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elyn H Apr 16. 2024

이직하세요...?

아직 꿈만 꾸는 분들에게.

어제 저녁 헤드헌터로부터 메일 하나를 받았습니다. 

제안 내용과는 상관없이, 오랜만이라 반갑더라구요.  

물론 당장 이직할 의사가 없기에, 정중히 거절의 회신을 보냈습니다.


작년 연말부터 올초까지 각 그룹별로 사장단 인사가 발표되었고, 속속 조직개편도 단행되었습니다.

빠르게 조직을 정비한 기업도 있고, 조금은 신중을 기하며 뒤늦게 인사를 단행한 곳도 있는 것 같네요. 

경영진이 교체되면 기존의 부서들이 사라지거나 통합되기도 하고, 신규 부서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2, 3월이 지나면 헤드헌터들로부터 종종 전화나 메일을 받게 됩니다. 어딘가 ‘자리’가 생겼기 때문이지요. 해당 포지션의 특장점은 물론 내 경력이 얼마나 그 자리에 Fit한지 설명을 듣다 보면, 없던 이직 의향이 빼꼼 고개를 들기도 합니다. 한번 옮겨 볼까? 하는.


평생 직장의 개념이 희박해진 요즘, 이직을 크게 고민하지 않고 시도하는 분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제 주위만해도 당장 큰 불만은 없지만, 꾸준히 시장(?) 동향을 체크하면서 좋은 기회가 있으면 바로 옮기겠다는 후배들도 종종 있거든요. 그러나 이직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동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깊은 불만과 절망을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들어보면 문제는 많습니다. 연봉 외에도 조직장이나 팀원들과의 불화, 평가 및 인사 불공정성, 조직의 불투명한 비전, 향후 커리어 성장의 한계 등이지요.


안타깝게도 이러한 불만의 요인들은 어느 조직이든 쉽게 개선되거나 변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인간 관계의 불편함이나 평가/승진 등은 상대적으로 판단되는 경우가 많지요. 본인을 피해자 혹은 희생양이었다고 주장해도 딱히 입증할 방법이 없거나, 되려 상대방(주로 평가자)은 인지하지 못하거나 정반대의 입장인 경우도 수두룩하게 보았습니다. 결국 무엇이 진실인지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속답답하고 미칠 지경인 것은 당사자인 자신뿐입니다. 그래서 해결책이 안보이고 앞으로도 달라질 게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이직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것 같아요.


동료 J가 재작년 이맘때쯤, 돌연 사표를 제출하고 이직을 선언했습니다. 

다소 민감한 이야기라 조심스럽습니다만, 결국 요약하면 인사 불공정성이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마음 고생은 좀 했지만, 임원인 예전 직장 선배의 강력한 추천으로 이직에 성공했고 게다가 본인이 줄곧 원하던 직위와 연봉 상승이라는 훌륭한 결과도 얻었습니다. 그러나 2년 만에 만난 그녀는 상당히 피곤해 보였습니다. 처음엔 회사에서 중책을 맡고 있고 워낙 성실근면한 타입이라 일을 하다가 번아웃이 온건가 싶었어요. 하지만 그녀가 처한 작금의 문제는 이전과는 그 성격을 전혀 달리하는 새로운 유형의 것이었습니다. 

타 부서장과의 협업 관계에서 오는 충돌과 갈등 때문에 너무나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사업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을 돕는 조직을 이끌고 있는데 사업 개발이나 영업 부서와 일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이 쉽지 않다는 겁니다. 심지어 먼저 입사하여 이너써클을 만들었던 그들이 나중에 입사한 J가 비즈니스(현업)를 잘 모른다는 이야기를 퍼뜨리면서 일이 더욱 커진 것 같았어요. 길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들을 가르는 무거운 공기의 흐름과 어둡고 날카로운 분위기를 십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꽤 오래전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J의 상황을 들으면서 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어떤 (인사팀) 동료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이직은 소풍 같은 거에요. 막상 가보면 별 것 없잖아요. 가기 전날 가방에 과자 챙길 때나 즐거운 거지.” 

이어, “지금 몸담은 곳의 문제가 5가지 있다면, 새로 옮겨갈 곳의 문제도 똑같이 5개일거에요. 다만, 문제의 유형이 1, 3, 5, 7, 9냐, 아니면 2, 4, 6, 8, 10이냐 그 차이만 있을 뿐이죠.”

정리하자면 1) 세상에 나에게 완벽한 조직은 (당연히) 없다는 것이고, 2) 현재의 불만을 해결하려는 목적으로만 이직을 선택하는 것이 惡手가 될 가능성이 있으며, 3) 이직한 곳에서는 그 나름의 새로운 문제가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반길 거라는 사실.


몇 번의 이직을 해 본 저 역시 충분히 공감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렇기에 고생하긴 매한가지인데도 이직을 꼭 해야 한다면, 여러 이유 중 커리어 개발과 성장이 꼭 포함되어야 한다고 믿는 편입니다. 그래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드는 에너지도 아깝지 않고, 간혹 일이든 사람이든 예상 못한 힘든 부분이 있더라도 이겨낼 여지가 생길 겁니다. 예전엔 부정적으로 느껴졌던 점들도 미래를 생각하면서 보다 긍정적으로 헤쳐가려는 노력도 하게 될 거구요. 귀찮더라도 꼭 이직해야 하는 이유와 계획을 꼼꼼히 따져보시길 바랍니다. 인생이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으로 가득 찬 여정이라곤 하지만, 적어도 '가게 된 길'을 후회하고 뒤돌아보지 않으려면, 거듭 생각해볼 수 밖에 없으니까요.  

이전 13화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기 가능할까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