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날에 읽어 보는 시집, 내맘내시
1. 슬픔으로 가는 길 / 정호승
내 진실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낯선 새 한 마리 길 끝으로 사라지고
길가에 핀 풀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데
내 진실로 슬픔을 어루만지는 사람으로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슬픔으로 걸어가는 들길을 걸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하나
슬픔을 앞세우고 내 앞을 지나가고
어디선가 갈나무 지는 잎새 하나
슬픔을 버리고 나를 따른다.
내 진실로 슬픔으로 가는 길을 걷는 사람으로
끝없이 걸어가다 뒤돌아보면
인생을 내려놓고 사람들이 저녁놀에 파묻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하나 만나기 위해
나는 다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2.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3. 그런 길은 없다 / 베드로시안
아무리 어두운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고
아무리 가파른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통과했을 것이다
아무도 걸어가 본 적이 없는
그런 길은 없다
나의 어두운 시기가
비슷한 여행을 하는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를
4. 네게 불어오는 바람 / 지순
두려워하지 마라
미풍이든 폭풍이든 바람은 고마운 시련
흔들리는 너를 꺾어 홀로 울면
풀피리 소리 너 스스로 때리면
맑은 풍경 소리 내리니
슬퍼하지 마라
그가 네 등을 친다 해서
비어 있는 네 마음 헤집는다 해서
5. 4월에는 / 홍수연
터질 꽃망울
봄을 붙들고 놓아 주지 않는
4월 나뭇가지마다
연초록 잎들은 짙어만 가는데
분홍저고리 연두색 치마
저리 고운 빛깔로 단장한 새색시들
얼굴 붉힌 채 떨어질 윤회 앞에
그리워했던가
잠시 머물고 갈
이 어지러운 세상을
6. 가을이 서럽지 않게 / 김광섭
하늘에서 하루의 빛을 거두어도
가는 길에 쳐다볼 별이 있으니
떨어지는 잎사귀 아래 묻히기 전에
그대를 찾아 그대 내 사람이리라
긴 시간이 아니어도 한 세상이니
그대 손길이면 내 가슴을 만져
생명의 울림을 새롭게 하리라
내게 그 손을 빌리라 영원히 주라
홀로 한쪽 가슴에 그대를 지니고
한쪽 비인 가슴을 거울 삼으리니
패물 같은 사랑들이 지나간 상처에
입술을 대이라 가을이 서럽지 않게
7. 아침 송 / 유자효
자작나무 잎은 푸른 숨을 내뿜으며
달리는 마차를 휘감는다
보라
젊음은 넘쳐나는 생명으로 용솟음치고
오솔길은 긴 미래를 향하여 굽어 있다
아무도 모른다
그 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길의 끝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여행에서 돌아온 자는 아직 없다
두려워 말라
젊은이여
그 길은 너의 것이다
비온 뒤의 풋풋한 숲속에서
새들은 미지의 울음을 울고
은빛 순수함으로 달리는
이 아침은 아름답다
8.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지금 너는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9. 알 수 없어요 / 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搭) 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누구에게나 각자가 가진 슬픔과 고민이 있을 것이다. 사랑에서든 일에서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민에서의 슬픔을 짧은 산문이 아닌 시로 표현해 감성적 공감을 얻고 조금이라도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이 시들은 나의 상황과 가장 비슷하게 느꼈기 때문에 비슷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20대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선정하게 되었다.
- 신작가
#지켄트북스 #작가그룹 #열인백선
보고 싶은 날에 읽어 보는 시집, 내맘내시
내 맘으로 선정하는 내 시
내 맘대로 추천하는 내 시
내 맘을 담아 전달하는 내 시
내 맘을 표출하는 내 시
영화와 노래는 우리가 다함께 공유하고 공감하는 문화입니다
지켄트와 작가들이 추천하는 시들로 또 하나의 공감대가
형성되길 바라며 기획해서 작가들과 함께 만듭니다
지크피디 드림 ( ByJIKPD )
서울인문포럼 2015년1월14일 신라호텔서 개최
배양숙대표 개회사 추천시 : 다시 – 박노해
문전희시인 강연회 추천시 : 꽃밭의 독배 – 서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