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빼빼로 한 개를 샀다. 그리곤 곽 뒤에 정성스럽게 적는다.
K작가이야기11
오늘 빼빼로 한 개를 샀다.
그리곤 곽 뒤에 정성스럽게 적는다.
나 너 좋아해. 나랑 사귈래?
내일은 빼빼로 데이. 나는 드디어 짝사랑하던 Y에게 고백을 하기로 결심했다.
한 2년간을 지켜온 짝사랑. 이제는 고백 할 때가 됐지.
‘이걸 어떻게 주지.’
밤새 고민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수업이 끝나고 나서 조심스럽게, Y에게 다가갔다.
Y는 책상에 앉아 가방을 챙기고 있던 중이였는데, 내가 다가오자 아무런 말도 없이
날 올려다 보았다.
떨린다.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하지만 재빠르게 어제 사온 빼빼로를 Y의 책상 서랍에 집어넣었다.
혹시라도 다른아이들이 보고 놀릴까 겁났기 때문이다.
Y는 잠시, 내가 넣은 빼빼로를 바라보더니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바로 빼빼로였다.
항상 조용하고 얌전한 친구였는데, 그때는 박력있는 남자로 보였다.
나는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하고, 빼빼로를 받아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아몬드 빼빼로였다.
그리곤 우연히 곽을 돌려 뒷면을 보는데..!
나 너 좋아해. 나랑 사귀자♡
기절할 뻔 했다. 정말 정갈한 글씨체로(정말이지 남자글씨라고는 믿을 수 없는 글씨였다.)
저렇게 쓰여있었다.
나는 이번에도 아무말 없이 빼빼로와 Y만을 번갈아보았다.
Y는 내가 준 빼빼로를 들고, 시선은 나에게 고정했다. 대답을 기다리는 표정이였다.
좋아서 고백은 했지만,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어떡할래?”
잠시 멍했지만 바로 정신을 차렸다.
“그래.”
11월 11일. 유치하지만 우리의 1일이였다.
그리고,
Y는 나의 첫사랑이였다.
달콤한 빼빼로데이였다.
저 촌스러운 교복. 까까머리.
바랜 사진 속 우리의 모습은 얼굴 빼고 다 똑같다.
우리는 드디어 제대로 된 ‘통제의 조직’속에 들어온 것이다. 외적인 것도 통일, 하루 스케줄도 통일이다. 이제부터 약 6년 간은 철저하게 계획된 시스템 안에서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고등학교도 시험을 봐서 들어가야 했던 나는, 입시라는 용어가 중학교 때부터 적용됐다.
점점 어려워지는 수학과 영어, 우리나라 말인데도 어려운 국어. 도대체 어디에 필요한지 모르겠는 물리. 그나마 흥미가 가는 예체능도 학교라는 환경안에서는 그저 틀에 짜여진 교육일 뿐이였다.
중학교에 올라간다고 좋아했던 나. 이제 뭔가 조금더 성장한 것 같고, 할 수 있는게 많아진 것 같고 (그 때는 그렇게 느꼈다.) 몸도 마음도 성숙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여전히 별로 없었고, 해야하는 것만 늘어났다.
복장의 규제, 행동의 규제가 전 학년보다 훨씬 강화되었고 그런 시스템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오는 즐거움도 있었다. 별 것아니지만 그 시스템을 약간씩 어겨가는 희열을 느낀 것이다. 테두리 안에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귀여운 말썽을 부리는 것으로 우리는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것이 교복시절의 낙이였고 즐거움이였다.
학교간 대회나 시합이 있는 날이면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는 ‘우리는 같은 교복을 입은 사람’ 즉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이 부여되고 그에 따라 개개인의 책임감과 협동심이 발휘 되는 날이면 그게 또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조직생활이라는 것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기 시작했다.
월경. 더 흔히 쓰는 말로는 생리.
이 단어가 그 때는 왜 그렇게 부끄러웠는지.. 같은 여학생끼리도 그 말을 잘 하지 않았다.
불가피하게 상황을 알려야 하는 경우에는 우리끼리 ‘마법’ 이라고 불렀다.
한 달에 한번 오는 마법이라나 뭐라나. 마법치고는 썩 반갑지 않지만..
아무튼, 14살. 중학교에 입학하고 여자아이들이 하나 둘씩 마법에 걸리기 시작했다.
이미 초등학교때 마법이 걸린 친구도 있었다. 주기도 일정하지 않아 매번 실수를 하고, 혹시라도 교복 치마에 묻을까 뒤에서 서로 봐주기도 했다.
“야야, 내 뒤로 와봐.”
“왜?”
“샜어?”
“아니.”
치마에 묻어나오기라도 하면 그날은 그냥 체육복을 입고 하루종일 있는거다.
우리끼린 가끔 이런 얘기를 하곤했다.
“나는 처음 이거 터졌을 때, 아빠가 케잌이랑 꽃 사줬다!”
“나도 엄마가 축하한다면서 파티했어.”
친구들이 부러웠다. 사실 나는 그 어떤 축하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날이 바로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였기 때문. 월경파티는 무슨..
엄마에게 ‘성적이 이게 뭐냐고.’ 혼나기만 했다. 내가 쥐똥만한 목소리로
“엄마 나 생리 시작했는데.”
“근데!”
“나도 파티..”
“파티는 무슨!”
엄마는 선반위에 생리대를 채워넣으며 말했다.
“그게 얼마나 귀찮고 힘든건데 축하를 해!”
“에이 왜 그래- 우리딸 이제 여자가 됐는데.”
아빠가 달래준답시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해보지만, 성적 때문에 아직도 뾰로통한 엄마는
시큰둥한 반응만 보일 뿐이였다.
“이제 여성이고 다 컸으니깐, 알아서 다 잘해야돼! 알았어?!”
‘피! 축하한다고 말 한마디도 안해줘. 짜증나.’
엄마의 말에 속으로 중얼거리는 나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엄마의 말은 진리와도 같았다.
“그게 얼마나 귀찮고 힘든건데!”
어떻게 보면 여자의 특권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귀찮고 힘들긴 하다.
중학교때는 이게 뭐가 그렇게 좋다고 축하받고 싶고, 서로 쑥스러워했을까.
개인적으로 월경의 시작은 슬슬 결혼 생각이 드는 25살 이후가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덧붙임.
고등학교 때, 생리하는게 너무 싫어서 엄마에게 이런말을 한 적이 있다.
“아우, 나도 빨리 폐경왔으면 좋겠다.”
우리 엄마의 반응은.. 굳이 안써도 알겠지.
스윽- 은영의 앞으로 쪽지 하나가 들어왔다.
쪽지를 놓고간 언니들은 별 말 없이 교실 밖을 나갔다. 살짝 벙찐 표정의 15살 은영은 잠시동안 노란 쪽지를 바라보다가 이내 슬그머니 펴보았다.
‘너 내 X동생할래?“
은영은 그 의미를 금세 알아차렸다.
‘하지만, 나한테 왜?’
은영은 그저 놀기 좋아하는 활발한 아이일 뿐이였다. 그녀는 자기에게 그런 제안이 들어온 것이 당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사실 그녀의 주변 친구들은 거의 X언니가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뒤를 봐주는 언니. 학교에서 양언니 같은 것이다.
은영은 그런 것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시큰둥하게 말했었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X언니를 거느린(?)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런 친구들은 대게 다른 언니들이나 아이들이 쉽게 건들지 못하기 때문이였다. X언니 없이도 학교생활을 이어가는데 무리는 없지만, 속된 말로 ‘간지’가 나기 때문에 은영 역시 은근히 바래왔던 일이였다.
은영은 조금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3학년 5반으로 향했다.
‘고등학생이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고등학교 언니가 X언니를 자처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러면 중학교 3학년 선배들도 건들지 못하기 때문에 더 좋았다. 친구중에 고2 X언니가 있는데, 언니가 밥도 사주고 다른 언니들도 만나게 해주고 학교에서 누가 못되게 굴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하랬다는 것이다. 언니의 파워가 그 친구보다는 조금 약한 것 같지만, 그래도 3학년 5반 이수진이면 전교에 이름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정도이니.. 은영은 그런데로 만족하기로 했다.
“저...기...”
역시 3학년의 공기는 무섭다.
은영이 고개를 내밀자, 일순간 교실이 조용해졌다. 은영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곧이어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한 무리가 자리에서 스르르 일어나 복도로 걸어나왔다. 그 모습에서 위압감이 느껴진다. 은영은 다시 한 번 자기도 모르게 두 세 발짝 뒷걸음질을 쳤다.
“왔구나?”
“네..”
아이라인을 진하게 그린 수진이 은영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사실 키는 비슷한데 꼭 은영을 내려보는 것처럼 보인다. 은영은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수진의 이름표만 바라볼 뿐이였다.
“재희가 네 친구니?”
수진의 옆에 있던 언니가 은영에게 물었다.
“네?.. 네.”
은영은 가급적 씩씩하게 말하려 노력했다. 왠지 기빠진 모습을 보이면 X동생으로 삼아주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재희 X거든-”
“아, 정말요? 얘기 많이 들었어요~ 되게 잘해주신다고..”
사실 그런 얘기는 들은 바가 없다. 뭐, 잘해주겠지.
“그래? 재희가 내 얘기를 많이해?”
얘기 하면 안되나..? 괜히 무서워서 은영은 순간 식은땀이 났다.
“나 알지?”
수진이 은영의 눈을 바로보며 묻는다. 그 물음에 은영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금세 ‘네!’ 라고 소리내어 대답했다.
“이수진언니요.”
수진은 약한 미소를 띄며 은영에게 악수를 청했다.
“앞으로 잘해보자.”
“앗, 네! 언니 잘부탁드립니다.”
“그래, 이따 학교 끝나고 뭐해?”
“저요?”
무조건 시간이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아무 약속도 없어요.”
“그럼 이따 수업 다 끝나고 정문 앞에서 보자.”
“네 언니!”
은영과 수진은 서로 핸드폰 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은영은 괜히 떨리는 마음에, 수업에 집중을 할 수 가 없었다. 이따 수업이 끝난 오후에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할지가 궁금했고, 괜히 무섭기도 했다. 앞으로 너무 자주 불러내거나 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부터,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이런걸 괜히 했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미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였다. 인제와서 ‘저 못하겠어요’ 라고 통첩을 보냈다가는 무슨 사단이 날지 모른다.
상대는 전교에서도 잘 노는 축에 속하는 이수진이였다.
‘아니야. 애들 모두 X언니가 있는데, 학교도 잘다니고 잘 생활하고 있잖아? 문제 될 건 없을 거야.. 아마..’
수업이 모두 끝나고, 은영은 잽싸게 정문으로 튀어나갔다. 정문에는 수진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은영은 다시 한 번 더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며 칠 후.
“야, 너 X언니 수진언니래매?”
재희가 은영의 책상 앞에 앉았다. 입에는 케로로빵을 가득 물었다.
“응.”
“이열- 좋겠다. 빽 제대로 생겼네.”
“좋지!”
사실 별건 없었다. 수진언니를 처음 만난 그날, 나는 수진언니와 간단히 밥을 먹고 카페로 향했다. 언니는 무슨 말이던 굉장히 거창하게 보이도록 하였지만 사실 별건 없었다.
X동생-언니라는 것은 형식일 뿐이였다. 나는 그저 가끔 밥을 사주거나 매점에서 빵을 사주거나 언니들이 노래방 갈 때 같이 가는 친한 동생이였다. 그리고 이런 것은 나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X관계의 실체였다. 정말 험상굳게 노는 언니들을 빼고는 거진 다 이런 분위기였다. 실상을 알고 나자 나는 수진언니가 조금 편해졌고 나중에는 X언니, X동생이라는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갔다. 가끔 언니가 누군가에게 날 소개 할 때
“내 X동생이야.”
라고 하지만, 그건 뭔가 멋드러지고, 남들에게 뽐내고 싶은 마음에서 갖다붙이는 허울에 불과했다. 언니는 그냥 평범한 중학생이였다.
우리의 X관계는 언니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끝이 났고, 연락도 끊어졌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X언니라는 것은 존재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어차피 별 것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중학교를 졸업한다. 고등학교 입학이라는게 레벨업처럼 느껴지고, 그에 따라 새로운 무기를 장착 한 것 같다. 그리고 어른에 한발 짝 가까워진 것 같다. 이젠 몸도 성인과 비슷하고...
우리 학교는 소위 말하는 뺑뺑이가 아닌, 고입시험을 통해 학교를 배정한다.
동석이는 공부를 잘해 특목고에 갔고
기훈이는 공부를 못해 실업계에 갔다.
나는, 이도저도 아닌 탓에 인문계 중에서도 중하위 고등학교에 그것도 턱걸이로 합격했다.
실업계를 가려했지만, 엄마가 실업계에 진학하면 무슨 사단이라도 나는 것처럼 하도 난리를 쳐서 어거지로 인문계 학교에 입학하기로 했다.
중학교 3년 내내 선생님들은 우리 엄마 같았다. 좋은 인문계, 특목고, 과학고가 아니면 마치 인생이 끝장난다는 듯이 말하곤 했었다. 수업시간에는 은근 슬쩍 실업계 학생들을 내리깎는 이야기도 서슴치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어른들이 그렇게 주입한다 한 들, 결국 우리는 성적이라는 이름 아래 서열이 매겨지고 가야할 길 또한 자연스레 갈라진다. 거의 모든 반마다 비슷한 비율로 인문계와 실업계가 갈리고 그 안에서도 상위권, 중위권, 하위권 인문계. 정보계열, 농업계열, 상업계열 실업계로 나뉜다.
엄마는 아직 입학도 안한 고등학교 타이틀에 굉장히 민감해한다. 자기 아들이 알아주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지 못한 것이 창피했나보다. 막상 그 학교에 입학하게될 우리들끼리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괜히 어른들이 더 난리다. 뺑뺑이로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지역도 있다던데, 거기로 이사가고 싶었다. 고입도 그렇게 어려운데 대입은 도대체 어떻게 보냔 말이다. 아, 3년 후에 생각해야지.
아무튼, 우리는 중학교를 졸업한다. 크게 맞췄던 교복이 몸에 점점 맞아갈 쯤, 우리는 이곳을 떠나야만 한단다. 고등학교에 가면 야간자습이 의무라던데, 공부도 더 많이 시킨다던데.
상급생으로서의 진학과 3년 만에 다른 교복으로 갈아입는다는 것이 살짝 들뜨기도 했지만, 무서운 마음도 들었다.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엄마 말마따나 뒤처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조금 불안하지만, 고등학교 시절이 제일 재밌다고 우리형이 그랬다.
그래, 잘 할 수 있을거다. 분명 재밌을 거야. 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중요한건 나는 이제 겨우 중학교를 졸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