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은 Oct 05. 2020

아들의 일기 #9

20.9.26        태마 탈출 3차시

제목 : 태마 탈출 3차시 (태마: 우리 집 도마뱀)

"얘가 진짜 탈출하고 싶나 봐." 엄마가 말했다. 엄마가 태마를 데리고 놀고 있다.

"이제 넣어야지."

후다다다다닥. 뭔가 빠르게 지나간다. 뭔가 느낌이 안 좋다. 내 촉이 맞았다.

그것은! 그것은! 도마뱀! 아아아악!

"뭐 하냐고! 꺼내지 말라 했잖아!"

"율아 미안. "

"미안하면 뭐해! 으아아 앙!"

(잠시 후)

"엄마 일부로 그런 건 아니지?"

"율아 엄마 마음 솔직히 털어놓을게. 솔직히 기분 좋아. 도매 뱀이 나가고 싶어 했거든."

말이 안 나온다. 이름하여 태마 탈출 3차시다!

(다음날)

쩝쩝. 태로(우리 집 강아지)가 뭘 먹는다.

"엄마 도마뱀인가?"

"율아 그러지 마!"

"청소하다 도마뱀 대가리 날아간 시체 나오는 거 아니야? 태로 똥에서 태마 대가리만 나오는 거 아니야?"

"야!"

"역시! 엄마 놀리기가 제일 재미있다!"









작년 두 번의 탈출을 감행한 후로 게코도마뱀 태마는 조용히 잘 지냈습니다. 코코넛 집에만 숨어있다가 식구들이 잠들면 나와서 활동하는 녀석이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지나다녀도 은신처에서 나와 투명 창 밖을 이리저리 두리번거렸습니다.  어린왕자의 작은 별이 떠올랐습니다. 얼마나 갑갑할까 후다닥 한 바퀴 돌면 또 그 자리인 것을......


하루 이틀 창 밖의 세상을 기웃기웃하는 태마를 보며 마음의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정말 답답하겠다.

'위험이 있어도 탈출해서 자유를 만끽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거야.'

후회도 많이 됐습니다. '역시 생명은 그냥 들이면 안 되는 거였어.' 


강아지를 산책시키듯 잠깐씩 태마를 꺼내서 손에 쥔 채로 이곳저곳을 구경시켰습니다. 그럴수록 태마는 더 강하게 자유를 그리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태마를 꺼내서 흙냄새도 맡게 해 주고 나무도 보여주 집에 넣는 순간, 눈 깜짝할 사이 홀연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들은 엉엉 울었습니다. 태마가 불쌍하다며 어쩔 거냐고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되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두 번이나 몇 달식 집을 나갔던 녀석이었습니다.

항상 아무렇지 않게 다시 돌아왔던 녀석이었습니다.

언제든 돌아올 태마를 위해 다시 밀웜을 꺼내놓았습니다.

배가 든든해야 자유를 제대로 누릴 테니까요.

그렇게 태마는 또다시 자유로운 방랑객이 되었습니다.


아들은 틈만 나면 태마가 나타났다고 저를 놀려댑니다. 집안 구석구석을 제집처럼 활보할 녀석을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답니다.

우리 태마 눈이 정말 이쁘지요?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의 일기 #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