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회사원은 처음이에요 3. 창업생존기 11화
우리는 큰 결정을 앞두고 조언을 찾는다.
가족, 친구, 선후배, 그리고 챗GPT.
그리고 빠지지 않는 게 하나 더 있다.
‘사주’
친구랑 함께 가서, 인생 전반 풀이를 들은 옥수동 그 집,
선배에게 추천받아 연애운과 직업운을 봤던 서대문 그 집,
점심시간을 활용해 팀 전체의 사주 풀이를 들었던 그날.
내 사주는 한결같이 좋은 풀이였다.
부족한 게 없고, 황금 돼지라서 재물과 먹을 복이 타고났고
또랑또랑한 밝음이 장기이자 재능도 많다 했다.
남편이 성실하고 돈도 잘 벌고, 자식복도 좋아서
인생의 말년에는 가족과 함께 크루즈 여행을 다닐 팔자라 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그 아저씨’의 풀이는 달랐다.
"본인은 직장 생활해야 돼요. 인정받고 좋아."
"... 네? 저 저번 달에 퇴사했는데요."
일순, 아저씨와 나는 서로의 눈을 깜빡였고
짧은 정적이 흘렀다.
퇴사 시기는 더운 여름이었으나
뜨거운 태양열은
나의 해방감을 막지 못했다.
창업 첫 달이니 적당히 일하고
퇴사 후로 미뤘던 친구들과의 즐거운 만남으로
매일매일을 채워갔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도
틈만 나면 홍대합정상수를 누비며
콧바람을 쐤다.
그런데 걷다 보니 유독
동네에 사주타로집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오 일본 방송에서도 다녀 갔네?
외국인도 사주 재밌어할까?
잠시 서서, 간판을 바라보다가
새로운 일도 시작했겠다 이제 사장님이 된
나의 운을 한번 점쳐보고 싶었다.
3만 원이니까 가격도 나쁘지 않네
가게에 들어가니 '아빠뻘 아저씨'가 계셨다.
"어서 오세요."
"선생님 혹시 바로 가능하세요?"
"네 들어오세요. 생년월일시 말해주세요."
"1990년 4월.."
아저씨는 '태블릿'에
'지뢰게임'을 닮은 소프트웨어를 켜고
내 생년월일시를 입력했다.
‘색다르네’하며 피식 웃었다
평소에 봤던 사주는 선생님이 펜과 종이를 쓰고
책을 찾아가며 질문과 대화가 이어지는 방식이었는데
냅다 '지뢰게임'같은 '회색창’에
사주를 입력하는 것에 신선함을 느꼈다.
"오늘 가장 알고 싶은 게 뭐예요?"
"뭐 전반적인 거 다 알고 싶어요."
"음... 약하네 약해."
"네?"
"약해요."
"뭐가 약해요?"
난생처음 본 사람에게
약하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참 묘했다.
“우선, 본인은 34살까지 울타리에서 살다가
35살 기점으로 울타리 밖을 나와요.”
“혹시 울타리가 회사예요?
저 얼마 전 퇴사했거든요.
그런 게 사주에 나와요? 어떻게 알 수 있어요?”
이윽고 선생님의 친절하지만
불친절한 설명이 시작됐다.
“우선 본인이 흙인 건 알죠?
기토(나)는 약해요. 무토가 강하지.
그리고 이거는 저거고, 저거는 그래요.”
동문서답이었다.
당최 설명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작은 태블릿 화면에서 마우스 커서를 왔다 갔다 하며
이거, 저거, 그거라는 ‘지시대명사’만 쓰는 아저씨였다.
“‘이게’ 뭔데요?”
“(마우스 커서로 글자를 가리며) ‘이거’”
“아니 그.. 가리키시는 한자의 뜻이요.”
분명 한국어인데, 선생님 혼자만 이해하는 언어였다.
그리고, 기분이 나빴다.
들어온 지 5분도 안 됐는데
‘약하다’는 말만 반복해서 들으니까
진짜 약한 사람이 들으면,
운세 보러 왔다가 더 약해질 것만 같았다.
“선생님, 저 사업운 봐주세요.”
“좀 얍삽해야 돼요. 그리고 정신 바짝 차려야 돼.”
“네? 얍삽이요?”
오마이갓,
나는 늘 좋았던 나의 사주 풀이를 기억하며 ‘‘격려’를 들으러 왔다.
그런데 아저씨는 내게 ‘경고’를 했다.
온갖 싫어하는 ‘부정어’와 ‘명령형’의 말투로.
“선생님, 예시를 들어 정확히 설명해 주시면 안 될까요?”
“직장 다닐 때, 승승장구하지 않았어요?”
“아니요.”
아저씨와 나의 본격적인 사주풀이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