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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Sep 11. 2020

아들의 일기 #7

20.9.4     311개

제목 : 311개

오늘 리프팅을 했다.

처음에는 짜증 났는데, 평정심을 갖고 하니가 311개나 했다.

어제는 185개였는데, 6개 했다고 자랑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나는 311개 하고 너무 떨려서 아무것도 못했다. 너무 뿌듯했다. 내 떨기 목록에 하나가 더 추가됐다.

차라리 너프건을 오늘 받았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100개만 하면 200개, 300개, 400개,....,1000개도 할 수 있다더니 진짜였다.

이제 내 목표는 500개이다!


<떨기 목록>

1. 추울 때

2. 무서울 때

3. 긴장될 때

(오늘 추가)

4. 행복하고, 뿌듯할 때.







아이의 일기를 읽으며 나는 어느 순간 떨림을 느끼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제 마음대로 몇 갈래로 나누어 보면 떨림은 처음 세상에 나와 한 살 한 살 살아가며 여러 상황에서 오는 감정의 표출과, 상태에 따라 내보내는 몸의 신호, 무언가를 노력하고, 도전하고, 실천하고, 연구하는 등 의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결과에 의한 떨림이 있습니다.     

 

태어나 가장 먼저 떨리게 하는 것은 아마도 생리현상인 오줌을 쌌을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누워서 기저귀에 쉬를 한 아기는 온몸을 부르르 떱니다. 체온의 변화에서 오는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아플 때도 그렇습니다. 특히 열이 심하게 날 때 체온 이상으로 사람은 사시나무 떨 듯 떨게 됩니다. 아이들이 처음 타는 미끄럼틀은 어떨까요? 저는 놀이기구를 못 탑니다. 특히 바이킹 같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놀이기구는 온몸이 산산조각 나는 느낌이 듭니다. 운명의 상대를 만났을 때는 어떨까요.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떨림. 이럴 때는 몸이 먼저 반응을 하고 내보내는 신호입니다.


학교에서 음악 시간에 리코더 시험을 볼 때나, 자기 소개를 할때도, 반 친구들 앞에서 발표할 때도, 저는 무척이나 떨렸습니다. 이때는 성적과 상관없이 부끄럽고, 실수할까 봐 걱정이 되어 떨립니다. 길거리에서 외국인이 말을 걸어오거나, 면접을 보거나, 스키를 처음 배울 때, 스쿠버다이빙을 할 때도, 늦은 시간 집에 들어가는데 누군가 뒤에서 따라오는 소리가 드릴 때도 긴장감에 몸을 떨게 됩니다. 무례한 사람이 무례하게 따지고 들 때도 화가 나서 벌벌 떨릴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여러 상황으로부터 느끼는 감정의 표출입니다.     

 

그럼 무언가를 노력하고, 도전하고, 실천하고, 연구하는 등 의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결과로 떨릴 때는 어떤 땐 가요? 학교에서 우수상을 받았을 때, 자격증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자격증을 땄을 때,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을 때, 원하는 회사에 입사했을 때, 열심히 모아서 집을 샀을 때, 공을 들이던 이성으로부터 결혼 승낙을 받았을 때, 저희 아들처럼 리프팅을 열심히 해서 기록을 경신했을 때 아닐까요? 아마도 이럴 땐 뇌에서 엄청난 엔도르핀이 방출될 것 같습니다. 생각만 해도 짜릿하고 기분이 좋아지네요. ㅎㅎ     


놀라고, 무섭고, 화나고, 긴장하고, 춥거나, 심하게 행복할 때...


사람의 감정도 몸과 함께 나이가 들수록 늙어지겠죠. 특히 성과에 의한 떨림은 어렸을 때의 기억이 지금보다 확연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도전도, 노력도, 실천도 덜하면서 자극받기보다 현재에 안주하며 안전한 삶을 산다는 의미겠지요.

몸에서 보내는 신호나 여러 상황에서 느끼는 떨림 역시,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익숙해진다는 게, 세상으로부터 무뎌진다는 게 조금 슬프게도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어가며 심박수도 줄어드는데 매번 아이처럼 몸이 반응을 한다면 몸이 과부하가 걸릴지도 모를 일이겠다 싶더라고요.


감정들로부터 더 무뎌지기 전에 많은 것들을 느끼며 살아야 젊게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것을 도전하고, 실천하기에 오늘이 제일 어린 나이일 테니까요. 아이의 일기를 읽으며 저도 아이처럼 긍정의 떨림을 느껴보고 싶네요.

(참, 그래도 최근엔 브런치에서 긍정의 떨림을 두 번이나 느끼긴 했네요. ㅎㅎ 브런치 감사합니다.^^)

    

머지않아 저희 아들의 많은 떨기 목록 중에 ‘나의 이상형을 만났을 때’라는 문구가 추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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