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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Oct 12. 2020

미치도록 좋은 날

눈물이 찔끔 났다.

내 앞에 한잔의 따뜻한 라떼와, 한잔의 뜨거운 아메리카노, 거기에 로아커 다크 웨하스를 놓고....

가슴이 부풀만큼 행복해서 눈물이 찔끔 났다. 이 세 가지의 내가 좋아하는, 나를 중독시키는 맛 앞에서 난 주저 없이 행복하고 말았다. 점점 커가는 기쁨의 실체가 겨우 이것임을 알고, 눈물이 난 나 자신이 조금 초라하면서도 초라한 마음이 좋아서 눈물 한 방울을 더했다.


아이의 등교 수업 날. 아이의 물통에 따뜻한 작두콩차를 담으며, 이젠 이불 밖이 조금 춥다는 아이의 웅크린 어깨를 보고, 아이의 입맛 없다는 투정을 들으며,  조금 뜨겁게  데워진 하얀 밥에서 피어오르는 온기가, 금방 아이의 뱃속을 따뜻하게 해 줄 거라 고마웠다. 거실 소파에서 아들의 식어가는 몸을 꼭 끌어안고 품 안에서 아기새를 다루듯이 아빠는 자기 가슴의 따뜻한 온기를 그대로 아들에게 전달하며 더 자고 싶은 마음 가득 아직 다 깨지 않은 아들의 밤을 베란다 창문으로 온화하게 비춰 드는 햇살에 기대어 조심스럽게 깨운다. 밤새 조금씩 조금씩 식혔을 집안의 온도를 친절히 찾아와 준 고운햇살과 나와 내 아이와 남편의 온기로 또 천천히 천천히 채워지는 걸 느끼며 그 온기로 펴지는 아이의 어깨를 바라보며 난 또 주책없이 행복해지고 만다.


강아지 태로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고, 도마뱀 태마가 길고 가느다란 혀로 무심히 제 눈동자를 핥아 내릴 때 어떤 어려움도 없이 어젯밤도 안녕했음을 우린 두 눈을 맞추며 인사 나눈다.


행복과 안 행복과의 경계에서. 불행과 안 불행과의 경에서. 불안과 안 불안과의 경계에서 나는 조금 더 잘 느끼는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없어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었, 너무 많아서 안 행복한 사람이기도 했다. 너무 잘 알아서 불안하기도 했으며 너무 몰라서 안 불안하기를 밥먹듯이 하 이제 불행은 안 행복했을 때 오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조금 멀리 떨어뜨려 놓아야 안 불행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불러온 고요와 고요 속에서 꿈틀대는 환희 그 오묘한 모순의 풍요로움에 조용히 다가가 숨죽이고, 내 온몸으로 받아들여질 숭고함에 나는 벅차게 조여 오는 가슴을 풀어헤친다.


코로나로 오랜만에 주어진 나만의 시간에 다른 모든 해야 할 것들을 뒤로하고 책과 노트북. 이미 비워진 찻잔의 말라버린 하얀 우유 거품을 보며, 이제 시작할 진갈색의 아메리카노 찻잔을 들고, 이렇게 여는 오늘이 미치도록 좋아서 난 또 써 내려간다.


다시 말하지만 오늘은 아이의 등교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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