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 대전의 서막이 올랐다 고등학교 교복을 맞춰야하기 때문이다
-K작가의 이야기13-
제 2차 모녀 대전의 서막이 올랐다.
내 고등학교 교복을 맞춰야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절대 눈뜨고 당하지 않으리.’
교복 패션 한창 민감했던 나는, 교복 수선비로 돈을 날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85사이즈를 사수해야했다.
“나 이번에는 무조건 딱 맞게 입을거야.”
“그래 네 마음대로해. 가서 정해.”
선전포고도 해놓았고, 엄마도 그러라고 했지만 엄마의 말투가 이상하게 거슬린다.
‘가서 정해’ 라는 말이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이다.
교복을 맞추는 날.
역시나 나의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엄마는 이번에도 90사이즈를 밀어부쳤다.
“아, 이제 몸 다컸다고! 더 크지도 않아 이제!”
“야, 고등학교 들어가면 한참 클 텐데 무슨 소리야!”
교복 가게에서의 엄청난 신경전.
이번에는 질 수 없었다. 나도 머리가 컸고, 교복을 크게 입으면 안 예뻐보인단 말이다.
정말이지, 엄마가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한참을 찡찡거렸지만, 엄마는 눈을 크게 치켜뜨며 날 협박했다.
그리고 결국..
내 손에는 90사이즈 교복이 들려있었다.
이번에도 엄마가 이겼다. 물주가 엄마이니, 이길 도리가 없었다.
처음으로 돈이 없는게 서러웠다. 내 돈 주고 내가 사면 내 마음대로 살텐데.
당장 학교에 이걸 입고 갈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애들한테 놀림거리가 될거야.’
큰 교복이 너무나도 싫었던 나.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별수 있나. 내 모든 용돈을 교복 수선하는데 퍼부었다.
엄마가 당연히 뭐라고 했지만, 이미 잘라버린 교복을 어째.
“그러니까 딱 맞는거 사달라했잖아!”
“너 나중에 그거 쪼인다고 뭐라고 하기만해! 절대 안사줘!”
“쪼이는게 큰거보다 나아! 남의 거 빌려입은 거 같이 정말..”
“이게 따박따박 말대꾸!!”
흥, 내일은 치마도 마저 자르러 가야지.
얼굴에 여드름이 한 두 개씩 나기 시작하면서
더불어 예민해지기 시작한 나의 성격.
도대체 왜 나는지 알 수 없는 여드름처럼
왜 짜증이 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희한하게도 여드름이 가라 앉을 즈음
나의 가시같은 성격도 눈 녹듯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여드름과 사춘기의 상관관계인가.
사춘기
가수 : 후추스 / 작사 : 김정웅
작곡 : 김정웅 / 편곡 : 양시온, 후추스
친절하게 손을 내밀어 준대도
잡지 않는 나는 삐뚤어진 것일까
진심을 온전히 볼 수 없어
난 아직 사춘기인가 봐
철이 없는 그런 어른 어디 없을까
내 고민 모두 그저 들어줄 수 있다면
당신은 친절함의 대명사
그리고 나와 친구라네
우리 둘이 손을 잡고 길가에 앉아서
맘에 안 드는 모든 것들 비웃어 줬는데
우리들은 닮은 점이 하나도 없지만
때론 모든 생각들을 똑같이 해냈지
오! 방금 내린 비처럼 우린
이 땅을 단단하게 할 거야
곧 밝은 달이 뜰 때면 우린
그 밤을 더욱 길게 할 거야
그래도 내일은 올 거야
뎃생 그림 사진
나의 고백.
사실 저에게는 어릴 때부터 꿈 꿔온 꿈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 꿈은 조금 추상적이였기 때문에 그저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자 내가 그리던 모습이 점점 명확해지고 구체화됐어요.
이제는 정말로 하고 싶어진거죠.
그게 바로 ‘그림’이였어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그림을 달고 살았었는데 그걸 직업으로 삼아볼 생각은 딱히 해본 적이 없었어요. 단지 좋을 뿐이였죠.
단지 좋을 뿐이였는데, 점점 더 잘그리고 싶은 욕심이 생겨나고 누구보다도 그림을 잘그리고 싶었어요. 뿐만 아니라 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행복했죠. 언제 어떻게 이런 마음을 먹게 되었는지 뚜렷한 계기는 없지만, 어느 순간 ‘그림’이라는 것은 저의 마음 깊숙이 스며들어와 저를 물들여 놨어요.
중학교 때 처음으로 엄마에게 ‘나 미술배우고 싶다.’ 고 말했지만, 엄마는 제 말을 그저 가볍게 넘겼어요. 왜 우리가 어릴 적에는 수 많은 꿈을 꾸잖아요. 그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나봐요. 하지만 나에게는 그저 스쳐가는 것 중에 하나가 아닌, 마음속에 굳게 자리 잡은 꿈이였어요.
엄마와의 갈등은 고등학생이 되면서 더 심해졌어요. 그림을 싫어하는 부모님은 제가 그림을 그리지 못하도록 집에 있는 A4용지를 다 갖다버리셨고, 제가 예전에 그린 그림도 몽땅 찢어버렸어요. 화내고, 울고... 우울한 날의 연속이였지요.
처음으로 온 마음다해 하고 싶은게 생겼는데, 시도 조차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슬펐어요. 하지만 엄마가 무섭다고 그냥 바닥에 앉아 울수 만은 없었어요, 그럴수록 더 조르고 조르며 저의 간절함을 어필해야했어요.
결국, 엄마아빠는 딸리 그림을 그리는 것을 허락해주셨어요.
단, 미술교육과에 진학한다는 전제하에.
상관없었어요. 그 때 당시의 저는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기뻤으니깐.. 회화과를 가던 미술교육과를가던 만화가를 가던, 그 건 2순위였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만큼 절박했던 거지요.
맞아요. 저는 진짜 간절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