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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Jan 18. 2021

샤워를 하다가

     

샤워를 하다가 문득 내가 소설을 완성하는 상상을 했다.

난 그렇게 무엇이 되는 상상을 아주 가끔 한다. 별로 되고 싶은 것이 없어서 이기도 하고 대체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그런 상상은 나를 기대하게 하는데, 터무니없는 상상과 달리 조금이라도 실현 가능한 상상을 만나면 가령 내가 소설을 쓰고 있는데 정말이지 그럴듯한 소설을 완성한 상상을 했다고 한다면 그건 너무나도 달콤한 상상이 되어 ‘어쩌면 나도 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하고 기대를 하는 것이다. 그러다 금방 현실로 돌아와 상상했던 것이 눈 온 뒤 미끄럼 타듯 조금의 걸림도 없이 내 몸에서 슝~ 하고 미끄러지면서 산산조각이 나면 내 자체가 실망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마지막은 유쾌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소설을 완성하는 상상이 한강에 얼음 얼 듯이 작은 조각에서 점차 주변으로 확대되었다. 투고를 한 곳에서 하루 만에 연락이 오는 상상. 책으로 출간까지 되는 상상.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는 상상. 따뜻한 햇살에 기댄 누군가가 내 책을 읽고 있는 상상. 어떤 무리는 내 책으로 토론을 하는 상상. 누군가가 침대맡에서 내 책과 밤을 함께하는 상상을 하고 있자니 너무 꿀 같아서 자꾸자꾸 떠먹고 싶어 졌다. 순간 출간 작가가 되어 여러 사람의 축하를 받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상상 속 나의 목은 깁스한 듯 뻣뻣해졌고 거만함으로 몸이 점점 비대해지고 있었다. 이 비대함은 겉으로는 ‘아니에요.’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론 ‘내가 쫌 하지?’하는 엉큼함이었다. ‘누구 엄마 작가래. 글을 엄청 잘 쓴다던데.’ 이런 소릴 들은 것도 같았다.    

 

또 그런 나를 현실에서 바라보면서 넌 이렇게 거만해지다간 소설이고 뭐고 아무도 너를 상대 안 할지도 몰라하는 생각을 했다. 겸손은 미덕이요. 뭔가 잘한다는 칭찬에도 호호호 웃으며 ‘아니에요. 누구누구가 더 잘하시잖아요 저는 잘 못해요.’ 해야 한다고 어디서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음흉함을 겸손이라 생각하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서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게. 왜 이토록 어떤 성공과 거만을 자꾸 짝지으려는 것인지. 혹시. 설마. 그런 건가. 나는, 나란 사람은 겸손이란 걸 티끌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일까. 그래서 어떤 상상을 할 때마다 거만과 겸손해야 함을 자꾸 짝지어 넣음으로써 나를 낮추도록 훈련하는 건 아닐까. 만약 내가 정말 겸손한 사람이라면 어째서 잘난 체하는 상상을 하는 거지? 작가가 되어서도 마냥 좋고 행복하고 더불어 이 누추한 책을 읽어주시는 분들을 존하는 상상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도 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글을 쓰고 싶고 글 쓰는 게 좋서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무언가가 되고 싶은 건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에게 우쭐하고 싶은 건 아닐까....   

  

으악 최악이다. 얼굴이 뜨거운 물에 데인것 처럼 화끈 거렸다. 쥐구멍이라도 있음 숨고 싶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나란 사람이 너무 싫어졌다. 난 때타월을 꺼내 들었다. 평소엔 때타월을 전혀 쓰지 않지만 오늘만큼은 내 몸을 좀 밀어야 할 것 같았다.  

    

상상은 때론 하나의 덩어리로 잘 뭉쳐져서 길어지기도 넓어지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잡념은 내가 샤워 중 머리를 감을 때 쓰는 샴푸와, 세수를 할 때 쓰는 클렌징 폼, 몸을 씻을 때 쓰는 바디워시처럼 같은 몽글몽글한 거품이지만 서로 다른 모양의 거품이 되어 욕실을 떠다니듯 종류가 다른 단편의 잡념들 내 머릿속을 떠다녔다.


대부분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생각들이었다.

샤워을 할 때 샴푸를 하고 트리트먼트까지 한 후 머리를 헹구지 않고 속옷 빨래를 한다. 그래야 빨래를 하는 시간에 머릿결이 더 좋아지기 때문인데 다른 사람들의 샤워 순서가 궁금해졌다.

어떤 사람들은 몸을 먼저 씻고 머리를 감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세수를 먼저 할 수도 있겠지? 속옷을 빨면서도 난 바디워시로 속옷을 빠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떤 세제를 사용할지가 궁금해지는 거다.

빨랫비누도 있고, 세숫비누도 있고, 클렌징 폼? 샴푸? 나처럼 바디워시?

내가 바디워시를 사용하는 이유는 내 몸의 냄새와 속옷의 냄새를 같게 하고 싶어서다. 내 몸에서 하나의 향이 맡아졌으면 좋겠다. 샴푸의 향도 좋고 바디워시의 향도 좋고 비누의 향까지 각각의 향이 좋을 수 있지만 좋은걸 여러 개 합쳐놓느니 차라리 아무 향도 안 나는 게 나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이다. 삼십 분간의 샤워를 하는 동안 그 끔찍한 상상을 덮을 만한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어서. 난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머리를 꼼꼼하게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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