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시스템보다 강했던 건 결국 사람이었다.

시즌3 창업생존기 마지막화

by 비타민들레


시작부터

여느 자영업자, 여느 프리랜서와는 다르고 싶었다.


내가 일해온 방식을 바탕으로

뭐든지 ‘회사’ 답게 하고 싶었다.


실제로 잘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렇게 보이게끔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혼자 일하면서도

도메인을 만들고,

업무용 툴/메신저를 결제하고,

로고와 브랜드 디자인에 비용을 들이고

심지어 명함마저 ‘글로벌’을 고려한다며

영어 주소로 파두었다.


그때의 나는

내가 아는 방식이 곧 최선이라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개업한 지 반년을 향해가는 시점

연말을 앞두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호기롭게 나아가면

자신감과 확신이 따라와야 할 텐데,

오히려 반대였다.


검색하고, 비교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모든 과정을 혼자 감당하는 일은

내 에너지와 시간을 빠르게 소모시켰다.


그만큼의 노력에 비해

매출과 고객 반응은

기대만큼 돌아오지 않았다.

답답했다.


그제야 알았다.

회사라는 시스템과 역할 분담이

얼마나 위대한 구조였는지를.


재무팀, 법무팀, 전략팀, 마케팅팀, 인사팀,

회사에선 당연히 나누어했던 일을

혼자서는 모두 내 몫이었다.


기업에서 터득한 일의 방식을

홀로서기한 내게 그대로 적용하는 게

과연 맞는 걸까.

회사원으로서 쌓아온 경험은

분명 나의 자원이지만,

환경이 달라졌는데

방식까지 그대로 고집하는 건

새로운 가능성을 가리는

양날의 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 홈페이지’는 꼭 필요했다.

나는 그저 프리랜서이기보다

공신력을 가진 어떤 가치를 전하는 일을

하는 회사의 운영자로서 보이길 원했기 때문이다.


‘홈페이지’ 제작을 함께한 파트너는 펄이었다.

디자인만큼은

무조건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싶었다.


우린 공유 오피스에서 처음 만나

로고와 명함 작업을 함께했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누며

서로 일하는 방식을 알아갔다.


그러던 중

내가 홈페이지 제작을 고민하고 있다는 말을 했고,

펄은 마침

자신도 홈페이지 제작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럼 같이 해볼래요?

견적은 어떻게 될까요?”


“저도 해봐야 알 것 같은데요?”


그렇게 우리는

비용보다 먼저 오픈 목표 일정을 합의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몇 번의 협업으로 쌓인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구글 시트에는

홈페이지에 들어갈

기업 비전과 철학, 프로그램 소개 문장들이

빼곡하게 쌓여갔다.


함께 논의하고 쓰고 지우고 고치고 다시 쓰며

2024년 12월 31일 가오픈을 목표로 달렸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문구.


‘자기 이해를 통한 시작할 수 있는 용기’


이 문장을 위해

우리는 몇 달의 시간을 함께 쌓아갔다.


홈페이지를 열자

이제는 서사가 담긴 대표 콘텐츠를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에세이를 쓰기로 했다.


<非 회사원은 처음이에요>

지금의 나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펄을 찾았다.


“펄, 제가 에세이를 인스타 카드 뉴스 이미지로

주 1회 올리고 싶은데요. 견적이 어떻게 될까요?


그때 펄이 말했다.


“이럴 거면 그냥 저를 직원으로 고용하는 게 낫지 않아요?”


아, 맞네.


“현주님이 저를 고용하면

나 월급 줘야 되니까 더 열심히 일하지 않을까?”


맞는 말만 하는 펄이었다.


그렇게 팀메이트가 생겼고

2025년을 함께했다.


실제 팀원의 급여를 밀리지 않기 위해

뭐라도 더 해보려 했고


팀원에게 일을 더 잘 시키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배운 것이 많았다.


그만큼 새롭고 재밌는 기회들이

듬뿍 나를 찾아왔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한 사람의 몫만이 아니었다.

무조건 플러스알파였다.


팀메이트가

무엇을 얼마나 해냈는지보다

서로에게 어떤 존재였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일’을 함께 고민하고

소소한 성취와 성장을 함께 축하하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혼자만의 세계에

갇히지 않을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처음부터 만들고 싶었던 건

회사답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과 ‘좋은 일’을 함께 만드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운은 사람으로부터 온다는 말이 있다.


실제 나의 운은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을 느낀 2025년이었다.


내 곁에 어떤 사람을 두는지,

누구와 함께 가는지

사람이 제일 중요한 것은

백 번, 천 번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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