기쁨에 찬 어조로 말하기 무섭게 깔끔하게 허사가 되었다는 사실 하나가 서럽다.



IMG_20190625_112954.jpg 가슴속 용암 같은 감정... 스트레스! (ⓒ직장인짤봇(@ILOVEWORK_True) / 현재 계정 삭제)


새벽 두 시 전 남친의 '자니?'라고 묻는 카톡만큼 구질구질하다, 회사 놈아.

집에 일찍 가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취재 차 출장을 나간 우리 팀원이 사무실에 들어오는 대로 대표님께서 팀원들을 모아 회의를 하자고 하신다. 팀원이 돌아오려면 최소 6시, 그리고 아마 출근시간에 맞춰 꽉 막힐 고속도로 상황을 생각한다면 7시는 지나서야 돌아올 것이다.


여기서 이미 수많은 직장인들과 회사원들은 내 절망과 분노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트위터에서 유명했던 직장인짤봇의 짤이 떠오른다. 타오르는 것처럼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이 검은 마그마 같은 감정! 아, 분명 스트레스임이 분명하다. 조만간 또 머리카락이 스트레스로 왕창 뽑힐 것 같다. 이번에도 스트레스로 원형탈모가 도지면 어쩌지, 그땐 정말 퇴직을 진지하게 고민할 것이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머리에 땜빵이 난다고? 아, 이건 못 참지. 오늘도 직장인인 나는 괴롭다. 지겹다, 회사 놈아. 날 왜 그렇게 좋아하니. 구질구질하게 그러지 말고 나를 좀 놔줘.



연봉도 좋지만, 난 워라밸이 더 좋아.

워라밸과 연봉, 지금 당장 그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면, 과연 당신은 무엇을 고르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 양쪽에서 다양한 고민을 할 것이다. 나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워라밸에 한 표를 던질 것이다. 정시퇴근을 보장해주는, 워라밸을 중요시해주는 그런 곳.


연봉이야 내가 성실하게 일하고 실적을 쌓아간다면 어쩌면 차차 늘어갈 수도 있는 것이겠지만, 워라밸은 처음에 보장해주지 않았다면 그 이후부터는 쭉 개선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뭐, 큰 대기업이라면 다를 수 있겠지만 자그마한 중소기업이라면 대부분은 그렇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실제로 내 경험이기도 하고. 물론 다른 회사는 다를 수도 있겠지. 아니, 다르면 좋겠다. 내 편협한 사고라고 그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워라밸도, 연봉도 제대로 챙겨주고 대우해주는 그런 회사가 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이라도 그렇게 다니면 좋겠다. 내가 이 검게 찌들어있는 사회생활 속에서 좀 더 희망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나 숨쉬기 잘하는데, 잠도 잘 자는데….

숨 쉬는 것, 혹은 자는 것만으로 돈이 들어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직장인이라면 누구든 한두 번쯤은 해보았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돈을 벌기에 쉬운 일은 아무것도 없다지만 그래도 그런 꿈이라도 꿔볼 수 있는 것이 아니겠나. 말도 안 되는 허망한 꿈이라도 본래 사람들은 누구나 불로소득을 꿈꾼다. 놀고먹으면서 만사를 편안하게 즐기는 한량 같은 삶! 아주 멋지지 않나.


“내 가난한 통장에 아랍 부자가 실수로 법적 시비 없는 1nn 억 원을 꽂아주고선 아, 푼돈이니까 그냥 가져라 이러면 좋겠어. 그리고 덤으로 기깔나는 집이나 건물도 선물로 얹어주면 좋겠다.”


디테일한 소원이라고? 그렇지만 정말 그랬으면 한다는 내 마음이 듬뿍 담겨있는 말이다. 사람들이 괜히 금수저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복권을 긁는 것은 다들 그런 욕구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나도 어디 가서 잘 나가는 한량으로 산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업무, 회사? 샤로수 길이나 강남 도로변의 높은 상가건물의 건물주가 되어서 평생 놀고먹으며 편안하게 살길일 있다면 누구나 백 퍼센트 그 길을 택하겠지. 나 숨쉬기 잘해요, 잠도 잘 자요. 누가 내 통장에 법적 시비 없는 1nn 억 원 부탁해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늘 생각하잖아요, 퇴사라든지 퇴사 같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