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내가 미술계에 입문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K작가이야기14
그렇다. 나는 정말 세상 누구보다도 절실했다.
곧 죽어도 해야만 했고, 빨리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미술학원 첫 등록 날. 원장선생님이 물었다.
“대학은 정했어? 과는?”
“미교과요.”
그건 엄마말을 따라야했다.
“미교과는 입시시험이 ‘석고소묘’야. 석고소묘알지?”
그날부터 나는 미술교육과 합격을 위한 석고소묘를 배우기 시작했다. 사실 그렇게 재미는 없었지만, ‘미술학도’라는 타이틀이 붙는 게 좋았고. 캔버스 앞에 앉아있는게 좋았다.
드디어 내가 미술계에 입문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한동안은 그저 모든게 신났다. 학교에서 체육대회같은 행사가 있으면 아이들이 많이 안오곤 했는데, 나는 꼬박꼬박 학원에 나와서 그림 연습을 했다. 내가 고2 때 본격적으로 미술을 시작했는데, 그 시기면 조금 늦은 시기였다. 대부분 아이들이 중학교 때 시작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친구들보다 빨리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남들과 비교를 하지 않더라도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이건 내 자랑인데, 나의 실력은 일취월장했고 나보다 앞서 시작한 아이들과 대등할 정도가 되었다. (원래부터 재능이 있었단 얘기지 훗) 그렇게 되자, 학원을 가장 오래 다닌 동급생 A가 나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날 대놓고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는데, 내게 학원 출석부를 건낼 때 버리듯 던진 기억도 난다.
하지만 나는 그런것에 많이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여기는 배우러 온것이지 누구와 기 싸움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 마인드컨트롤을 하며 최대한 A를 신경쓰지 않으려 애썼다.
사실 A는 학원을 오래 다닌 것에 비해 실력이 출중하지 못했다. 늦게 시작한 다른 친구들이 더 잘했는데, 그 친구들은 원래 친한 아이들이여서 그런지 질투를 드러내지 못했고.
안 친한 나에게만 괜히 난리였다. 희한하게도 우리는 전공도 달랐다. 나는 소묘였고, A는 수채화였다. 아직도 나한테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중에 우리 사이는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쁘지는 않은 쪽으로 흘러갔다.
내가 자기의 날카로움에 맞서지 않고 둥글게 대해서일까. A의 히스테리는 점차 가라앉았고
전보다는 인간적으로 날 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찾아왔다.
그렇게 재미있었던,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림이 재미가 없어진 것이다.
어린 나의 머릿속에 미술은 ‘창작’ ‘창의’ ‘정신의 자유’를 추구하는 ‘예술’이였다.
미술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입시에 있어 석고소묘라는 것 (수채화도 마찬가지다.) 은 그리는 법이 다 정해져있다. 사실 그린다고 말하기도 조금 민망하다고 생각한다. 명암을 넣는법, 쌓는법, 등등 모든 것은 정해져있다. 그 안에서 창의를 발휘한다고 제 스타일대로 명암을 주거나 선을 그으면 절대로 안된다. 수채화의 붓터치법도 방법이있다. 색을 쌓아올리는 것도 배운대로만 해야한다. 모든게 그렇다. 그게 바로 한국의 미술 입시다.
물론 지금의 나는. 그 예술이라는 단어에 도달하기 까지 쌓아야할 기본적인 베이스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때는 한창 사춘기도 왔었고, 내가 당장 하고 싶은 그림이 아니기에 쉽게 짜증이 났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 미술 입시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흔히 ‘미술’은 ‘예술’의 범주에 별다른 의문없이 속한다. 그렇다면 그들을 선발하는 입시는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예술을 해나가고, 예술을 가르칠 사람들을 뽑는데 있어 우리나라는 국영수와 다를 바없는 틀에 갇힌 입시를 운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당시 고등학교 2학년 짜리가 이런 생각을 할리는 없겠지. 다만 어린 내가 했던 생각은 ‘나는 매일 같은 방식으로 같은 것 만 그리기 싫어.’
난 이걸 견디지 못한 건다.
입시에, 시스템에, 제도에 적응하지 못한 게다.
그런 생각이 들자, 학원도 가기가 싫어졌고 그림도 그리기 싫어졌다.
다시 한 번 자기자랑인데 그 와중에도 실력은 괜찮았다. 미교과도 가기가 싫었다.
갑자기 모든게 싫어지면서 성적도 미친 듯이 떨어졌기 때문에, 어차피 지원해도 안 될 확률이 높았다. 그림을 시작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더 심난하고 복잡해졌다. 중간에 수채화를 해보기도 했지만 그것도 역시나였다. 미술은 자유롭지 않았다.
결국 나는 미술을 시작한지 5개월 만에, 학원을 그만 두었다.
심히 놀라는 부모님에게는 ‘그냥 공부하려고..’ 라는 한마디만 던졌다.
더 이상 다른 말을 할 수 가 없었다.
‘입시 미술에 점점 지쳐가. 이기지 못하겠어.’
라고 솔직하게 말 할 수가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날 이상한 아이 취급할 것 같아서 말이다.
미술을 그만 두고 정말 공부를 했냐고?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내 성적은 정말 바닥 끝까지 떨어졌고, 담임선생님이 날 문제아 취급하기까지에 이르렀다.
그 때부터 삶의 목적이 없어진 나는, 내 방식대로 방황했고 자꾸 밖으로 나돌았다.
뭐, 그게 중요한건 아니고. 지금의 나는 잘 먹고 잘살고 있다.
내가 가끔 친구들에게 ‘5개월 간의 미술학원 스토리’를 이야기 해주면 대부분이 이렇게 묻는다.
“그림 다시 그리고 싶지 않아?”
그러면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아니.”
두 번 다신 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림이 싫어졌다거나 한건 아니다.
난 여전히 그림을 사랑하고, 프리다 칼로를 존경하며 인상파그림을 좋아한다.
지금도 취미는 그림그리기이다.
다만, 미술이라는 것에 미련은 없다. 미련이 없기에 후회도 없다.
비록 그림을 배운시간을 짧지만, 그 짧은 5개월동안 나는 정말 열심히했고
잠시나마 들거웠다.
무엇보다도 내가 죽도록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해보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2학년. 나에게는 그림이 전부였다. 그래서 미친 듯이 그렸고 미친 듯이 몰두했다.
그림이 배우고 싶어서, 그림이 그리고 싶어서 중학교 때부터 울며불며 졸라놓고
겨우 5개월만에 그만둔게, 솔직히 조금 아쉽진 않냐고? (누가 물었다.)
아니.
미쳐서 도전했고. 끝을 보았기에 그런 마음은 없다.
오히려 굉장한 경험이였다고 말하고 싶다.
그림에 미쳐보았기에, 그걸로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남자친구가 생겼다.
태어나서 처음 사귄 남자친구! 키도 훤칠하고 꽤 귀엽게 생긴 것이 마음에 쏙 든다.
심지어 공부도 좀 잘하고, 무엇보다도 나한테 되게 잘해준다.
남자친구는 남고에 다니고 난 여고를 다녀서 그게 좀 아쉽지만, 괜찮아!
사랑의 힘으로 극복하지 못할 건 없어.
그러던 어느날.
“야야야야”
윤지, 슬기가 들뜬 표정을 하고선 나에게 다가온다.
‘왜, 왜저러지?’
“야, 너 오늘 동호 만나?”
윤지가 묻는다.
동호는 내 남자친구다.
“동호? 아니? 왜?”
나의 대답에 슬기가 답답하다는 듯이 나를 툭 친다.
“야 이 멍청아, 오늘이 어떤 날인데 안 만나냐?”
“응? 오늘이 무슨 날인데?”
“오늘 키스데이야 멍충아!”
키스데이 : 6월 14일
키스데이.. 키스라 키스.. 그러고보니 한 번도 해본적이 없다.
동호랑 50일을 넘게 만나면서 아직도 키스 한번을 안 해봤다.
“키스데이라..”
그런데 키스는 어떻게 하는거지?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입술을 맞대고 그저 가만히 있으면 되는건가? 그럼 끝인가? 19금 영화에서는 좀 다르게 하던데..
뭐, 해보면 알게 되겠지! 동호는 남자니깐 어떻게 하는지 알거야.
나는 키스데이에 키스를 하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고는 동호에게 연락을 보냈다.
[자기~ 우리 오늘 데이트하자.]
6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는 밖으로 쏜살같이 튀어나와 동호를 만나러갔다. 야간자습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빠져나왔다. 동호와 저녁을 먹고 팥빙수를 먹는 내내 내 머릿속에는 키스 생각뿐이였다.
“동호야- 오늘이 무슨날 인줄 알아?”
“응? 무슨 날? 누구 생일이야?”
내 애교섞인 질문에 동호는 그저 팥빙수나 퍼먹으며 이상한 소리나 해대고 있다.
애가 공부만 해서 이런걸 모르나.. 아냐 모를 수가 없어. 분명 친구들이 말해줬을거야.
이따가 나 감동받으라고 모르는척 하는 거라고.
해가 서서히 지고, 어둠이 내렸다.
나는 동호와 손깍지를 끼고 집으로 향한다. 가는 내내도 오로지 그 생각 뿐인 내 머리..
정말 하고 싶은가 보다. 집이 점점 가까워 질수록 내 심장은 콩닥거린다. 동호가 부드럽게 해줬으면좋겠는데. 앗, 그러는 사이 집에 도착했다. 나는 수줍게 집 앞 가로등 밑에 서서 동호를 올려다보았다. 동호도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지그시 눈을 감더니..
“잘가.”
나를 가볍게 안아주고는 홱- 돌아서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아니..그..’
어이가 없어서 잠시 동안 멍 때리고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아니 왜 그냥 가지? 오늘이 키스데인데?
괜히 짜증이 나고 서운하다. 모를 수 도 있는데, 아니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키스데인데..
나는 괜히 동호에게 삐쳐선 다음날까지 연락도 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방정맞게 ‘키스했냐?’ 며 묻길래 그냥 했다고 거짓말했다.
그랬더니 슬기는
“어쩐지- 입술이 부었네.”
라는 바보 같은 소리를 해댄다.
“야, 진짜 종소리나? 어떻게 했어? 몇 분이나했어?”
나도 몰라!! 종소리가 나는지 벨소리가 나는지 나도 몰라!
괜히 더 우울해졌다.
동호는 나의 심상찮은 기운을 감지했는지, 계속해서 전화를 걸어온다.
“왜!” .
결국 오늘도 만났다. 나의 뾰로퉁한 표정에 동호는 무슨 일이냐며, 말해달라고 애교를 부린다.
말하고 싶지만, 뭔가 키스데이에 키스 안해줘서 삐쳤다고 하기에는 좀 창피하다.
“뭔데에 말해주면 안돼?”
“아니.. 그게"
"그게 뭐?“
아 말을해야돼나.. 해야 돼는데.. 뽀뽀에 환장한 얘로 보면 어떡하지..
아 근데 진짜 섭섭하긴 하단 말이야. 그냥 말하지 말고 다른 말로 둘러댈까.. 친구랑 싸웠다던지...
“어제..”
“어제 뭐?”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키스...데...이..”
“키.. 뭐?”
저 바보가 정말.
“어제 키스데이였다구!!”
아, 몰라 이제.
동호가 아무런 말이 없다. 그저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 볼 뿐이다. 그러더니 이내 귀엽다는 듯 하하하 웃는다.
“뭐이씨- 내가 웃겨?”
“아니이 그게 아니구-”
동호가 나의 손을 살며시 쥔다. 심장이 콩닥콩닥거린다. 어제 집에 갈 때 그 심장소리다.
동호가 지그시 눈을 감고 나에게 다가온다. 나도 모르게 동호처럼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우리의 입술이 살포시 닿는다.
드디어 성공했다!
키스데이 다음날인 6월 15일 오후 7시.
서툰만큼 조심스러웠던, 잊을 수 없는 나의 첫키스.
기대했던 종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 무언가가, 깊은 진동과 함께 울려퍼졌다.
그렇게 하고 싶던 첫키스! 드디어 성공이다!
안들키고 튀어라!
하기 싫은 야간자습. 나는 고등학교 때 꽤나 말썽꾸러기였다. 그런 애가 야간자습을 할 리가 없지. 나는 거의 모든 야간 자습을 온갖 핑계로 빠졌다.
1. 무조건 몰래 도망가기.
다른거 없다. 정규 수업이 끝나면 무조건 짐싸들고 튀는거다.
대신에 눈치를 잘 봐야한다. 가다가 담임선생님한테라도 걸리면 그냥 끝이다.
뿐만 아니라 그날 야간자습 감독 선생님이 누구인지 꼭 체크를 해두어야한다. 일일이 출석부를 다 부르시는 선생님이 감독일 때는 절대 도망가선 안된다.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출석을 안 부르시거나, 불러서 없어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선생님이 감독을 하실 때만 가능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담임선생님이 정규수업만 하고 퇴근하시는 날이여야 가장 안전하다.
학교 다닐 때 가장 많이 쓰던 방법인데, 야간자습 감독선생님과 추가근무하시는 선생님들만 파악이 되면 꽤나 괘찮은 방법이지만, 정보가 잘 못되거나 재수가 없으면 걸리기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했다.
2. 선생님 저 아파요.
특히나 여학생들이 많이 쓰는 방법은 ‘생리통’이다. 뭐만하면 생리통이랜다. 나도 그랬다.
사실 말하기가 조금 민망하긴 하지만 그래도 거의 직방으로 먹히는 방법이다. 듣는 선생님도 민망하고 뭐라고 더 물어보기도 애매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특히 남자 선생님들은
“선생님 저 생리..”
“가봐.”
였으니깐.
사실 선생님들도 반 이상은 거짓말이라는 걸 아실거다. 하지만 확인할 길도 없고 막무가내로 배가 아프다하는데 더 캐물을 수도 없는 상황이니 눈 딱 감고 보내주시는 거다.
정식으로 빠져도 된다고 허락을 받은 것이니, 도둑놈이 도망가듯 학교를 나설 필요도 없어서 좋았다. 하지만 한달에 한 번 정도밖에 사용할 수 없어서 정말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때만 써야했다.
3. 내가 선생님께 했던 거짓말중에 가장 웃기고 어이가 없었던 것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치질이였다.
야간자습을 뺄 변명거리가 슬슬 떨어져갈 쯤, 사회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 사촌이 치질에 걸렸는데, 그거 치료하러 논산까지 간거있지. 거기가 유명하데.
너희 중에 치질걸려본 사람 없니? 논산으로 많이 간다던데.“
쉬는 시간에 잠깨라고 하신 한마디에서 나는 북극성을 보았다.
‘이거다.’
나는 그날 바로 담임선생님께 찾아갔다.
“선생님.. 저 치질걸렸는데요. 논산으로 치료받으러 가야하는데..”
그때, 선생님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여지껏 이런 사유는 없었다는 눈빛과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한 눈빛이 뒤섞여있었다.
“어휴, 심하니?”
“네, 조금..”
“너 변비있어?”
“.....네. 거의 못싸요.”
“그래 빨 리가. 부모님이랑 가니?”
“엄마랑요.”
“그래 어서 가.”
이얏호. 앞으로 주기적으로 치료받으러 간다고 하면서 야간자습을 빠지면 되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장기적으로 둘러댈 이유가 생겨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좋기만 한건 아니였다. 나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치질녀’로 소문이 났고, 날 마주치는 선생님들 마다 내 항문의 쾌유를 빌었다.
창피해!
그 날 이후로 항문질환에 관련된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거짓말은 절대 해선 안됩니다. 위 이야기들은 이야기일뿐 절대 따라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