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사랑에 관한 짧은 단상
1. 오르페우스
에우리디케 없이 나 무엇 하나,
내 사랑하는 이 없이 과연 어딜 가나.
Che farò senza Euridice,
Dove andrò senza il mio ben.
・
2. 하데스
칼리오페의 아들이여,
사랑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겨울이 끝날 무렵 페르세포네를
그 어미의 품으로 보낼 때마다
나는 비탄과 동시에 의심에 젖어들었다.
여덟 달 뒤 그녀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그녀가 사라지는 저 통로의 끝을,
그대가 미칠 듯한 의심으로 걸어가던
저 통로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나를 감동시켰던 것은 그대의 음악,
하지만 나의 페르세포네는
그대의 사랑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리고 나는 데메테르의 딸을 사랑했다.
선의를 낳는 것은 감동이 아니라,
그러므로 오로지 사랑이다.
에우리디케는 언제나 그대의 곁에,
페르세포네는 나의 품에 있을 테지만
우리는 여전히 의심을 풀지 않는다.
소유 없이 사랑을 얻는 것이 가능할까,
아마도 그것은 남자들의 어리석은 숙명,
사랑은 우리에게 너무 복잡하다.
헬리오스의 말들이 붉은 피를 토한다.
곧 에오스의 눈물이 풀잎에
방울방울 맺힐 것이다.
어쩌면 디오니소스가 옳은지도 모른다.
사랑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마음,
트라키아 여인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피와 살이라고.
그렇게 그대 자신을 버려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제단에 괸 피 냄새가 유난히 달콤한 아침,
과연 그대도 깨달았을까?
・
3. 에우리디케
당신,
듣고 있나요 당신,
듣고 있었을까요, 당신.
아, 아름다운 당신의 목소리,
당신과 내가 삶과 죽음을 넘어
다시 만나게 했던 아름다운 목소리,
그러나 당신은 듣고 있었을까요,
나의 목소리.
당신은 당신의 노래를 너무 사랑해서,
듣고자 하지 않았지요.
스스로의 목소리에 갇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어요.
내가 당신을 향해 뻗은 손,
우리의 험난한 여로 내내
당신과의 앞날을 노래했던 나의 노래는,
의심으로 가득 찬 당신의 뒷모습이
가로막고 있었겠지요.
내가 없는 나날이 그렇게 만든 건가요.
오로지 나를 데리고 올라가야 한다는
허망한 욕망에 갇혀,
바로 그 순간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을
잊었던 건가요.
나는 늘 당신 곁에 있었답니다,
당신이 잠시 잊었더라도.
이제 다시 내가 당신의 곁에
늘 함께 할 것임을 믿으세요.
당신의 방황이 끝나는 날,
카니발의 아침에도 영원히 말이지요.
・
4. 카론
지금 내 귓전을 맴도는
이 선율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
5. 케르베로스
카론은 모든 것을 잊는 자,
그리하여 말이 없는 자.
하지만 나의 머리 하나는
과거를 예감하고
다른 하나는 현재를 들추며
나머지 하나는 미래를 돌아본다.
모든 것을 보고 있기에
그것이 괴로워 밤이면
홀로 짖는다.
산 자로서 카론의 배에 오른 것은
네가 처음이었으나,
우리가 감동하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하데스를 만나게 될 운명이었다.
에우리디케 없는 너는 이미
죽은 자였으므로.
태초부터 종말의 그때까지,
나의 세 개의 머릿속에는
온갖 종류의 사랑이 들어있다.
이제 어느 밤에는 네 무모한 사랑,
섣부른 기대로 부풀어 올라
허황된 의심으로 꺼져 버린
그 사랑이 문득 떠올라 짖을 것이다,
하늘을 향해, 대지를 향해,
그리고 다른 하나의 머리는
저승을 향해.
・
6. 페르세포네
(긴 침묵 뒤에)
하지만 당신이 아무리 사랑을 의심해도
사랑은 당신을 발견하기 마련일지니,
(Chorus 그대가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비록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그 순간을 영원으로 삼아야 하는 것,
(Chorus 그대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당신이 잠시 잊을지라도
사랑은 당신을 기억할 것이니,
사랑은 당신을 찾아낼 것이니,
(Chorus 모든 것은 사랑, 모든 것은 죽음)
보라, 오르페우스여,
당신의 피로써 새로운
사랑의 이야기가 시작되리니,
그대의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Chorus 사랑은 곧 죽음, 죽음은 곧 사랑)
・
7. 다시, 오르페우스
나는 그 여로(旅路) 내내
그녀가 과연 내 뒤에 있는지,
하데스가 정말로 약속을
지킨 것인지 두려웠다.
어쩌면 나는 의심한 것이 아니다.
그저 궁금했을 따름이다.
과연 따라오고 있는 영혼이
그녀의 것이 맞았을까.
마침내 내가 돌아보았을 때,
저 어둠 속으로,
스튁스의 찰랑거리는 강물 너머로
휘말려 가던 그 희미한 그림자가
과연 에우리디케였던가,
나의 그녀였던가.
트라키아의 여인들이여,
지금 내 몸이 찢기는
이 강렬하고 선명한 감각이
왜 그때는 느껴지지 않았던가.
이 육신을 그대들에게 바침으로써
나는 또 하나의 노래를 얻는다.
바야흐로 때는 겨울,
이 서늘한 카니발의 아침
대지는 데메테르의 슬픔으로
가득하다.
처음 링크한 음악이자
오르페우스의 첫 대사로 인용한,
⟨Che farò senza Euridice⟩는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의
1762년 오페라 ⟪Orheé et Eurydice⟫에서
오르페우스가 부르는 아리아다.
마지막 음악인
⟨카니발의 아침(Manhã de Crnaval⟩은
마르셀 카뮈가 감독한 1959년의
영화 ⟪흑인 오르페우스(Orfeu negro)⟫의
주제곡으로,
루이스 본파(Luiz Bonfa)가 작곡하고
안토니우 마리아(Antoniô Maria)가
가사를 붙였다.
그리고 이 글은
(이미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음악에 대한 글이 아니다.
오히려 음악에 의한 글,
혹은 서툰 실수로 점철된
나의 인간관계와 음악이,
그리고 신화 이야기가
우연히 한 곳에서 만난
또 하나의 서툰 결과물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