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K장녀와 유난스러운 가족

by 비타민들레


퇴사를 하고 집에 돌아오니

밤 10시쯤 되었다.

이미 거실 테이블에는 와인과 과일이 있고

파티를 시작한 들뜬 엄마와 동생이 있었다.


“우리 딸, 그동안 고생했어.”


혀가 살짝 꼬부라진 귀여운 우리 엄마가

따뜻한 말과 함께 나를 안으려고 했다.


“됐다마! 고마 해라!”


낯간지러운 말을 어색해하는 K장녀는

포옹하려는 엄마의 팔을 밀고

가방을 내려놓고 손을 씻으러 갔다.



나는 나밖에 모르고↘♩♪

너는 ↗너밖에 모르고♩♪

그래서 우리는 ~

똑같은 길을 걷지 평행선♪♬


도무지 퇴근을 한 건지

퇴사를 했는지 잘 모르겠는

평소와 다름없는 금요일 밤이었다.


엄마의 18번

문희옥의 ‘평행선’이 흐르며

본격적인 댄스파티가 시작되었다.


퇴사는 이런 건가 보다.

당사자보다는

주변에서 더 난리인.


나보다 가족이 더

긴장을 하고, 관심을 갖고

나의 퇴사를 더 기념하며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는…


-


다음 날 아침,

창업 첫날이지만 이미 예약 고객이 있었다.

친구가 첫 고객으로

내 브랜드의 마수걸이를 해주기로 한 것이다.


새벽 일찍, 저절로 눈이 떠졌다.

씻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엄마 아빠가 또 거실에서 부산스러웠다.


“우리 딸, 첫 출근하는데

사무실 한번 가봐야 되는 거 아니야?”


“아니야! 안 와도 돼~! 오지 마~ 오바야!”


“짐 많잖아. 아니야 엄마 아빠가 그래도 한번 가봐야지.”


그렇게 엄마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자니

옆방의 동생이 일찍 잠을 깨더니

곧장 엄마를 지지했다.


“언니 언제가? 나도 갈래!!

*호치도 같이 가서 응원해야지.”


짐도 많아 무거운 것도 사실이었고

사무실을 한번 봐야 안심이 되겠다는 부모님

언니 일하는 곳이 궁금해 미치겠다는 동생까지.

도저히 더 말릴 수가 없었다.


창업 첫 출근길은 나름 고요하고 우아하게

앞으로의 각오를 다지며 가려고 했는데.


어느새 아빠차에는 토요일 아침 7시부터

온 가족(물론 강아지까지)이 함께 타있었다.


차가 출발하자, 동생이 말했다.


“커피 한잔 묵고 싶다~”


“어디 들릴 시간 없다.

나 내려다 주고 집에 가면서 사 먹어”


어디 나들이 가는 것도 아닌데

괜히 커피 마시자는 동생에게

쓸데없는 말 하지 말라는 듯이 반응했다.


차를 타고 가며 가족의 모습을 한 번 봤다.


생각이 많은 듯한 아빠

나보다 왠지 더 긴장한 엄마

비몽사몽 동생과 어리둥절한 강아지까지

좀 유난스럽기는 해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 사랑과 응원을 주는 나의 1 호팬들이었다.


이윽고 나의 새 사무실, 공유오피스에 도착했다.


“오 예쁘다” “커피는 공짜인 거야? 좋네.”


-


짧은 사무실 투어를 끝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가족을 배웅하러 내려갔다.


“자기, 사무실 되게 좋아~!”


차 때문에 사무실을 못 본 아빠에게

엄마는 안심하라는 듯이 말을 건넸다.


“그럼 마 됐다”


이내 반려견 남동생도 동네가 마음에 들었는지

자신의 흔적을 짧게 남기고 모든 가족이 차에 탔다.


“현주야 오늘 잘하고 와.”


고개를 몇 번씩이나 끄덕이는 엄마아빠를 보며

나는 ‘응’이라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퉁명스럽게 ‘빨리 가’ ’라고만 말했다.


인기쟁이 K장녀의 삶은

팬이 많아 고단하다.

하지만 창업 첫날같은 불필요한 비장함과

긴장감이 들 수도 있는 날에는

그런 것들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는 장점도 있는 게 맞다.


오히려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해서

얼른 첫 고객 맞이에 집중해야겠다는 내가 있었다.


씩씩하고 나다운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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