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 한 그릇의 위로와 채움

by 비타민들레

기력이 달리거나, 몸에 기운이 없을 땐

한 그릇 꼭 챙겨 먹는 음식이 있다.


바로, 뜨끈한 뚝배기에 보글보글 거품 소리

한가운데 뿌려진 송송 대파가 먹음직스러운 뽀얀 순댓국!


내 생애, 제일 맛있게 먹었던 국밥은

전남 순천 웃시장의 제일식당이다.


국밥을 시키면, 육수에 데친 배추와 부추 수육이 제공되며

이 집의 가장 큰 비결은 콩나물 살린 맑은 육수이다.


먹고 나면 속이 온기로 채워지고 또 개운한 맛이 일품인데

국밥이 단순한 식사를 넘어

내게 원기 회복제가 된 사연이 있다.



창업 첫 월요일, 헬스장을 찾아야 했다.


이제 몸뚱이가 재산인 1인 기업으로서

건강 관리를 위해 정기적으로 웨이트와 유산소를 병행하며

자기 관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월요일 근무를 마무리하고


5시쯤 되어 사무실을 나섰다.


이렇게… 퇴근해도 괜찮나?

누구의 눈치를 보는 건지 모르겠는

(전) 10년 차 직장인은 긴가민가한 마음이었지만

그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웠다.


역으로 향하는 길에 검색을 해보니

헬스장은 잘 없고, PT샵이 훨씬 더 많았다.

난 PT샵 말고, 지상에 있는 헬스장이면 되는데…


퇴사를 결정하고 남은 근무 기간 중

최대의 복지는 사내 운동 시설 이용과

PT가 제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하는 법을 배워 나 혼자서도 헬스장에 들락거리며

웨이트를 할 수 있었음 해서였다.


기업 CEO와 여성 아이돌 전문 - 이초롱 코치

사내 PT 코치님의 프로필을 보고, 바로 연락을 드렸다.


우리는 매주 화목 깜깜한 용산 거리를 뚫고

아침 7시에 만나 운동을 함께했다.


“현주님, 이 운동을 할 땐 여기에 자극을 느껴줘야 해요.”


“한 개만 더 ~ 잘한다! 등 근육 영상 찍어줄게요.”


코치님은 운동하는 방법은 물론이거니와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나는 혼자 운동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


“선생님, 제가 사정 좀 나아지면 나중에 선생님한테 개인 PT 받을게요.”


“네 현주님, 제가 CEO 전문인 거 아시죠? 언제든지요!”


이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사내 PT는 마무리되었다.


그래서 내게 필요한 건 지상에 있는

산뜻한 분위기의 운동할 곳이면 족했다.


하지만 모두 지하에 있거나, 사람이 많거나, 기구들이 맘에 들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더 많이 이용했을 텐데… 아깝다.


그렇게 2시간 여, 역 주변의 몇몇 헬스장과 PT샵을 방문하고

상담까지 받고 나니 건물 밖을 빠져나오니 기진맥진했다.


아 힘들어… 배고프다


그때, 어디에선가 맛있는 냄새가 내 코끝을 스쳤다.

두 시간 동안 PT샵을 전전했지만 아무것도 정하지 못한 채

하루가 끝나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었다.

따뜻한 거 한 그릇 먹어줘야, 좀 괜찮아질 것 같았다.


순대국 보통 하나 주세요!

국밥을 기다리며, 멍하니 오늘 하루를 곱씹어 봤다.


김치볶음밥 먹고, 다이소 가고

헬스장도 못 정하고 아무것도 못한 ‘망한 하루’ 같았다.


이윽고, 서빙된 국밥을 보고 깜짝 놀랐다.

국밥 위에 ‘숙주 몇 가닥’이 올려져 있었다.


와… 숙주 올라간 국밥집이라니, 서울에서 한 번도 못 봤는데…


이윽고 순천에서 맛있게 먹었던 추억이 떠올랐다.

국물을 호로록 한 입 떠먹으니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합격이라는 외침이 맘속에서 절로 나왔다.


저녁 시간대가 되니 손님들이 많아져서

얼른 먹고 자리를 비워드려야지 하는 마음에

후루룩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고 빠르게 식당을 나왔다.


‘망한 하루’는 이미 온데간데 사라진 뒤였다.


잘 먹었습니다.


계산을 하고 역으로 걸어가며 생각했다.

왜 먹기 전에는 하루가 망한 것 같았는데,


지금은 괜찮은 걸까?

어디선가 봤던 구절이 떠올랐다.


짜증이 나고 예민하고, 생산성이 없다고 느낄 땐 이것만 기억하세요


- 나 지금 배고픈가? 나 어젯밤 잠 잘 못 잤나?


어쩌면 오늘은 내게 이것을 알려주기 위한 날이 아니었을까?


앞으로 혼자 일을 해나가며,

바쁨을 위한 바쁨에 쫓겨 기분이 우울해졌을 땐

온기가 가득한 국밥을 챙겨 먹으면 된다는 것을.

내게 맞는 자기 관리 비결 중 하나를 얻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괜찮아졌다.


홀로 서기란 결국, 어떤 하루에서도

나를 다독이는 법을 배우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낙관성과 긍정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 말이다.


따뜻한 한 끼를 챙기는 일도, 나를 지키는 일의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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