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kim Sep 26. 2020

낯선 곳에서 낯설게

Day 20

2010년부터 2011년까지 1년 정도 영국에서 살아볼 기회가 생겼다.

사실 군대도 칼같이 다녀오고 복학도 칼같이 했다.

매 학기 꽉꽉 채워 수업 듣고 계절학기도 성실히 들어 졸업 요건이 꽤 빨리 충족이 되었다.

사회생활이 빨리 하고 싶었던 나는 졸업도 최대한 빠르게 하기 위해 

공부는 잘 안 했지만 정말 성실히 대학 생활을 했다.

아마 내 기억에 결석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명절 귀성을 이유로 빠졌던 것을 제외한다면).

초등학교 1학년부터 대학교 4학년까지 16년을 개근했다.


그렇게 나름 열심히(?) 생활하다 보니 사회생활을 코 앞에 두고

한 박자 쉬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딱 1년만 휴학해볼까?


사실 1학기 남은 터라 교환 학생도 불가능했고

외국에서 생활을 해보고 싶었는데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

큰 마음먹기로 다짐하고 부모님 앞에서 프레젠테이션까지 하며

1년 지원을 받기로 했다(부모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사회생활해서 갚겠습니다).


미국과 영국 중 고민하다 '축구'와 '음악', 딱 두 가지 때문에 영국을 선택했다.

때마침 학교에서 산학 연계로 영국 미술과 예술 산업 분야에 관한 좋은 프로그램이 있어

시기를 맞춰 참여하고 연이어 영국 브라이튼이라는 곳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2개월쯤 되니 휴양지에서의 생활이 지루해지기 시작했고

단조롭게 공부만 하는 것이 적성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영국에서 근무 가능한 아르바이트부터 직장 인턴 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수소문했고

세네 군데 정도 급하게 작성한 이력서를 보냈다. 그중 위 프로그램 참여했던 기회로 미술 관련 업체 한 군데서 연락이 왔고 운이 좋게도 합격했다. 


그렇게 시작된 영국에서의 직장생활 덕분에 지루한 시골 동네에서 도시인 런던으로 옮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런던 남부의 브릭스턴이라고 하는 런던 폭동으로도 유명한 아프리칸 커뮤니티가 가장 크게 형성되어 있는 동네에서 하숙 생활을 시작하였고 직장은 워털루와 서덕 역 사이에 위치한 곳이었다. 그곳에서의 생활도 정말 기억에 많이 남는다. 저녁 펍에서 맥주를 마시며 나눴던 축구와 음악 이야기들, 매주 금토 집으로 놀러 왔던 손님들과 하우스 파티, 룸메와 함께하는 저녁 식사와 영화 감상, 일상적인 대화 등 사소한 것들이 많이 생각난다. 인턴생활로 소정의 돈을 벌다 보니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많았다(한국 물가의 1.5배 정도 수준이었는데 임금이 매우 높은 편이라 인턴도 수입이 꽤 되었던 터).


미술에 문외한이었지만 큐레이터와 미술가, 미술 행정가, 기업, 커미셔너, 대학, 기관 등 다양한 개인, 조직들을 서포트하는 역할을 하며 예술에 대한 공부도, 실무도 많이 해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교육 프로그램을 맡아서 인솔하기도 하고 가끔 VIP 의전 활동도 필요하다 보니 런던 곳곳의 관광 명소나 미술관, 공연장 등에 대한 접근과 이해가 상대적으로 높아야 했기에 정보를 수집하고 참 많이도 다녔었다. 특히 그때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미술관을 가고 또 갔던 게 참 기억에 많이 남는데, 제일 좋아해서 매일 드나들었던 테이트 브리튼과 나만의 비밀 공간이었던 터너의 작업실, 사무실 옆에 있어 틈만 나면 찾아갔던 테이트 모던과 헤이워드 갤러리는 매일 가도 새롭고 갈 때마다 보이는 미술 작품들이 다를 뿐만 아니라 그 느낌이 항상 새로웠다. 죽치고 앉아서 뚫어져라 터너의 작품에 들어갔다 나오고, 모네의 작품 앞에서 그 풍경을 상상하거나 터바인홀 공간을 채우는 작품 앞에서 경외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름을 나열하기도 어려운 정말 수많은 퍼블릭 갤러리들과 프라이빗 갤러리들, 박물관, 옥션, 심지어 도이치 뱅크와 같은 은행들의 사무실까지 벽면 가득 채우는 미술작품들이 런던이라는 도시 도처가 미술관 같았다. 거기에 매일 저녁 라이브 공연과 대단한 뮤지션들의 콘서트가 곳곳에서 열리고 연극과 뮤지컬 같은 공연장의 열기도 무척 뜨거웠다. 런던은 언제라도 원하는 장르의 예술을 선택해서 볼 수 있는 그런 풍부한 예술 도시였다.



거기에 덧붙여, 우리나라로 치면 신촌동, 연희동 같이 행정구역별로 축구팀은 왜 그렇게 많은지, 우리가 익히 아는 EPL 1부 리그뿐만 아니라 13부, 그 이하까지 정말 축구를 위해 사는 사람들로 착각을 일으킬 만큼 매일 같이 축구 경기가 있고 응원이 있고 축구 이야기가 있고 맥주가 있고 펍이 있었다. 당시 룸메가 풀럼의 시즌권이 있어 경기가 있던 주말마다 놀러 갔던 풀럼의 홈구장도 무척 기억에 많이 남는다. 여담으로 당시 박지성 선수가 맨유에서 뛰고 있었던 터라 가끔 박지성의 13번이 마킹된 맨유 저지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다 보면 버스도 공짜로 타고 커피를 얻어먹는 등 좋은 일도 종종 있었다.


그렇게 1년여의 생활 속 예술을 경험하다 돌아온 한국에서 그 감각이 쉽게 잊히지 않는데, 유독 코로나 19처럼 환경적 제약까지 생기니 다시 그곳에 가서 느껴보고 싶은 갈망을 크게 느낀다.


그래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살았던 제3의 고향인 런던에 다시 가서

매일 경험했던 대단한 작품들과 미술의 경험들, 내가 살았던 공간과 숨 쉬고 거닐었던 공원, 레스토랑, 카페, 공연장, 축구 경기장까지 이제는 가족들을 데리고 다니며 내가 가이드처럼 설명도 해주고 함께 그 공간의 경험들을 다시금 해보고 싶다. 그리고 느껴보고 싶다. 


특히 내가 좋아했던 미술관들, 그중 테이트 브리튼의 비밀의 공간, 매일 홀로 독차지했던 그 공간에서 아이들과 같이 그림도 그리고 터너의 그림을 함께 보며 이야기 나누는 그런 순간을 기대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기쁘게 하는 존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