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마음 가는 대로 들은 노래들 — 2
“난 이제, 사랑이 무거워서 싫어.”
오래전 어느 늦은 밤 시내버스,
라디오 드라마에서 들었던 대사가
더 어울리는 나이가 된 지 오래지만,
묵혀 두었던 사랑 노래를 꺼내 듣고
수없이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르게 되는 그런 날은 있기 마련이다.
가슴이 벅차오르면서도 먹먹한,
흔한 사랑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잘 써내려 간
니나 네스빗(Nina Nesbitt)의
⟨Parachute⟩ 같은 노래라면 더욱더.
“But you, not with you~”에서와
“You are the parachu~te”에서
중력에 맞서 사뿐히 날아오르는,
절묘하게 운을 맞추면서(‘유’와 ‘슈’)
허공을 자유로이 유영하는 듯한
니나 네스빗의 목소리.
너무나 내성적이어서,
마치 레코드판 B면의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노래,
이제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사어(死語)와도 같아서,
나만의 세계 주위에 벽을 쌓고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지내왔지만
당신과는 그렇지 않다고,
그럴 수 없다고,
나를 구름 위로 데려다주면
달이 되어, 별이 되어 환히 빛나리라고,
드디어 나의 세계로부터 뛰어내려
자유낙하하며 날 수 있노라고,
그대가 나의 ‘낙하산’이 되어 줄 테니.
그러나 어쩌면 이 노래의 묘미는,
노랫말에 담긴 확신에도 불구하고
니나 네스빗의 목소리에는
한마디 말, 한 번의 눈빛에도
부서질 것 같은 연약함이 묻어난다는 것.
그렇다, 사랑은 위험한 것이다.
사랑이 다가오는 그 아슬아슬한 순간
우리는 자신을 방어할 수단을 모두
내려놓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Lost my defences,
now I'm defenceless with you”)
그래서 우리는 종종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워지거나,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기도 하고
인연이 비껴갈 가능성에
노심초사하기도 하지 않던가.
프랭크 시나트라와 그의 딸 낸시가
함께 부른 ⟨Something Stupid⟩에서
예의 그 여유만만한 시나트라의 목소리,
두 사람이 함께, 같은 가사를 노래하며
둘 사이의 공감대를 강조함으로써
곡의 전체 분위기를 조금은 따뜻하고
유머러스하게 만들어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알고 있다.
마음에 쏙 드는 그 사람과의 데이트,
뜬금없이 사랑을 고백함으로써
멍청하게도 멋진 분위기를,
나아가 좋은 관계를 망칠까 저어하는,
이 조마조마하고 안절부절한 순간들을.
(“And then I go and spoil it all
by saying something stupid
Like, ‘I love you’”)
사랑을 맞이한다는 건
네스빗의 노래처럼 자신의 세계로부터
과감하게 뛰어내리는 것이고
그래서 때로 바보 같은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지만,
정훈희의 ⟨그 사람 바보야⟩에서처럼
잘못된 신호, 어긋난 타이밍으로
일껏 용기를 낸 뒤
바보가 될 수도 있는 이 아슬아슬함.
그렇다, 사랑은
“단 한번 윙크로” 오는 것이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인연이 아니라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살짜쿵” 가볍게 넘겨야 하는지도.
Queen의 명곡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처럼,
어차피 사랑에 빠지는 일이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아니던가.
밤새 칭얼대는 갓난아이처럼,
내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이 식은땀 나고 진땀 흘리게 만드는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이기에.
(“It cries (like a baby), in a cradle all night
…
She gives me hot and cold fever
She leaves me in a cool, cool sweat”)
머리로야 긴장을 풀고
침착해야 한다는 걸,
어쩌면 사랑이란 기나긴 여행과도
같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그래서 도대체 내 마음은 언제쯤이나
충분한 준비가 되는 것인가.
(“I gotta be cool, relax
Get hip and get on my tracks
Take a back seat, hitchhike
And take a long ride on my motorbike
Until I'm ready”)
가만 생각하면 이별의 노래보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노래하는 음악이 훨씬 적은 것은
얼핏 납득이 가는 일이다.
이별은 단발적인 사건이라기보다
오래도록 겪어내는 과정이고,
수많은 우연적이고 필연적인 사건들이
응축된 결과인 까닭에
우리는 때때로 부질없이 복기하며
생각지 못한 인과관계, 과도한 의미부여,
때늦은 후회와 원망을 비롯한
온갖 서사들을 갖다 붙이기 마련이다.
그러는 동안 원래 제각각이었던 사정들에
다른 이들의 것과 비슷한 면이 늘어가고
그것이 오히려 이별노래가
폭넓은 공감대를 얻는 이유겠지만,
반면 사랑은 그저 섬광처럼 순식간에,
설명 불가능한 방식으로 찾아온다,
마치 빅뱅처럼.
도대체 왜 일어난 것인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아마도 영원히 알 수 없을 어떤 것.
그러나 일어났다는 것은 자명하며,
그것이 모든 일의 원인인 것처럼.
불행히도 이 모든 ‘빅뱅’은
지극히도 개인적인 경험이어서,
다른 이와 이 순간을 공유하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마일스 스미스가 ⟨Stargazing⟩에서
노래하고 있는 것처럼
사랑할 때 우리는 별을 바라보는 것,
상대방의 눈 속에 남아있는
별의 기나긴 자취를,
서로의 삶과 영혼을 들여다보는 것.
(“Lookin’ in your eyes
I see my whole life…
You and I stargazing
Intertwining souls
We were never strangers
You were right there all along”)
내 인생의 무언가가 달라졌다는 사실은
선험적으로 깨달을 수 없는 것,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때가 되면
그냥 알게 되는 것이다.
(“They say you know it
when you know it, and I know”)
설명할 수도, 자잘한 세부사항들을
일일이 나열할 수도, 묘사할 수도 없는,
그저 그 일이 일어나기 전과
일어난 후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단지 어렴풋한 깨달음.
하지만 그 하루, 그 찰나의 사건이
만들어내는 변화는 또 얼마나 거대한지.
다이나 워싱턴이 부른
⟨What A Difference A Day Makes⟩에서처럼
이 많고 많은 날 가운데,
어느 하루가 얼마나 대단한 차이를
내 삶에 가져다줄 수 있는지,
‘너’라는 그 차이로 인하여.
(“What a diff'rence a day made
And the difference is you”)
그러니 부디,
아직 사랑이 무겁지 않은 누군가는
그 “마음에 주단을 깔” 수 있기를.
소월의 “즈려 밟”히는 진달래꽃이 아니라,
윤기 나는 붉은 주단을 “사뿐히 밟으며”
사랑이 당신을 찾아가기를,
“한마디 말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될 수 있기를.
산울림의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
5분 50여 초의 노래에
자그마치 3분을 넘어가는
기나긴 ‘전주’처럼 간절함을 담아,
사랑은 누구에게나 기다릴 가치가 있는
무엇인가이므로,
속절없이, 바보처럼, 다시 한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