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날에 읽어 보는 시집, 내맘내시
박작가가 추천하는 내맘내시
1. 당신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If Thou Must Love Me)
/ 엘리자베스 브라우닝(E. B. Browning)
당신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오로지 사랑을 위해서만 사랑해주세요.
그녀의 미소 때문에,
그녀의 얼굴과 부드러운 말씨 때문에,
어느 날 내 마음에 기쁨을 가져다 준 그녀의 재치 있는 생각 때문에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세요.
사랑하는 이여, 이런 것들은 그 자체로나 당신 때문에 변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짜여 진 사랑은 그렇게 풀려 버리기도 하니까요.
내 뺨에 흐르는 눈물 닦아주고픈 연민 때문에
사랑한다고 말하지도 마세요.
당신의 위안이 오래 지나면 나는 눈물을 잊어버리고,
그러면 당신의 사랑을 잃을지도 모르니까요!
오로지 사랑만을 위해 사랑해주세요.
사랑의 영원함으로 당신이 언제까지나 사랑할 수 있도록.
If thou must love me, let it be for nought
Except for love's sake only. Do not say
I love her for her smile--her look--her way
Of speaking gently,--for a trick of thought
That falls in well with mine, and certes brought
A sense of ease on such a day--
For these things in themselves, Belovèd, may
Be changed, or change for thee,--and love, so wrought,
May be unwrought so. Neither love me for
Thine own dear pity's wiping my cheek dry,--
A creature might forget to weep, who bore
Thy comfort long, and lose thy love thereby!
But love me for love's sake, that evermore
Thou may'st love on, through love's eternity.
사랑. 고대부터 현재에까지, 사랑은 모든 이에게 영원한 숙제이며, 고통이며, 위로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단지 무엇 때문에 사랑을 해주길 바라기 보다 사랑 그 자체를 사랑해 달라는 브라우닝의 시는 이보다 깔끔하고 담백하게 ‘사랑’을 정의 내려 줄 수 있을까 감상자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 나를 사랑했던, 또는 내가 사랑했던 이들에게 부탁하고픈 오직 한 가지의 영구불변한 진리를 이 시가 가장 적절하게 대변하는 셈이다.
- 박작가
2.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 / 예반
우리는 모두가
나름대로의 능력과 갖가지 꿈을 안고서
이 세상에 왔습니다.
우리는 그 능력을 찾아내고 이용하면서
우리의 꿈을 채워갑니다.
그것을 인생의 도전이라고 하지요.
사람들은 저마다 아주 다른 여건 속에서
이 일을 해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은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의 수효만큼이나 다양하지만,
우리가 끊임없이 갈망하는 그 꿈은 누구에게나
다 똑같습니다.
그 꿈은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을 줄 수도 있으며 또한
가장 큰 괴로움이 될 수도 있으니,
바로 그 누군가와 더불어 삶을 함께 나누려고 하는
간절한 꿈입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그 무언가가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그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고 싶을 따름입니다.
미사여구를 가득 담은 시들을 많이 봅니다. 또는 난해한 문장들로 나 이렇게나 많은 지식을 알고 있소이다 하는 시어들도 많이 접합니다. 삶이 피곤할 때에 만났던 예반의 시는 쉽고, 일상적인 문체로 삶과 사랑을 풀이합니다.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삶의 진리, 지구 어디엔가 나와 같은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반가움, 예반의 시는 그러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되지 못해도 됩니다. 나 또한 그 누군가의 특별한 무엇이 되고 싶을 뿐.
- 박작가
3. 여섯 가지 참회 / 젠드 아베스타
내가 생각해야만 하는데도 생각하지 않은 것과
말해야 하는데도 말하지 않은 것
행해야만 하는데도 행하지 않은 것
그리고 내가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생각한 것과
말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말한 것
행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행한 것
그 모든 것들을 용서하소서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던 호기로운 젊은 시절이 내게도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진실된 참회와 용서라는 것이 참으로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삶의 말년이 가까울수록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의지나 질타의 마음은 점점 약해지고, 용서를 빌 진실의 순간조차 어려워지는 약한 인간의 모습이 이 시에서 느껴집니다. 삶의 순간순간 잘못한 것에 대한 용서를 비는 진실의 순간이, 당신에게나 나에게나 기회로 남아 있기를 소망합니다.
- 박작가
4. 즐거운 편지 /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이 시는 시인이 까까머리 고3 시절 짝사랑하던 연상의 여대생에게 바치는 시라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은 우리의 삶을 어루만져주는 치유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 폐허의 시절에도 사랑은 존재했습니다. 인간의 존재 유무에 따라 사랑은 언제 어디서든 생명력을 가집니다. 연애란 한 인생이 다른 한 인생과 삶이 겹쳐져 가는 인생 최고의 예술이며, 자신에 객관화 되고 오히려 타자에 주관화 되는 삶의 최고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연애는 쿨한 만남과 헤어짐의 사건이 아닌, 지난한 과정 속의 수많은 마음의 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사랑할 것을, 조금 더 오래 따뜻했을 것을, 조금 더 견고한 기다림의 자세를 보여줄 것을, 그리 했다면 추억일지언정 한 존재의 삶이 살아가는데 더 힘이 되었을 것을.
- 박작가
5. 소네트 73 (Sonnet 73) / 윌리엄 셰익스피어(W Shakesreare)
그대는 내게서 보게 될 것이오.
찬바람에 흔들리는 저 나뭇가지에 누런 잎새 앙상한 계절을
고운 새들 노래하던
지금은 폐허가 된 이 성가대석을
그대는 내게서 보게 될 것이오.
해진 후 서녘으로 저물어 가는 황혼을
모든 것을 안식 속에 담을 제2의 죽음,
그 암흑의 밤이 닥쳐 올 황혼을
그대는 내게서 보게 될 것이오.
젊음의 잿더미 속에 가물거리는
청춘의 잔해,
불을 붙게 한 연료에 소진되어 꺼져야만 할 불빛을
그대 내게서 보았거든 날 사랑하는 마음 더욱 강해져
머지않아 잃게 될 것을 더욱더 사랑하리라.
That time of year thou mayst in me behold
When yellow leaves, or none, or few, do hang
Upon those boughs which shake against the cold,
Bare ruin'd choirs, where late the sweet birds sang.
In me thou seest the twilight of such day
As after sunset fadeth in the west,
Which by and by black night doth take away,
Death's second self, that seals up all in rest.
In me thou see'st the glowing of such fire
That on the ashes of his youth doth lie,
As the death-bed whereon it must expire
Consumed with that which it was nourish'd by.
This thou perceivest, which makes thy love more strong,
To love that well which thou must leave ere long.
사랑의 시라고 하기에는 ‘가물거리는 청춘의 잔해’라는 문구의 뉘앙스가 강합니다. 시는 이렇듯 보는 이에 따라 느낌이 다릅니다. 이것이 시가 주는 매력이 아닐지요. 가만히 이 시를 보노라면, 죽음 앞에 선 초로의 늙은 시인이 떠오릅니다. 젊음을 회상하는 그의 안타까움과 남은 이들에게 하고픈 그의 이야기들에 대한 안타까움 또한 묻어납니다. 불과 같은 청춘이 지나간 자리, 여러분에게는 무엇이 남겨질까요?
- 박작가
6.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류시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 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 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멈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늘 지나고 후회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해보지 않은 것, 하지 못한 것, 그리고, 해놓고도 지금 후회하는 것. 그러나, 모든 것이 지나고 난 후에 가장 후회되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성보다 감성에 좌우되던 젊은 시절,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지나치고, 그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습니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 그때도 알았더라면, 지금 내 삶은 지금보다 조금은 풍성해졌을까요?
- 박작가
7. 인생의 계획 / 글래디 로울러
난 인생의 계획을 세웠다.
청춘의 희망으로 가득한 새벽빛 속에서
난 오직 행복한 시간들만을 꿈꾸었다.
내 계획서엔
화창한 날들만 있었다.
내가 바라보는 수평선엔 구름 한 점 없었으며
폭풍은 신께서 미리 알려 주시리라 믿었다.
슬픔을 위한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 계획서에다
난 그런 것들을 마련해 놓지 않았따.
고통과 상실의 아픔이
길 저 아래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걸
난 내다볼 수 없었다.
내 계획서는 오직 성공을 위한 것이었으며
어떤 수첩에도 실패를 위한 페이지는 없었다.
손실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았다.
난 오직 얻을 것만 계획했다.
비록 예기치 않은 비가 뿌릴지라도
곧 무지개가 뜰 거라고 난 믿었다.
인생이 내 계획서처럼 되지 않았을 때
난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난 크게 실망했다.
하지만 인생은 나를 위해 또 다른 계획서를 써놓았다.
현명하게도 그것은
나한테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내가 경솔함을 깨닫고
더 많은 걸 배울 필요가 있을 때까지.
이제 인생의 저무는 황혼 속에 앉아
난 안다, 인생이 얼마나 지혜롭게
나를 위한 계획서를 만들었나를.
그리고 이제 난 안다.
그 또 다른 계획서가
나에게는 최상의 것이었음을.
사람이 세워 놓은 계획대로 인생이 흘러가는 법은 없습니다. 신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계획으로 이끌어 가지요. 지금 계획된 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는 것, 인생의 여백과 빈 공간이 때로는 더 멋진 무언가로 채워질 수 있다는 것. 예측하지 못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기에, 철학과 시와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 박작가
8. 들꽃 /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시인이라 불리는 나태주 시인의 시는 짧지만, 여운이 강합니다. 화려한 것이 눈에 띄는 시대에 오히려 소박하고 잔잔하지만, 읽을수록 가슴에 강하게 남는 시이기도 합니다. 내 주변의 소박한 존재들, 오늘 그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우리는 그들의 사랑스러움을 너무 많이 잊고 지나치진 않았나요?
- 박작가
9. 이 또한 지나가리라 / 랜터 윌슨 스미스
거대한 슬픔이 노도의 강처럼
평화를 파괴하는 힘으로 그대의 삶으로 쳐들어오고
소중한 것들이 눈앞에서 영원히 사라져 갈 때
매 힘든 순간마다 그대의 마음에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끊임없는 근심이 즐거운 노래를 들리지 않게 하고
피곤에 지쳐 기도조차 할 수 없을 때
이 진실의 말이 당신 마음의 슬픔을 줄여주고
힘든 나날의 무거운 짐들의 무게를 가볍게 하도록 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그대에게 미소 짓고 근심 걱정 없는 나날이
환희와 기쁨으로 다가올 때
그대가 세속적인 보물들에게만 안주하지 않도록
이 진실의 말을 그대의 마음에 깊이 새겨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정직한 노동이 그대에게 명성과 영광을 가져오고
지상의 모든 숭고한 이들이 그대에게 미소 지을 때
삶의 가장 길고 장대한 이야기도
이 세상에서는 짧은 한 순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인생은 어둡고, 고생이 바다처럼 한없는 가시밭길이라고 비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 또한 그랬던 적이 있지요. 그러나 우리의 삶은 그 과정에서 실연, 질병, 사업실패 등 각자의 어려운 시절이 있지만, 이런 시기는 희망과 꿈을 품고 견디어 나가면 다시금 이겨내고, 새로운 희망을 가지곤 합니다. 이런 게 바로 삶입니다. 삶에서는 지금 평생일 것만 같은 슬픔, 근심, 고통 이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결국 이 순간은 지나갑니다.
- 박작가
#지켄트북스 #작가그룹 #열인백선
보고 싶은 날에 읽어 보는 시집, 내맘내시
내 맘으로 선정하는 내 시
내 맘대로 추천하는 내 시
내 맘을 담아 전달하는 내 시
내 맘을 표출하는 내 시
영화와 노래는 우리가 다함께 공유하고 공감하는 문화입니다
지켄트와 작가들이 추천하는 시들로 또 하나의 공감대가
형성되길 바라며 기획해서 작가들과 함께 만듭니다
지크피디 드림 ( ByJIKPD )
서울인문포럼 2015년1월14일 신라호텔서 개최
배양숙대표 개회사 추천시 : 다시 – 박노해
문전희시인 강연회 추천시 : 꽃밭의 독배 – 서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