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없이 걷는 길도 의미가 있을까?

대표가 이렇게 산만해도 될까?

by 비타민들레

일본이나 대만 여행을 가면

하루 종일 여행해서 지치고 피곤해도

호텔로 귀가하기 전 꼭 들리는 곳이 있다.


바로 편의점이다.


뭐 살 게 없더라도, 가서 눈 구경이라도 해야

꼭 직성이 풀린다.


맥주나 하이볼, 각종 디저트와 아이스크림,

감자칩과 젤리, 그리고 도시락 등

구경하다 보면 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겁다.


배는 너무 부르지만 그냥 들어가기는 아쉬우니

뭐라도 하나 사서, 흰색 봉다리를 손목에 걸어

바스락거리며 호텔로 돌아가는 기분이 참 좋다.



뭘 사기 위해서만

어떤 목적이 있어서 들리는 게 아니다.


갔다가 우연히 내게 필요한 것을 발견할 수도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마침 사야 할 것들도

평소 갖고 싶었던 것의 큰 할인 이벤트를 맞이할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발길 따라 걷는 그 길에

나는 대체로 큰 기대를 갖고 사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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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후 맞이한 첫 월요일 점심 역시 그랬다.

사무실 코앞에 있는 한식 주점의 런치 메뉴 현수막을 보고

‘맛있겠다’ 들어가 ‘삼겹살 김치볶음밥’을 주문했다.


풍성한 김가루와 예쁜 계란 후라이,

그릇 넘치게 흐르는 쌀밥과 장국,

3가지나 되는 반찬이 실로 푸짐했다.


평일 이 시간에 나 혼자, 합정/상수 골목 어귀에서

오후 2시나 되어 유유자적하게 밥을 먹는 날이 오다니!


실로 감개가 무량했다.

심지어 밥을 먹으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한 잔 공짜였다.


가족 단톡방에 이 감동을 전한 뒤

밥을 싹싹 비우니 배가 너무 불렀다.

다이소에 가야 되겠다.

가면 사야 할 게 있을 거야.


그렇게 발길 따라 다이소로 향하는 길

‘도로’로 걸어야 하는 애매한 길이 많아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고

주변 떡집, 카페, 술집 등 상권도 둘러보며

동네를 이곳저곳 탐색했다.


이윽고 도착한 곳,

도시락통, 컵, 각종 귀여운 파우치, 노트, 스티커, 미니보드들이

내게 자기들을 데려가라며 어필을 시작했다.


“이걸로 삼각김밥 만들어서 도시락 하면 좋잖아~”


“나 짱구 파우치인데 안 사감? 사가면 이건 무조건 쓰지”


“나(스티커) 귀엽지 않아? 이걸로 포도알 챌린지 안 해볼래?”


아니 아니 우선 둘러보자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힌 채

당장 새 사무실에 필요한 것을 생각해 봤다.


쟁반! 다과 쟁반!


고객들이 오시면 과자/젤리를 드리기로 했는데

이걸 담을 ‘쟁반’이 필요했다.

쟁반 코너로 가니, 은은하고 예쁜 베이지 색의

귀여운 일러스트가 그려진 그릇을 발견했다


이거면 티 주전자랑 색깔이 맞네

그렇게 쟁반을 사고 또 한참을 구경하다 사무실에 돌아왔다.


전날 쿠팡에서 주문해 둔 대형 간식들을 열어

하나둘씩 꺼냈다.


젤리와 초코, 씹을 수 있는 감자 과자 등

식감과 맛이 겹치지 않게 골고루 조합되도록 준비했다.


어떻게 하면 더 예쁘고 푸짐하게 보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괜히 뿌듯하고 재밌었다.


‘다과’ 준비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내가 좋았다.

좀 더 정확히, 내 과거의 경험에 감사함을 느꼈다.


이런 하나하나가 다 나의 차별점이 될 거야.

이 일 하는 사람 중에, 과자 네 종류 이상 준비한 건 나밖에 없을 걸?

무조건 푸짐하고 내가 받고 싶은 대우처럼 고객한테 해야지.


쟁반까지 다 세팅하니 4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한 거라곤 오전에 프린터 설치와

네이버에 시스템 등록하느라 이것저것 클릭하며 헤맨 것,


밥 먹고 다이소에 다녀와서

간식 쟁반 세팅한 것밖에 없는데도 왜 이렇게 피곤한지.


그렇다고 이 하루가

헛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발길 닿는 대로 걸은 것도, 충동처럼 집어 든 것도
초보 창업가에게 필요한 작은 연습이었나 보지.


때로는 목적지 없이 움직여봐도 괜찮다.


결국은 내가 선택한 것들이
나를 잘 이어 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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