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81
1.
며칠 전 첫째 둘째와 소꿉놀이 겸 카페를 차려서 함께 손님, 점원을 번갈아가며 놀이를 하고 있는데 내가 손님이 되어 카페에 방문했고 주문하며 흥얼거리면서 콧노래를 부르던 중이었다. 놀이에 집중 못하고 장난감으로 방황하던 둘째가 대뜸 내 앞에 와선 하는 소리, “헛또리하디마라(헛소리 하지마라)”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당시 살짝 황당하게 있던 내 모습과 어린아이가 그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게 너무 웃겨서 첫째랑 배 잡고 웃었다. 그리고 그 생각날 때마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2.
대학교 때였다. 학교 정문 앞 건널목이 아주 크고 긴 구간이 있었다. 마지막 수업이 끝났을 6시 무렵, 신호등은 보지 않은 채 다들 발을 동동 구르거나 핸드폰을 보거나... 나는 장난기가 발동하여 무심하게 길을 건너려 발을 뗐고 수십 명의 인파가 신호등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건널목을 건너려고 했다. 우르르 지나려다 신호가 바뀌지 않은 거에 깜짝 놀라서 다시 보도로 올라오는 그 장면이 아찔하기도 했지만 가끔 생각날 때마다 헛웃음이 나온다.
3.
한 번은 뛰어서 기숙사에 가던 중이었다. 버스정류장을 지나는데 한 버스가 마주 보고 뛰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정류장을 살짝 지나서 세우고는 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닌가. 아... 그 기사님을 그냥 모른 척 지나치자니 뭔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탈 생각도 없던 버스에 긴급히 올라타고 갔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반대방향이었다.
4.
십오 년 전 일이다. 명동에서 빨간 버스를 타고 외삼촌댁에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 시간에 두 대 정도밖에 안 다니던 버스다 보니 놓치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근데 명동에서 타서 분당까지 가야 하기에 생리현상이 발생하면 큰일 날 법하여 100원 넣고 이용할 수 있는 공중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딱 나오는데 버스가 오는 것이 아닌가. 기가 막힌 타이밍이라 속으로 생각하며 뛰어가서 버스에 올랐는데, 웬걸 화장실에 쓴 100원이 딱 모자랐던 것. 버스카드는 충전해야 했고 현금은 달랑 그것 밖이었는데 100원이 딱 모자랐던 것이다. 거짓말을 하기 싫어 기사 아저씨께 말씀드렸더니 봐주셨고 100원을 할인받을 수 있었다. 그 날 화장실에 쓴 100원만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5.
중학교 때였다. 내기를 참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주사위를 던져 홀수가 나오면, 짝수가 나오면 하는 방식으로 던지기 전에 서로 내기를 하고 겨루는 식이었는데, 참 잘하는 친구가 홀수를 외쳐도 이기고, 짝수를 외쳐도 이기고, 높은 숫자, 낮은 숫자, 1부터 6까지 지정해도 그냥 뭘 해도 이겼다. 내리 30판 정도를 이기자 상대 친구가 울먹일 정도였고, 안쓰러웠는지 잘하는 친구가 제안을 했다. “1부터 6이 나오면 네가 이기고, 1부터 6이 안 나오면 내가 진다.” 옆에서 보던 나는 그런 내기가 세상에 어딨냐고 했지만 한판은 져줘야 할 거 같다고 잘하는 친구가 쿨하게 웃었다. 서로 오케이하고 주사위를 던졌는데... 주사위가 튕기고 튕기더니 쌓아놓은 책에 기대면서 모서리로 서버렸다. 숫자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31판을 내리 이겼던 그 친구의 뭔지 모를 표정과 내기에서 진 친구의 일그러진 표정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어쩌면 친구는 내기의 신이 아니었을까 싶다. 가끔 그 말도 안 되는 사건을 회상하며 피식 웃곤 한다. 지금 그 친구는 내기나 도박 대신 보험을 판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