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초상과 함박눈

역시나 바람잘날 없는, 비범한 어느 11월

by Richard B

때론 나의 일상과 인생이 너무나도 다이내믹해 멀미가 느껴질때가 있다.

마치 제동장치가 고장난 롤로코스터를 수 십년간 멈추지 않고 타온 것 처럼, 중력장의 바깥 궤도에서 정처없이 이리저리 나부끼는듯한 삶에 치를 떨곤한다.


과연 어디서 무엇이 어떻게 꼬여오길래 이 얽힌 실타래같은 인생은 어째 단 하루도 제대로 풀려나가는 적이 없는 것일까.


11월의 끝자락에는 불필요한 휴무일이 많아 무엇을할지 고민을하다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가 값싸고 질 좋은 생활용품을 잔뜩 사오자, 철 맞은 방어회 한 점에 소주나 한 잔 하고 오자라는 굉장한 가벼운 마음으로 그러나 고심 끝에 한국엘 들어갔다.


어차피 가봐야 반겨줄 가족도 있는 것이 아닌 나이기에 고향으로 갈 생각조차는 하지않았고 며칠 머물게 될 친구와 주변인들 몇 몇에게만 연락을 하고 그들에게 건네줄 작은 선물하나 마련해 정말 단촐하게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래도 이 전에는 몇 개월만에 들어가는 한국이라면, 나를 따스히 맞아주는 가족이 있지 않더라도-물론 모두 생존해있지만- 한국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었는데 이번엔 유난히 그렇지 못했다.


내가 재직중인 항공사의 대기표(스탠바이티켓)도 비교적 수월하게 끊어 가볍게 간 한국인데 비행기에 탑승해서부터 이상하리만치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한국에 도착해 오랜만에 코끝찡한 늦가을 자락의 찬바람도 쐬어주고, 때에맞춰 인천공항에 내리 퍼붓는 우박세례를 맞는가하면 살아생전 본 적 없는 진한 색깔의 영롱한 무지개도 봤더랬다.


신나는 느낌과 어떠한 설레임, 그저 고향땅에 발붙였다는 느낌이 주는 편안함 따윈 없었고 그저 막막한 '이상함' 자체의 하루였다.


제철이면 한 번씩 먹어주는 방어회라던가 지나치게 차갑게 보관되어져 공업용 에탄올의 맛 마져도 나지않는 소주를 먹는다는 그 것 또한 즐겁거나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해 마지않는 친구들 여럿을 한 자리에서 오랜만에 만나 수다를 떨어도 온통 딴 생각에 대화에 집중이되지 않았고 이들과 무슨말을 한지도 모르는채 어느 새 만취가되어 그 날의 기억을 잃었다.


모든것이 춥고 무미건조하기만 했던 한국에서의 그 첫날밤은 때이른 함박눈과 함께했고 그렇게 줄초상이 시작되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닌 말 그대로의 '줄초상'이 시작되었다.



20대 부터 알고지내던 형님이 한 분 있다.

강원도 설악산자락에 있는 오색약수터 근처에 소탈하지만 근사한 산장을 지어놓고 풍류를 읊으며 사는 한국판 집시라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멋들어진 형님이었다.


스물 네 살 되던 해, 고향에서 친해진 외국인 친구들을 통해 알게된 형님인데 항상 한결 같은 모습으로 흥과 끼를 마음껏 발산하며 그야말로 만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다. 봄이면 산약초와 나물, 여름이면 꿀이나 버섯을 가을이면 송이와 더덕 내지는 산삼, 겨울엔 나무를 하러 다니면서 자연에 붙어 살던 멋이있던 형님이었다.


영어도 꽤나 곧 잘했고, 파티문화의 선두자라 할 만큼 미국의 추수감사절부터 크리스마스, 새해에 이르기까지 사시사철 다양한 사람들과 외국인들과 한데 뒤섞여 본인의 인생을 한 없이 즐기는 것만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간 밤에 요절했다는 소식이다.

자의적인지 타의적인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역시도 비혼이었고 독신이었다.

간만에 시내에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 술을 걸친 후 호텔 방에서 잠을자던 중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우리와 세상은 그렇게 자연을 벗삼아, 설악산 대청봉을 지붕삼아 울산바위에 등 붙이고 살던 꽤 나이먹은 장정하나를 잃었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이후로 부터 반나절이 지난 후 함께 취업 스터디를 하던 동갑내기 친구 하나가 하루 전 죽어버렸다는 비보가 들려왔다. 한국에 도착해 필요이상으로 맛 없는 방어회에 공업용 에탄올 맛 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차가운 소주를 마시던 그 무렵 이 친구는 비명횡사를했다.


뜻 밖의 사고사라고한다. 자세히 묻지도 못했으며 그러고싶지 않았다.

그냥 단시간에 짠듯이 들려온 거짓말같은 소식을 그저 외면하고싶었다.


할 말도 없었으며 그 조차 보탤 힘이 없어 말 없이 골목한켠에서 담배를 태우며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SNS에 아는지인 또 하나가 죽었다는 소식이다.


이정도면 세상이 판을짜고 나를 속이는것이다. 어디선가 이경규 아저씨가 '몰래카메라였습니다' 하고 나타날 것만 같았으며 내가 공업용 알코올을 실수로 먹어버려 반쯤 정신이나가 헛것을 보고 느낀다고 생각을했다.


차라리 그러길 바랐다.


그렇게 나는 만 이틀하고도 반 나절만에, 창졸간에 친구 셋을 잃었다.

걸판진 술자리에서 다툼이 있어 의절을 한것이 아니라 그들의 육신을 만지거나 볼 수 없는 이별을 한 것이었으며 내가 살아 숨쉬는 동안엔 그들을 마주할 수 없음이었다.


세상은 이리도 비정하다.

창졸간에 장정 셋을 앗아가버린다. 과연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모든 이들이 죽음이 마치 내탓인냥 세상을 잃은 표정을 한 채로 방구석에 들어누워 한숨만 들이쉬고 내쉬었다. 말할 수 없었다. 내가 며칠 빌붙어 신세지고 있는 이 친구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만나 나에게 선심을 써준 이들에게 나에게 일어난 비극으로 말미암아 슬프다거나 어두운 기운을 전하고싶지 않았다. 더불어 이들의 죽음의 원흉이 나인 것 같은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죄책감과 비통함을 입 밖으로 표출하는 것이 감당이되지 않았으며 그냥 속으로 홀로 삭이며 그냥 이들을 곱씹는다거나 삶에대한 무언가를 되집어보고싶었다.


형편상 동날에 치뤄지는 그들의 상에 가 볼 형편과 엄두가 나지않아 마음으로 추모했다.

작지만 성의가 들어간 부조금 몇 푼 보내며 나의 마음을 전달했다.


내가 이 땅에 발 딛던 날, 억수같이 쏟아지던 우박 그리고 유난히도 영롱하고 찬란했던 무지개, 때이른 11월의 기록적인 폭설.


한국에 도착한 후 이틀만에 모두 벌어진 일이다.


불필요한 다이내믹함으로 멀미가 느껴지고 앞이 캄캄하다.

언제나 그래왔던 삶이었기에 익숙하리라 생각했지만 언제나 새롭고 늘 짜릿하다.

차라리 내가 죽어버렸으면 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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