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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JoYo Nov 03. 2021

야나체크, “무성한 길 (웃자란 길)”

피아노 작품집 ⟪On an Overgrown Path⟫

— 모라비아 태생의 피아니스트 루돌프 피르쿠스니의 연주 —



1

길이 있다(혹은 있었다),

오래 찾지 않아 흔적만 희미하게 

남은,


간혹 이름을 알고 대개는 

이름도 모르는 풀들이 무성해진, 

가보지 않았다면 길이 있었는지도

몰랐을 법한, 그런

길. 


2

체코의 모라비아 지방 출신 작곡가 

야나체크의 피아노 소품의 모음집인

⟪Po zarostlém chodníčku⟫는

영어로는 ⟪On an Overgrown Path⟫,

우리말로는 보통 

⟪잡초가 무성한 오솔길⟫로 소개되는데, 

이 제목이 너무 산문적인 것 같아

나의 경우 (딴에는) 보다 중의적으로 

그저 “무성한 길”이나

혹은 “웃자란 길”로 소개하곤 한다. 


오랫동안 가보지 않은 길에

과연 풀들만 무성하겠는가. 

풀들이 무성해진(overgrown) 만큼

그 길 자체도 웃자라는(over-grown) 것은

 아닐까. 


3

약간은 수수께끼 같은 체코어 제목은 

지나간 시절의 추억을 묘사할 때 쓰는

관용적 어구라고 한다.


마르크-앙드레 아믈랭의 

2014년 음반(Hyperion)의 해설을 쓴 

해리엇 스미스에 따르면,

모라비아 지방의 신부가 부르는 결혼식 노래, 

“엄마 집으로 가는 길에는 

토끼풀만 무성하게 자랐네”라는 가사처럼

되돌아갈 수 없는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워도 되찾을 수 없는 아쉬움과

일말의 서글픔이 묻어나오는 

표현이다. 


4

열 곡으로 구성된 첫번째 시리즈와 

때로 두 곡, 현대에는 4~5곡으로 이루어진

두번째 권으로 나뉘어지는데, 

첫번째 시리즈가 더 자주 연주되고

사랑을 받고 있다. 

(이 글에서도 첫번째 권에 대해서만 다룬다.)


첫번째 시리즈에 포함된 곡 각각의 제목은

제1곡 Our evenings (우리의 저녁들)

제2곡 A blown-away leaf (바람에 떨어진 잎새)

제3곡 Come with us! (같이 가요!)

제4곡 The Frýdek Madonna 

(프리데크의 동정녀 마리아)

제5곡 They chattered like swallows 

(그들은 참새들처럼 지저귀고)

제6곡 Words fail! (어떤 말도 소용없어!)

제7곡 Good night!

제8곡 Unutterable anguish 

(말못할 고통)

제9곡 In tears (눈물 속에서)

제10곡 The barn owl has not flown away!

(헛간올빼미는 아직도 날아가지 않았네)이다. 


1897년 하르모니움이라는 악기를 위해

민요 선율을 편곡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1901년에 세 곡이 ⟪슬라브의 멜로디⟫라는

악보집에 묶여 출판된 이후

1911년 12월에 출판되기까지 

각각의 곡들이 씌어지고, 수정되고, 

곡들이 더해지고, 제목이 붙었다가, 

제목이 바뀌고,

다양한 출판업자들과 

실랑이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가 되었다 한다. 


다만 “On an Overgrown Path”라는 제목은

1901년 세 개의 소품이 출판될 때부터

보이기 시작하니, 

야나체크가 언젠가는 완성될

이 피아노 소품 사이클의 성격을

애초부터 ‘멀어져간 추억의 회상’으로 

생각하고 있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5

사실 야나체크의 음악을

(그리고 후기 낭만주의 이후의 음악을)

곡의 구조나 화성의 분석 등을 통해

음악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나와 같은 비전공자, 비전문가에게는 

지나치게 버거운 일이다. 


영국 피아니스트 스티븐 허프가

스크랴빈과 야나체크의 음악을 연주해

2015년 내놓은 앨범(Hyperion)에 

언급한 말에 따르자면, 

‘야나체크는 짧은 악구나 악절을

때로는 강박적으로 반복해 사용하며, 

화성적 어법은 언제나 불안정하고 불편’하며,

그래서 야나체크를 너무 많이 듣거나 

혹은 연주하는 것은 

상당히 ‘진이 빠지는(exhausting)’ 일이다. 


불확실한 조성감 탓에

마치 들풀이 무성한 길에서처럼

방향을 잃어버린 듯한 선율과 화성.

나아가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 

오른손은 흘러가려 하지만

왼손은 아래로 하강하며 발길을 붙들고,

음표들은 마치 수직으로 자라난 풀들처럼

추억 속으로의 여행을 가로막는 듯하다. 

첫번째 곡 Our evenings의 부분 (악보 출처는 http://imslp.org)
두번째 곡 A blown-away leaf의 부분 (악보 출처는 http://imslp.org)


6

야나체크의 음악은 그렇다,

언뜻 달콤함이 비치는 순간에도

서늘함은 늘 그곳에 있다. 

잠깐 다정함이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씁쓸함이 엄습한다. 


이 기이하고 불안한 화음이며,

발길에 자꾸 채이는

온전한 추억으로의 생각의 흐름을 

방해하는 리듬이라니. 


야나체크는 이 곡들을 쓸 무렵인 1903년, 

딸 올가를 장티푸스로 잃는다. 

그보다 십여 년 전에 이미 아들을 잃었고, 

이후 야나체크 부부는 예전의

애틋함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전한다.


특히 첫번째 곡과 마지막 곡은

딸의 사망 직전에 씌어졌는데, 

마지막 곡 제목의 올빼미가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불길한 전조를 상징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리고 그 앞의 곡이 In tears임을 떠올리면

이 작품 전체에 깔려있는 슬픔을

조금쯤 이해하게 된다. 


7

따지고 보면 

굳이 옛 시절을 떠올리는 이의 심사에는,

현재가 보잘 것 없고 고통스럽거나

혹은 과거의 슬픔이 가시지 않았거나,

설령 행복한 기억이라 해도 

그 바탕엔 늘 온갖 아쉬움과 그리움, 

서글픔과 안타까움 같은 것들이

깔려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과연 우리의 기억이란 

또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인가. 

지나간 시절은 대체로 희미하기에

보이지 않는 이정표들을 간신히 엮어내어 

우리는 더듬더듬, 

자라난 세월에 묻힌 길을 

한없이 헤매곤 하지 않던가. 

풀들이 무성히 자라난 만큼, 

우리가 더듬어야 할 길도 자라나며 

생각의 가지들은 이리로 저리로, 

걷잡을 수 없이 뻗어 나간다.


그러므로 이 무성함은, 

풀들이 무성하다면 자연스레 떠오를 법한

여름날 초록의 무성함이라기보다, 

물기 없이 누렇게 말라버린 풀들로 덮인

밤이 길어지는 이맘 때의 황량한 

풍경과도 같은 것, 


혹은 여섯 번째 곡의 제목(Words fail!)처럼

뭐라 표현할 낱말조차 찾지 못한 채

옛 시절의 자취를 하릴없이 좇으며

뒤척이는 고단한 밤이거나 

사나운 꿈자리와도 

같은.


8

이 작품 자체가 감상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매우 사적인 것이다보니 

유려함과 낭만성을 강조하는 해석보다는 

오히려 좀 건조하고 깔끔하게, 

감정을 굳이 너무 담아내지 않고

소리의 울림에 집중하는 연주가 

더 좋은 듯하다. 


글 머리에 링크한 

모라비아 태생의 피아니스트

루돌프 피르쿠스니(Rudolf Firkušný)

야나체크와 개인적 연이 깊기도 했으려니와,

아무래도 모라비아 민요 선율이 쓰인 

이 작품의 해석에 있어서 그의 연주는

당연히 레퍼런스라 할 만하다.


그 외에 동유럽과 슬라브 문화의 전통에 

가깝고 친숙할 법한 연주자들, 

헝가리 태생인 안드라스 쉬프(ECM, 2001), 

사라예보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이주한 

이바나 가브리치(Champs Hill, 2011)가 

추천할 만하다. 


위의 세 사람 모두 왼손, 혹은 내성부가 

흐름을 끊고 맺고 이어가는 음악적 어법을, 

그 안의 달콤함과 서늘함과 씁쓸함을

매우 탁월하게 소화하고 있다. 


9

마지막으로 공연 실황 동영상을 

하나 더 링크한다. 


일본계 영국 피아니스트

미스즈 타나카인데, 

그녀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체코에서 이반 모라베크 등을 사사하기도 한, 

야나체크에 대한 이해가 깊은 

연주자로 보인다.


연주 자체도 훌륭하고

(특히 이 작품의 페달 사용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연주만큼이나 절제된 의상도 인상적이며 

제스처도 과장되지 않아 좋다. 

2016년 내놓은 앨범에서 

야나체크의 이 곡과 커플링된 것이 

바흐의 파르티타인 것으로 보아

그녀의 지향점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https://youtu.be/PG_dKoGM4AI

— 일본계 영국 피아니스트 미스즈 타나카의 연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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