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은 했는데 할일이 없다.

by 비타민들레

출근은 했는데 할 일이 없다.


일을 분명 하긴 했는데

아무것도 한 것 같지 않다.


밥값을 못한 것 같은데

배는 고프다.


전전긍긍 애는 썼지만

진짜 해야 할 건 시작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시가 되니 퇴근은 하고 싶더라.


퇴사 후 첫 번째 월요일이자

창업 후 첫 영업입을 맞이한

나의 소감이다.


창업 첫 월요일의 단촐한 나의 책상 (공유오피스 1인 지정데스크)


내 생애 이토록 상쾌하고

몸이 가벼운 아침이 있었던가?


한 때는, 월요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토요일 밤부터 우울해했었다.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바뀌는 새벽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3시, 4시까지 몸을 뒤척였던 때도 있었는데...


짹짹 소리와 자연스러운 창가의 빛으로

6시 30분에 상쾌하게 눈이 떠지는 기적,

창업 첫 월요일이 시작되었다.


-


공유 오피스로 출근을 했는데

세상에, 아무도 없었다.


무슨 9시가 훌쩍 넘었는데

출근한 사람이 한 명도 없지?


여기서 책상 하나만 내 건데

사람 없고 조용하니, 전세 낸 것 같아 기분은 좋네~!


고요하고 밝은 사무실을

핸드폰으로 한 바퀴 찍고

커피를 한잔 내려 책상에 앉았다.


자! 이제 일을 시작해 볼까?


(...)


그런데 뭘… 해야 하지?


순간 멈칫했다.


지금까지는 10년 간 축적된

평일 일상의 본능적 움직임이었다.


눈 뜨자마자 사무실로 출근을 했고

커피를 한잔 내리고

컴퓨터 전원을 켠 것까지.


그런데 막상 키보드 위에 손을 얹고 보니

어떤 일부터 해야 할지 난감했다.


대표 자격 미달이었다.


3-4년 전부터 출, 퇴근하면서

‘일 생각’ 하지 말자는 습관이 문제였다.

한창 쳐내야 할 회사 일들이 많았을 땐

이동 시간에도 메일을 쓰거나 통화를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하다 보니

일이 쉽게 질려버리는 것 같아

되도록 이동 시간에는 아무것도 안 하려 했고

지난 몇 년간 착실히 실천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습관의 무서움이 이런 건가 보다.

상황과 환경이 달라졌는데, 무의식적으로 하던 대로 하게 만든다.


맞다 맞다, 우선 프린터 세팅부터 해야지


선물로 받은 블루투스 프린터,

이제는 업무 기기 지원팀과

옆자리에 물어볼 팀원도 없으니 괜히 긴장 됐지만

사용설명서를 읽어가며 세팅을 했다.

엄마가 후원해 준 A4 용지를 얹어

이리저리 테스트를 하다 보니

벌써 낮 12시 30분이었다.


한 것도 없는데, 왜 벌써 점심시간?

이제 밥 먹어야 되겠다.


그러다 또 멈칫했다.


이제 점심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왜 점심을 꼭 먹어야 할 것 느낌이 드는 걸까?


내게 허용된 자유와 자율,

이 선택지들이 너무 낯설어

아직 정오 밖에 되지 않았지만

몇 번이나 일시 멈춤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좀 더 하다가, 배고프면 나가서 먹자.

회사에서 하지 않던 대로, 하고 싶었다.


청개구리의 반항 심보 마냥

‘이래야 할 것 같다’는 느낌에

‘그렇게 하지 않겠다’로 맞수를 두고 싶었다.

회사원스럽지 않게, 내가 배고플 때 먹고 싶은 것을 먹겠다며.


출근한 지 채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건만

마음속 요란함에 스스로 피곤함을 느꼈다.


회사 안이나 밖이나, 난 똑같이 청개구였잖아… 이런!


낯선 자유 속에서도, 결국 나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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